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를 청하라
사도행전 10장 1~5
2024.05.05. 강북꽃동산교회 가정의 주일 설교
지난주 가정교회 사역을 하시는 분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가정교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구역, 셀, 목장과 같은 개념입니다. 가정교회 사역하시는 분들이 한때 어려운 일들을 당한 것은 이단시비 때문입니다. 몆 년 전 우리 총회에도 헌의안이 올라왔습니다. 이상하니까 조사를 해달라 조사결과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가 됐냐고 했더니, 크게는 두 가지였습니다. 가정에 교회를 붙였다는 것이고 가정 교회안에 평신도 지도자를 세워서 그들이 성경을 가르칠 수 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원래 구역에서도 구역장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목장에서도 셀에서도 지도자들이 있어 그들이 예배를 인도하고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그것 말고 혹 가정 지도자가 세례 주느냐? 축도하느냐? 아니랍니다.
그래서 보니까 가정교회 지도자들이 너무 열심히 합니다. 애경사가 있으면 만일을 제쳐놓고 그렇게 챙긴다는 것입니다. 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전에 어린이 사역을 할 때 가정교회에서 캠프를 왔습니다. 아직까지 기억하는 것은 뭔가를 다르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한때 큰 장마가 져서 강당에 물이 쳐들어왔습니다. 여기저기서 불평의 소리가 날 때 담당 지도자가 ‘애들아’라고 했는데, 이 교회는 자기들이 가지고 온 수건, 침구료 등을 꺼내더니 바닥에 물을 닦는 것입니다. 애들은 잘 훈련된 군사처럼 기쁘게 바닥에 물을 닦아 냈습니다.
그날 놀라운 사실은 코로나 시국에 많은 교회가 문을 닫을 때 가정교회는 부흥했다는 것입니다. 비결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철저하게 공 예배드렸고 철저하게 가정을 섬겼습니다. 가정교회를 구역으로 조직하여 철저하게 가정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사역의 기본이 섬김이랍니다. 제가 동의한다고 했더니 저보고 가정교회 사역의 형태로 몸이 갖춰졌다고 이야기 하시더군요
5월 가정에 달입니다. 5월에 싱그러움 만큼 여러분의 가정에 풍성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는 오늘 가정의 주일로 지킵니다.
가이샤라에 고넬료라는 군대 백부장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그에게 사자를 보내셨습니다. 사자가 그에게 하는 말은 베드로를 청하라는 것입니다.
고넬료가 당황한 것은 베드로를 집으로 청하는 그 일은 그냥 단순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넬료는 로마에서 식민지에 파송한 백부장이고, 베드로는 저들이 죽인 스승의 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백부장은 당시 100명의 군인을 통솔하는 군인이지요. 요즘으로 말하면 중대장에 해당됩니다. 그 지위와 권세는 요즘 중대장과 비교가 되지 않게 컸습니다. 옛날 우리가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일개 순사만 되어도 얼마나 세도를 부렸는지를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고문하고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예수님의 제자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인지 모르겠지만, 세도가 당당한 로마의 백부장이 베드로를 초청하려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 초청에 응할까요? 객관적으로 서로 만나기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어떻게 초청할까요? 고넬료가 아무리 주둔군이 가지는 권세를 가졌다 하도라도 베드로를 강제로 집으로 오게 할 수 있을까요? 또한 베드로는 법을 어기고 고넬료의 지에 갈까요? (행 10:28, 개정)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한 마디로 원수와의 만남이 아니겠습니까? 혹 비밀리라도 만나고 나중에라도 총회가 알면 베드로는 사도 면직감 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사자를 고넬료에게 보내서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행 10:5, 개정)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넬료는 베드로를 청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양쪽에 다 같은 시간에 만나라고 하셔서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으로 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베드로가 고넬료가 나타나자 우리는 여기서 매우 당황스러운 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고넬료가 베드로의 발아래 엎드려 큰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도 당황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일어나라 나도 사람이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고넬료를 보고 한 첫말입니다.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베드로는 아직 고넬료의 집에 오게 된 일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왜 고넬의 집에 와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그냥 성령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런 순종이 있을 때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에서 가장 확실한 답은 33절에서 보였습니다. (행 10:33, 개정)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신 것은 고넬료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시려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고넬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베드로를 청했습니다.
