마음이 민첩한 사람
단 6:1-28(1-4)
2014.06.15. 강북꽃동산교회, 2021.04.18.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2024.05.26
자연에 원리가 있듯이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사영리에서는 영적인 원리를 네 가지로 설명했지요. 1)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다. 2) 사람은 죄에 빠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을 알지 못한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죄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4) 우리는 개인적으로 나의 구주 하나님을 영접해야 한다.
신앙생활에 수입과 지출 같은 원리가 있습니다.
가령 은혜, 믿음, 소명, 사랑 이런 것은 수입에 해당 되고 봉사, 헌신, 사명, 예배, 기도는 지출에 해당 됩니다. 이것을 잘 유지되게 하는 것이 성공적인 신앙생활이지요.
이 원리를 잘 분석해 보면 그 속에 진리가 있습니다. 수입이 있어야 지출을 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선 수입이 계속 있어야 하는데, 그 수입은 은혜라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것은 동행이라는 것이죠? 회사와 동행해야 지속적인 수입이 생깁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수입, 사명은 봉사인데 은혜 없이는 봉사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지속적으로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은혜를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전에 언제 한번 받았던 은혜로서는 계속 봉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원리입니다.
다니엘에 청년 때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강대국인 바벨론이 예루살렘에 쳐들어 와 사람들 죽이고 값비싼 것들을 모두 가져갔습니다. 그 과정에서 성전은 부서지고 성전 안에 성물은 저들의 보물이 되었습니다.
그때 다니엘을 비롯해 괜찮은 젊은이들이 저들에게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저들이 괜찮은 젊은이들을 포로고 끌고 간 것은 저들을 교육시켜 왕궁에 넣으면 유다 사람들이 아들을 봐서라도 바벨론에 충성할 거라는 생각입니다. 처음부터 인질로 사용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가 파손되고, 사람이 죽고, 나라가 망하고 있을 때, 포로고 끌려가는 불행한 일이지만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있습니다.
(단 1:9, 개정)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라고 했습니다. 다니엘은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본국에 있을 때나 포로로 끌려와서도 늘 은혜를 받았습니다. 어쩌면 다니엘이 포로가 된 것도 은혜인지도 모릅니다.
신앙에서 은혜가 수입이면 다니엘은 큰 수입을 얻은 것입니다.
포로 생활에 많은 영적 지출이 필요 할텐데 잘 되었습니다. 그가 받은 은혜의 수입으로 예배도 드려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고, 함께 고난 당하는 동료도 돌보야 하고, 또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는데 많은 영적 돈이 필요한데 잘됐습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은혜가 많아 보이지만, 그 한번 받은 은혜가 그의 평생 행복하게 해 준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더더욱 지금은 포로 중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한 달 월급으로 일 년을 살 수 없습니다. 계속 월급을 받아야 합니다. 회사와 동행해야 월급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계속 받아야 합니다. 계속 은혜를 받으려면 주와 늘 동행해야 합니다.
다니엘이 포로로 끌려가 종으로 사는 중에 그 나라 정권이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느부갓네살 2세(B.C.605 -562)에 이어
에월 므로닥(B.C.562-560).
네리글리살(B.C.560-556).
라바시 말둑(B.C.556),
나보니두스(B.C.556-539), 그리고
벨사살(B.C. 550-539)이 차례로 정권을 잡았습니다. 벨사살시대는 나라가 매우 혼란했습니다. 이런 혼란스런 시대에 다리오가 왕이 되었는데, 그가 다니엘을 아주 예쁘게 본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또 은혜입니다.
속국의 나라에 포로가 주권국의 왕에게 예쁨을 받는 것이 은혜가 아니면 무엇이 은혜일까요?
다니엘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계속 받는 것은 포로 생활을 넉넉히 이길 수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그가 어떻게 수입의 은혜가 계속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것은 은혜의 수입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신의 지출을 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은혜의 수입, 영적인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새롭게 왕이 된 다리오가 내각을 구성했는데, 장관을 120명 총리 세 명을 새롭게 세웠습니다. 다니엘은 세 명의 총리 중에 한명인데 다니엘이 수석 총리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일입니다.
