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
룻기 1:6-22(6~10)
2017.05.14 어버이주일 강북꽃동산교회, 2024.05.12. 어버이주일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실 때, 가정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가정은 자연 교회가 되기 때문에 가정은 교회보다 더 중요한 공동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는 가정에 중심입니다. 갑자기 아버지 학교 슬로건이 생각납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 “아버지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성경에서 가정은 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족장들의 가정은 훗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기 위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가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는 늘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의 가정을 통해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럴 때 지금 세상에 가정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지 못한 채 육신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믿음의 가정들마저 그렇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의 주인이시라는 말을 들어 본 지 꽤 오래됐습니다.
가정에서 신앙교육이 사라진지도 오래되었습니다.
믿음의 가정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경제 원리로만 생각하고 계산이 안 되면 포기하고 버리기일 수 입니다. 어려움이 있을 때, 대체하는 방법도 세상과 동일합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고 하나님에게서 답을 찾기보다 머리를 쓰고 계산만 하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그런 안타까운 한 가정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산업이 발달 되지 못한 시대에 흉년은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흉년이 심할 때는 그 지역을 떠나야 하는 것은 어쩌면 상식일 수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이지요.
본문에도 한 가정이 정든 고향을 떠났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고향을 떠난 사람의 이름을 소개했습니다. 총 네 명인데, 가장인 엘리멜렉, 부인 나오미, 두 아들 말론과 기론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들이 흉년을 피해 찾아간 곳은 모압땅 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모압 땅에 주목하게 될 것입니다.
모압으로 간 가장은 당장 먹을 것은 해결되었습니다. 그래서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행복도 잠깐, 가장인 엘리멜렉이 돌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가 무슨 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는지 성경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일은 5절에 있습니다. 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론이 죽었다”라는 것입니다. 떠날 때 모두 씽글이었는데 모압에 와서 단란한 가정을 이루었는데 이게 왠 일입니까? 모두 부인만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 그림은 참 별로 안 좋습니다. 우연치고는 이런 우연은 없습니다. 왠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는 생각도 떨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일을 해석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용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해야 할까요? 문제가 무엇일까요? 무엇이 이 가정을 어렵게 했을까요?
저는 흉년이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흉년이란! 명사로 “농작물이 예년에 비하여 잘되지 아니하여 굶주리게 된 해”, “어떤 산물이 매우 적게 나거나 사물의 소득이 매우 보잘것없는 상태나 처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은 예전에 비해 농작물이 잘되지 않아 굶주린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흉년이 든 땅은 유다 베들레헴이라는 점입니다.
베들레헴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잘 1절에 나 나타나 있습니다. “헤롯 왕 때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베들레헴은 훗날 예수님께서 나신 고향이라는 점입니다. 축복의 땅 아닙니까?
하나님의 섬리에서 볼 때는 베들레헴은 처음부터 예수님의 고향이었습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볼 때, 베들레헴은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때부터 예수님이 나실 곳이었습니다. 다시 말에서 이곳은 왕이 나실 곳이며, 은혜의 땅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는 땅이며, 약속이 있는 땅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예수님이 태어나실 약속과 은혜의 땅에 흉년은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약속의 땅에 흉년이 든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떻게 받아드려야 하냐는 말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가난하고 배고 푼 것은 어떻게 받아 드려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목적이 단순히 배부르냐 배고푸냐의 문제만을 위한 것이라면, 오늘 성경을 이해하기는 더 어려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인생의 삶 중에 배부름의 문제는 기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행복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나를 통해 왕을 낳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들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정을 그런 시각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베들레헴이 훗날 예수님의 고향이 될 것을 아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베들레헴이든 모압이든 애굽이든 천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벌을 받아 에덴에서 쫓겨 와서 사는 땅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풍년이 있지만, 언제든지 흉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엘리멜렉이 배고 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족을 데리고 모압으로 간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 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냥 쉽게 하나님께 벌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벌을 받았다면 엘리멜렉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고향을 떠날 때 고향을 저주했습니까? 사기를 쳤습니까? 아니면 모압 땅에서 불의한 재산을 모았습니까? 성경에 그런 것이 언급이 없는 것을 보아 적어도 그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없이 살았다고 봅니다. 그러면 무엇이 문제일까요?
2절에서 엘리멜렉의 문제를 알 수 있습니다.
하 반절에 “그들이 모압 지방에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라는 라고 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흐름맥략을 보면 “들어가서 거기 살더니”라는 단어는 그렇게 간단한 단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유는 성경에 엘리멜렉의 잘못이나 실수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압 땅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모압은 사람의 이름입니다.