모든 것, 그것이 무엇일까요?
고넬료는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일가와 친척을 다 모으고 그의 말씀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우리는 베드로의 입술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 베드로를 통해서 고넬료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34절에서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였습니다. 35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한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 베드로가 이 집에 오게 된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참고로 고넬료는 의를 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에서 그가 행한 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10장 2절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였다”라고 말입니다. 4절에서는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기억하신바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38절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을 붓듯 하셨으매 그가 선한 일을 하며,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다 39절 우리는 유대인이 땅과 예루살렘에서 행한 일에 증인이라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라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살리셨다. 43절 이제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는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상은 베드로가 그날 고넬료 집에서 한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 고넬료의 집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방언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저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성령을 받았으니, 죄를 회개하고 구원을 받는 일은 정해진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청하라고 한 것은 고넬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관계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성령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왜 고넬료에게 성령의 은혜를 주시려는 것인가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은혜를 베드로를 통
해서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왜 하나님은 그 은혜를 베드로를 통해서 주셨느냐는 설교 중에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고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고 못할 일 전혀 없으신 분이신데,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성령을 주시기 원하셨다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마든지 주실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꼭 베드로를 초청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고넬료와 베드로는 서로 교제할 수 없는 관계를 하나님께서도 잘 아실턴데 말입니다. (행 10:28, 개정)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청하는 과정에서 베드로가 환상을 보고 더럽다 속되다. 하나님께서 잡아 먹으라. 베드로 더러워 못 먹겠습니다. 가라 못 가겠습니다. 라며 얼마나 어려운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 상황은 인간의 방법과 생각으로는 서로 만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만났습니까? 18절입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라고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성령께서 강력하게 도우셔서 저들이 만나게 되었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베드로를 통해서만 성령을 선물로 주시려는 것입니까? 베드로가 남달리 성령이 큰 은혜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까?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베드로가 고넬료를 만난 일에 대해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했습니다. 그때 어떤 이들은 비난을 했지만, 베드로가 성령이 하신 일을 설명하자 사람들이 잠잠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행 11:18)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셨습니다. 그럴 때 베드로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베드로를 통해 예루살교회에 이 일을 보고하게 하고 예루살렘렘 지도자들이 모도 다 알게 함으로 하나님이 이방인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전하고 그것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보증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고넬료에게 성령을 주시고 방언을 주실 수도 있고 영육을 치료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성령, 그 방언, 심지어 그 병 고침, 보증이 필요합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다른 곳에서 가져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앙이 있는 자들의 행동과 입술 통하여 보증하고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입니다.
신앙! 그것은 믿음의 결과로 나타나는 인간의 행위입니다. 무릎을 꿇는다든가 금식을 한다든가 손을 든다든가 날짜를 정하는 것들 등등입니다.
어떻게 왜 무슨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 결과가 하나님께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고넬료와 베드로를 만나게 했습니다.
만일 고넬료가 혼자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고 영육이 치료되었다고 합시다. 누가 인정 할 건데, 방언은 맞어… 죄사함 구원은 맞아….
전에 저 혼자 방언에 은사를 받았습니다. 이거 좋은 건지 나픈 건지 모르고 산지 오래 됐습니다. 어떤 때는 좀 이상했습니다. 서울에 어떤 교회 청년회 모임에서 기도를 하다가 폭 쓰러졌다고 합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님은 지적이고 조용조용하신 분인데, 얼마나 어색한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고넬료에게 성령을 주시고 방언을 주실 때 베드로가 증인이 되었고 확실히 성령의 은혜로 인정하고 세례까지 베풀고 예루살렘교회 보고까지 했고 예루살렘교회가 하나님께 영광까지 돌렸으니 했으니 얼마나 권위가 있는 일입니까?