포로로 잡혀 온 청년이 당시 세계에 최 강대국의 수석 총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영적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큰 은혜입니다. 반면 큰 지출이 예상되는 은혜입니다.
예상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다니엘이 총리가 되자 이를 시기하는 자들이 모함을 꾸몄습니다. 다니엘을 죽이려는 모함입니다. 저들이 법령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 법령은 이렇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 이 나라는 다리오 왕이 아닌 그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혼란스러울 때 왕의 입장에서 이 법령은 최고의 선물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법령은 정말 왕과 나라를 위한 법령이 아니고 다니엘을 죽이려는 사람들이 꾸민 음모의 법령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리오는 그것도 모르고 그 법령에 도장을 찍었습니다. 법령은 선포되었고, 다니엘을 죽이려는 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저들이 만든 법령에 다니엘이 결려 들수 밖에 없는 것은 “왕이 아닌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굴에 넣는다.”라는 조항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데로 다니엘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기도를 해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고 하루에 세 번, 고향 예루살렘 쪽의 창을 열어놓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니 다니엘이 어떻게 이 법령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다니엘이 살길은 있습니까?
법령을 보니까. 문제가 되는 것은 기도인데, 다니엘이 기도만 안 하면 됩니다. 그가 살 길은 30일 동안 기도를 쉬는 것입니다. 꼭 해야 한다면 속으로 해도 되고, 이물 같은 것을 덮고 숨어서 하면 되고 어찌 하든지 30일 동안 저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거 하나님도 이해하시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니엘은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도를 쉬겠느냐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세상적으로 합리적으로 보면 살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일을 내고 말았습니다. 전에 하던대로 기도를 했습니다. 창을 열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말입니다. 그러다가 저들에게 들켰습니다.
여러분은 이 다니엘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소신이가 아니면 고집인가요? 지혜가 좀 부족한 것이 아닐까요? 다니엘 왜 그러는 걸까요? 다니엘은 왕의 금령이 반포된 것을 모르는 것입니까? 알고도 그랬다면 무슨 의도일까요?
결국 다니엘을 죽이려는 자들이 저를 왕에게 고발했습니다.
다니엘의 소식을 들은 왕의 반응은 어떠할까요?
다니엘의 소식을 들은 왕은 충격에 빠져 있었습니다. 왜 충격에 빠져 있는 것입니까? 혹 이런 거 아닐까요? 포로로 잡아 온 종이지만 똑똑해서 예뻐해 주었고, 최고의 자리에 앉혀 주었더니 다른 신에게 기도를 해… 배신감 같은 거 말입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도 다니엘은 자기를 수석 국무총리로 세운 왕에게 이렇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는 다리오 왕을 주목하려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소식을 들은 다리오 왕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 충격을 받았을까요? 다니엘의 배반 때문일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절입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다리오의 충격은 다니엘이 그를 죽이려는 자들이 만든 덧에 결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왕이 근심하여 다니엘을 구원 하려고 마음을 쓰며”라고 했습니다. 왕은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섬리가 있습니다. 즉, 다니엘이 죽을 만치 고난을 당하는 과정에서 왕의 마음이 하나님을 찾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보면 왕이 다니엘을 구원하려고 노력했지만, 충신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법령은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다리오는 마치 아들이 사자굴에 들어가는 것처럼 견딜 수 없어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제 다니엘만 잘하면 됩니다.
다니엘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면 살게 되지 않을까요?
성경을 보다가 특별한 구절을 만났습니다. (단 6:3, 개정)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라고 했습니다.
다리오 왕이 다니엘을 특별하게 본 것은 “마음에 민첩성”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첩성이 무엇인지 사전을 찾아보았습니다.