모압의 탄생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성애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를 유황불로 멸하실 때 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해 주셨습니다. 롯에게는 두 명의 딸이 있었는데, 이 딸들이 소돔과 고모라에서 살아나와 한숨을 돌리더니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부족이 다 죽었다. 우리가 어떻게 대를 이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아버지에게 술을 먹여 놓고 두 딸이 아버지와 동침하여 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하나는 암몬이요 또 하나가 모압입니다. 동성애의 땅에서 발전한 또 다른 죄입니다. 근친상간의 죄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프리섹스라고 말합니다.
롯은 믿음의 사람이지만 세상을 버리지 못한 세속적 성도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롯을 중심으로 만든 땅이 모압입니다. 한마디로 모압은 성적으로 타락한 땅이며 우상의 땅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곳입니다.
엘리멜렉이 가족들을 이끌고 간곳이 바로 모압이라는 곳입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러했듯이 모압은 하나님의 관심에서 벗어난 곳입니다. 은혜가 없는 곳입니다. 모압은 제 이의 소돔 땅입니다. 제이의 멸망의 도시입니다.
따라서 엘리멜렉이 그곳으로 들어가 산 것은 영적인 죽음을 자초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엘리멜렉이나 그의 아들들이 무슨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은혜의 범위를 떠난 것이 문제가 되었고, 장차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인 곳에 들어간 것은 인생최대의 실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에 아무리 성령 충만하고, 불로 충만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유혹이 있는 곳에 가면 악에게 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마디로 이곳에 들어갈 때는 자유롭게 들어갔다 할찌라도 나올 때는 자신의 의지로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를 떠나야 합니다.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보내신 선교사가 아니라면, 천사가 아니라면 들어가면 안 됩니다. 오히려 나와야 만일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찾아갔다면, 고난은 이미 예고된 일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와 그의 아들들의 돌연 죽음은 그가 죄와 타협하지 않으려고 애쓰다 일어난 결과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랬다 하더라도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또한 아무런 열매도 없는 무무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그들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벌을 주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고 사람의 생각대로 판단했고, 사자굴과 같은 곳 사탄의 굴로 유혹의 굴로 들어갔을 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저들을 그 위험한 길을 가는데 왜 잡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아담이 선악과 따 먹으러 갈 때 잡지 않은 것으로 대신 말씀드립니다.
그러면 앞으로 세 명의 여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이들이 이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길은 없습니다.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이 땅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땅이고 하나님의 약속이나 섬리가 없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곳에서는 세 여인들은 아무리 발부둥을 쳐도 행복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먹는 문제는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배불리 먹고 사는 것이 그들의 목표라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즐거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상식적이고 성경적인 행복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여인들은 그곳에서 무조건 나와야 하는데, 어떻게 나올 수 있습니까?
오늘 성경에 길이 있었습니다. 6절입니다. (룻 1:6, 개정)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라고 했습니다.
나오미에게 들려진 한 소식입니다. ‘하나님께소 자기 백성들을 돌보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이 들리자 나오미 마음에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6절에 “돌아오려 하여”, 7절에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대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라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주목하려는 것은 바로 이 말씀입니다. 고향에서 들려온 한 소식이 나오미의 생각을 바꾸게 했고 단숨에 세 여인을 모압에서 나오게 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에서 들려온 한 소식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결단을 하게 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고향에 먹을 것이 그를 그렇게 결단하게 했다고 하는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먹을 것,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저들을 돌보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양식이야기가 아니, 하나님 일하시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즉 베들레헴에 농사가 잘되고 먹을 것이 풍성해진 것은 하나님께서 그 땅에 큰 은혜를 주셔서 농사가 잘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것이(소식이) 바로 복음이고 능력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가정을 회복하고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고 나라 밖으로 나갔던 사람을 돌아오게 하는 일이고 젊은이들이 아이를 낳아 부강한 나라가 되는 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을 때 가능합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가정에 긍휼의 은혜를 내려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들의 가정을 돌보셔야 가정이 회복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하나님께 쓰임 받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오미가 어떤 노력과 의지로 죄악의 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에 소돔과 고모라에 천사를 보내어 아브라함의 가족을 이끌어 내듯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어떤 사람, 어떤 천사를 사용하셔서 나오미에게 기쁜 소식을 듣게 하셨을 것입니다. 나오미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가슴이 뜨거워졌고 고향으로 돌아갈 결단을 하게 한 것입니다.
적용 ->
나오미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소식은 오늘 복음을 상징합니다. 나오미의 결단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죄악 된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온 삶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복음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인데, 복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도 그 죄악된 세상에서 스스로 나올 힘이 없을 때 하나님의 기쁜 소식은 지혜를 주며 소망을 주고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 소식을 들으면 결단하게 되고 결단하면 누구라도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기쁨의 좋은 소식은 생명의 소식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소식입니다. 그 소식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누구라도 들으면 감동이 되고 결단을 할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기쁜 소식이 넘쳐나는 5월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