하나님은 전에는 지금이나 종들을 통해서만 말씀하셨고 종들을 통해서 보증이 되게 하셨습니다.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일들을 저에게 허락하셨고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관여 하면서 해석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는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저는 올해 노회 일을 책임지게 되었습니다. 노회는 개 교회에 가서 목사와 장로를 세우는 일 교회를세우는 일을 합니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남양주에 있는 개 교회가서 담임목사를 위임하는 사역을 하게 됩니다. 이 교회는 이미 교회를 4층으로 아름답게 건축하고 빛도 없고 성오님도 여러분 계시고 장로님도 계시고 자립하는 교회입니다. 아버님이 목사님 이셨고 뒤를이어 아들이 목회를 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담임 목사이지만 교회에 중요한 공동회를 할 수 없고 세례식도 성찬식도 할 수 없습니다. 위임이 안 됬기 때문입니다. 그런거 하려면 노회에서 허락된 자가 가야합니다. 그런데 다음 주 우리가 가서 설교하고 위임식을 하면 이후로 그 목사님께서 다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고넬료에게 베드로를 보낸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왜 고넬료에게 성령의 은혜를 주시려는 것일까요?
놀랍게도 고넬료는 이미 아주 훌륭한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유의할 사항입니다. 당시 1세기는 과도기였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구약 시대에서 신약 시대로 넘어온 상태입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의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이었으므로 개중에는 그 신앙이 아직 구약의 상태로 머물러 있던 신앙인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사도행전 10장 뒷부분을 보면, 고넬료가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혹시 그를 처음 믿는 초신자인 것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아직 예수님을 소개받지 못했지만, 이미 그는 경건한 유대인들로부터 여호와 하나님을 소개 받고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 모범이 된 것은 여러 가지 측면이 있지만 그 중 한가지가 바로 ‘가정 중심의 신앙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신앙을 가정이라는 앵글에 맞추고 본문을 보면 고넬료의 가정이 다음의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2절 보면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 ”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넬료는 혼자만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온 가족으로 하여금 다 함께 믿게 했습니다. 온 가족이 다 함께 하나님을 믿는 것이 가정 행복의 기본입니다.
신앙은 단순히 하나님을 믿고 교회나 왔다 갔다하는 게 아닙니다. 신앙은 가치관이요, 인생관입니다. 말하자면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며 방향감각입니다.
가족들이 신앙이 있고 없고 하면 서로 다른 가치관, 인생관을 갖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인생을 살아가게 될 텐데 얼마나 피곤한 일입니까? 불화의 요소가 항상 내재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집안에 원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마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신앙이 통일되지 않으면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 복음화를 위해 수고해야 됩니다. 제일 좋은 것은 가장이 먼저 예수 믿고 그로 인하여 차례차례 믿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다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럴경우에는 가족 중에서 위치가 어떠하든지 먼저 믿은 사람이 우선 “내가 가정의 제사장이다” 생각하고 나머지 가족들을 기도하며 인도하면 됩니다.
이를 위해 특별히 자녀들에게 신앙을 잘 전수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산 물려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공부 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 물려주는 겁니다. 재산을 물려주고 공부를 시키는 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죠. 우선순위가 뭐냐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우선순위를 지키지 못합니다.
본문 2절을 다시 보면 후반 절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 …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 ” 그랬습니다.
그의 가정은 받은 축복을 이웃과 나누는 가정이었습니다. 행10:24에는 베드로를 청해 놓고 일가친척들은 물론이고 친구들도 불러 모았습니다. 이웃과 복음을 나눈 것입니다. 이와 같은 고넬료의 아름다운 인격은 유대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행10:22)
이런 가정이었기에 하나님은 고넬료 가정을 사용해서 베드로의 편견(이방인을 배제하고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벗겨 주는 역할을 감당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과 가정에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대단한 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과 구원의 복음을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가족들끼리 말 먹고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이웃과 세상을 향해 복을 나누는 사명을 감당해야 됩니다.
아브라함을 하나님이 부르실 때의 목적이 바로 복의 근원(=복의 통로)이 되게 하는 것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과 가정은 축복의 웅덩이가 아닙니다. 흘려보내는 축복의 시냇물입니다.
이렇게 사명을 감당할 때 그 가정을 하나님이 더욱 풍성하게 축복하십니다. 잠11:24~25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구제하고 나누는데 신기하게 더욱 풍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넬료의 가정은 이처럼 신앙이 있고 사랑이 있고 사명이 있는 가정이었습니다. 그래서 행복이 있고, 영광이 가득한 가정이었습니다. 고넬료의 가정 같이 지상의 작은 천국 만드시고, 행복한 인생 의미 있는 인생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