민첩성agility이란! “자극에 대하여 재빠르게 반응하거나, 신체의 위치를 재빨리 바꾸거나, 방향전환을 민첩하게 하는 능력. 자극에 대하여 재빠르게 반응하거나, 신체의 위치를 재빨리 바꾸거나, 방향전환을 민첩하게 하는 능력으로, 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두산백과
이는 주로 체육계에서 사용하는 단어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왕이 다니엘을 귀하게 본 것은 신체가 아니라 마음의 민첩성이었습니다. 3절에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빠르고, 마음의 방향 회전이 빠르고, 회전과 결정이 빠르고 소신이 있다는 말이 아닐까? 그렇습니다. 왕이 다니엘을 이처럼 귀하게 본 것은 그의 민첩성 때문이데, 그를 지도자로 세우면 혼란한 나라가 속히 든든하게 세워질 것을 본 것이지요?
우리는 이를 영적 민첩으로 모는 것입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민첩으로 해석하면 다니엘은 하나님의 마음을 빠르게 바르게 알고 행동하다는 말입니다. 시대를 구분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혼란의 시대에는 민첩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또한 시대 말에는 영적으로 민첩한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영적 위기에 민첩해야 합니다. 혼탁한 시대에 영적으로 민첩한 성도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을 선택했습니다.
이게 다니엘의 영적 민첩성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은 그동안 받은 모든 은혜를 이곳에 다 투자하기로 작정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다리오 왕이 다니엘에 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자굴에 달려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단 6:16, 개정) “….왕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네가 항상 섬기는 너의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 하니라”라고 말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다리오 왕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쓰는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리오왕의 이상한 행동에 계속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 6:18, 개정)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니라”고 했습니다.
사자굴에 들어가 있는 다니엘을 본 왕은 밤이 새도록 한 쉼도 잠을 못 잤습니다. 음식도 금했습니다. 오락을 그쳤습니다.
왕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다니엘이 아들입니까?
다니엘을 사랑해도 너무 사랑하고, 그가 나라를 살릴 인재인데 그가 죽기 때문입니까?
오늘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니엘을 통해 이방의 왕을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그 일을 다니엘을 통해서 하고 계십니다. 환란의 시대에 혼돈의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이 다리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실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 와서 한 번도 정상적인 예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포로로 잡혀오기 전에도 성전에 파괴되면서 정상정인 예배를 드리지 못한 적이 오래입니다.
그래서 그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은 자기 처소에 준비한 기도실에서 하루 세 번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보기에 다니엘이 사사굴에 던져진 그 밤에 아무런 일도 안 하셨습니다. 꼭 다니엘이 버림받는 것처럼 보여졌습니다.
그러나 하루가 지났습니다. 새벽에 밤새 잠을 못 이룬 왕이 사자굴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네가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들에게서 능히 너를 구원하셨느냐”
20절의 말씀이지요? 새벽에 왕이 사자굴로 달려가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 네 하나님,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하며 다니엘을 불렀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을 보시면서 무엇을 느끼고 계십니까?
이것은 단순히 왕이 신뢰하는 총리 하나 구하려는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은 왕을 철저하게 구원하려고 만든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이방 땅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다니엘을 비롯한 포들을 보호하고자 하시는 하님의 작품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에서 살아 나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지막으로 다리오 왕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4절입니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사자굴에 넣었습니다.
26절~27에 새로운 조서를 내렸습니다. (단 6:26-27, 개정)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하지 않으실 이시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의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이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라 하였더라”
적용
여러분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다니엘이 사자굴에 들어간 일은 그의 목숨이 하늘과 땅을 왔다 갔다 한 어머어마한 일입니다. 다니엘에게는 최고의 고난이지요.
그런데 그는 그를 어떻게 감당했습니까? 많은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은혜는 영적으로 민첩함을 주었고 그 민첩함으로 그동안 받은 은혜를 이방 나라 왕고 제상에 공의를 세우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어려운 시대에도 여전히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어려운 시대에 영적으로 민첩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대 말입니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매우 혼탁합니다. 민첩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영적으로 민첩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