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25
2024.05.19. 강북꽃동산교회 성령강림주일
오늘 우리교회는 성령강림 주일로 지킵니다.
성령강림 주일이란!
성령이 오신 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전에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에 오셨던 것처럼, 성령께서도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강림하셨는데 이날을 기념하여 지키는 날이 성령강림 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으로 오시는 날 세상은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려고 동방에 찾아온 박사들이 혜롯왕 궁으로 찾아간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저들은 당연히 예수께서 왕으로 오시기 때문에 왕궁에서 나실 것으로 알고 왕궁에 찾아갔는데, 왕궁에서는 도전으로 아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찾는 소동이 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시는 날에도 또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성령님을 찾아 어떻게 하려는 소동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그 소동 속에서 하나님이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때는 유대인의 중요한 절기 오순절이었습니다.
오순절은 기독교의 중요한 축일 중 하나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 50일째 되는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 날은 성령이 예수의 제자들에게 강림한 것을 기념하며, 기독교 초대 교회의 시작을 상징합니다. 오순절은 ’50’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Πεντηκοστή’에서 유래되었으며, 유대인들에게는 처음 수확한 농산물을 바치는 날로서 칠칠절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그래서 천하만국으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이 절기에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데 수백만이 된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이 천년 전 어느 유월절, 예수님은 죽음에서 살아나셔서 하늘로 올라가시면서 성령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아버지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예루살렘 어느 다락방에 120명의 믿는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로서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 같은 것이 그들이 모인 방안에 가득찼습니다. 그리고 저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입이 열리더니 말을 하는데, 동시에 여러 나라의 말이 쏱아져 나온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이것으로 소동이 일어 난 것입니다.
이때 오순절 절기를 지키려고 왔던 경건한 유대인들이 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소동은 여기서 벌어졌습니다. 다락에서 들리는 소리는 여러 방언인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각각 다 알아들은 것입니다. 그날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다음입니다. 사방에서 모인 유대인들은 바대인, 메데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가, 본도, 아시아, 브르기아, 밤빌리라, 애굽, 구레네, 리비아, 기타 여러지방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것이 성을 소동하게 했던 것은 방언을 하는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7절 “이 말하는 사람들이 갈릴리 사람이 아니냐” 8절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됩니야”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저 갈릴리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냐 그런데 저들이 어떻게 이렇게 말을 잘해 우리가 각각 알아듣는 것이 어떻게 된 것이야!
성령강림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습니다. 성을 소동하게 했습니다.(6)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습니다.(12) 어떤 이들은 조롱을 했습니다.(13)
그럴 때 성령의 강림은 숨길 수 없는 일이고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이고 소동이 나는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지금도 성령의 역사는 숨길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곳에는 소동과 놀라고 당황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늘 전과 동일 합니다. (엡 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그래서 지금도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성령의 역사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 오늘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마음에 모신다면 세상에 주면에 소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를 체험했던 사도의 경험담을 듣고 성령과 함께 어떻게 동행하며 살아야 하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을 보면 성령을 마음에 받는 일과 관련해서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갈 5:17, 개정)의 말씀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은 ‘거스린다. 대적한다. 서로 원하는 것은 하지 못하게 한다.’라는 부분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성령을 마음에 받고 나면 거스리는 일, 대적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육체가 하는 일을 거스려 서로 하지 못하게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원하고 성령이 도와주셔야 이 험한 세상에서 승리하며 산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데 성령님이 우리안에 들어오시면 내 인생과 대적하고 거스리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어떤 분은 이것을 성령의 부작용이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받아야 하나요? 아니면 거역해야 하나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우리 마음 안에서 나를 대적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래도 성령을 받으시겠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한동안 힘들 수도 있는데 받으시겠습니까? 어떤 분은 싫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고전 2:14절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이라고 했습니다. 즉,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육에 속해 있으면 성령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에 속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육에 속한 사람이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요 3:6-7, 개정)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한 마디로 육에 속한 사람이란! 영이 죽은 사람입니다. 거듭남이란 새로 테어난 것을 말하는데 육에 속했다는 것은 아직 영이 죽은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영을 살리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살려서 죄를 회개하게 하고 하나님이 자녀가 되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성령강림 후 세상에는 사람을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습니다.
성령 받은 사람과 성령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살리고 새롭게 거듭나게 하고 싶은데, 영접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안에 들어오면 나를 거스리고 대적하고 못 하게 하는 일들이 생길 것인데 그래도 영접하겠는냐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령을 받아들이면 내 인생에 엄청난 거역에 일들이 생기는데,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엄청난 갈등들을 감당하시겠습니까? 때로는 가정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친구들에게 따 돌림을 당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사회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도 있는데 감당하시겠습니까?
그러나 거기에는 새 생명 거듭남 영생 천국이 있는 사실입니다.
참고로 믿음의 선진들은 다 그런 일들을 감수하고 성령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란! 다윗, 요셉, 다니엘, 에스더, 초대 사도들 근대에 손양원 주기철 등등입니다.
솔직히 성령님을 선물로 받은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유는 그분이 내 일생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체와의 대적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성령과 대적하는 육체의 욕심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그 육체의 욕심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열을 했습니다.
19절부터입니다. (갈 5:19-21, 개정)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15가지나 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열거한 육체의 욕심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죄와 관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죄와 관련된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결단하기가 쉬워졌을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이 이런 죄와 관련이 있다면 받듯이 성령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에서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마음의 갈등이란! 대적이란! 이런 것입니다.
성령이 음행, 더러운 것, 술취함 분쟁, 분냄 이런 것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면 안 된다고 갈등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무엇이 누가 이런 것을 이기게 하겠습니까?
오직 성령께서 만이 육체의 소욕을 이기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늘 동행하시고 그분에게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안에 수없이 많은 육체의 소욕이 있고, 세상에는 그것을 이기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성령의 인도하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육체의 욕심은 율법과 관계가 있습니다.
25절에는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말인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되는 것입니까?
1) 우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 설교를 듣는 동안, 기도하는 동안,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 심령 속에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생각과 일으켜 주시는 선하고 거룩한 마음을 주시해야 합니다.
2) 다음으로 그 생각과 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내 육신의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확인시켜주십니다. 우리 마음이 평안하고 또 그 일을 생각하면 기쁨이 가득합니다. 비록 장애물이 있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을 따라야 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 세밀하게 역사하십니다.
3)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 안에 성품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의 열매”라고 한 점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의 열매를 단수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아홉 가지 열매를 성령의 열매들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하나의 열매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홉 가지 성품의 모습은 한 가지 성품의 여러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은 할 수 있는데 충성이 부족하다. 나는 오래 참는 것은 잘하는데 절제가 잘안 된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열매로 이루어진 성품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본연의 성품의 특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새롭게 빚으실 때 이 아홉 가지 성품의 모습이 하나같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오래 믿으면서도 우리 성품 때문에 아직도 고민이 된다면 아직 성령의 열매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성품 때문에 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도 성령의 열매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온전히 성령께 맡기고 성령께서 우리 성품을 새롭게 빚어주시도록 다 맡겨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심령 속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을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이 주시는 능력으로 육체의 일을 끊고, 그분께서 우리의 성품을 새롭게 빛어 주시기 바랍시니다.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받으신 성령의 능력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이름을 부르시고 성령님을 의지하시고 성령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인격적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능력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육신이 통제가 안 되는 시대입니다. 시대가 지나도 말과 소는 재갈과 고삐로 통제가 가능합니다. 큰 배도 작은 키로 통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기면 갈 수로 통제가 안 되는 것은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살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