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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내일을 위하여 거룩하라 | 여호수아 7장 10~13절

작성자
gfgc
작성일
2026-07-28 06:54
조회
66



내일을 위하여 거룩하게 하라
여호수아 7장 10~13절
2024.04.07. 강북꽃동산교회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의 고단한 삶을 마친 후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것은 제대로 된 군사도 없고 제대로 된 무기도 없이 광야 사람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켰고 그곳에 진입했다는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여리고 성은 저들의 상대가 될 수 없는 곳입니다. 여리고 성은 견고하고 그 안에는 잘 훈련된 군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 성을 매일 한 바퀴 육 일을 돌고, 칠 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고 소리를 쳐서 성을 무너트렸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돌고 소리친 것밖에는 없는데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은 무엇일까요? 무어라 설명하면 좋을까요?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점령하는 과정을 좀 더 관찰 해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여리고 성의 점령은 가나안 점령의 시작일 뿐입니다. 가나안에는 기브온 성을 비롯해 수십 개의 성이 있습니다. 헷족속, 가나안족속, 아모리, 히위, 여부스족이 살고 이 있습니다. 저들은 이스라엘에 싸움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두를 저들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여리고에 입성한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을 하나하나 정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가나안을 축복의 땅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은 저들의 몫입니다. 저들은 그곳에서 생육하고 번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가나안을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마치 그 옛말 하나님께서 에덴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하와에게 맡기신 것과 같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완전히 정복하고 그곳에서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방법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과정 과정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 하나님께서 저들을 도와주셔서 저들은 행복하게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두 번째 점령하려는 성은 아이 성이었습니다. 늘 그래 했듯이 여호수아는 아이 성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아이 성을 정탐하고 온 정탐꾼의 보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이 성은 작은 성입니다. 그러니 이 백성을 다 보내지 마시고 2~3천 명만 보내셔서 그 성을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오니 모든 백성을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7:3)라고 했습니다.
정탐꾼이 보고한 대로 아이 성은 작은 성으로 인구는 약 1만 5천 명입니다. 여리고 성 5만 명에 비하면 3분지 1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정탐꾼의 말대로 2~3천 명만 보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계속 전쟁이 있을 텐데 일부는 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합리적인 제안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정탐꾼의 말대로 3천 명만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이스라엘은 아이 성에 들어가자마자 저들의 전략에 말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36명이 죽었고 바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얼마 전 그 어마어마한 여리고 성도 한 명의 희생자 없이 무너트렸고 들어왔는데, 여리고에 3분의 1도 안 되는 작은 아이 성에 갔다가 싸워보지도 못하고 40명 가까이 죽고 나왔으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여러분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그것을 본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상황에서 여호수아의 군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성경을 좀 살펴보려고 합니다.
2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점령하기 전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3절에 정탐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성이 작고 사람이 적으니 2~3천 명만 보내시지요.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는 것은 수고스러운 일입니다.” 고했습니다. 그래서 4절입니다. 여호수아가 3천 명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아이 성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한 일의 전부입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여호수아가 무엇을 잘못 했습니까? 혹 여러분은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발견하셨습니까?
전 아무리 봐도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면서 계속 묵상해 보았더니 그런데 조금 우려가 되는 부분이 보였습니다.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냄새가 납니다.
인본주의란! ① 인간이 모든 것의 중심이 된다는 사상입니다. 즉, 인간의 가치를 주된 관심사로 삼는 주의이며, 신의 실재를 무시하거나 거부하며, 인간의 본성에 가치를 부여하고 인간의 이상을 실현을 위해 종교적 감성을 활용한다.
‘인본주의’라 할 때 대체로 다음의 몇 가지 입장에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① 인간의 고통을 극소화하고 복지를 증진 시키려는 사회적 운동을 통칭하는 것으로 본다. ② 신(神)이나 자연이 숭배 대상이 아니라 오직 인간성(humanity)만이 존귀하다고 믿는 인간성 숭배의 사상을 일컫는다. ③ 예수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고 그 인격성(人格性)만을 주장하는 신학 사상을 일컫는다.”
어떻습니까? 우리의 신앙과는 완전히 대치되는 사상이지요?
성경에서 인본주의 모습이 시작된 곳은 사무엘상 8장입니다.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와서 우리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우자고 해서 그때 세워진 왕이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전에는 철저히 신본주의 나라였습니다. 사울은 인본주의 대표적인 왕이지요.

인본주의가 우리 신앙인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나라가 사람을 중요시하고, 사람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세상에서 사람을 제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어 영원히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위해 독생자 예수를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세상에서 사람을 가장 사랑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인본주의에서 가장 흔하게 문제가 되는 것은 교만입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공로, 자신의 지식과 판단으로 어떤 성과를 냈고, 그것을 들어내고 싶어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요즘 그런 일들을 세상 정치가들에게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욕심이 생기고 판단이 흐려립니다. 그 결과 하나님일 것과 내 것을 구분하지 못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인본주의 사상이 뿌리가 깊게 내려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인본주의는 신본주의 반대개념이지요.
여호수아와 사람들이 다 잘했습니다. 지치고 힘든 사람들을 생각해서 모든 군인을 다 보내지 않고 3천 명만 보낸 것도 잘한 그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늘 성경에는 여호수아가 아이 성을 점령하려고 할 때 하나님과 나눈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즉,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6일 동안 매일 한 바퀴식 성을 돌라. 7일이는 일곱 바퀴를 돌라는 메시지를 받았는데, 아이 성을 점령하려고 갈 때는 그런 내용이 없습니다. 기도를 안 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렇습니다. 아이 성과의 전투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오히려 정탐군의 이야기는 잘 들었습니다. 2~3천 명만 보내라고 했더니 정확하게 여호수아는 3천명을 보냈습니다. 저는 이게 전쟁의 실패 원인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것이 어떻게 아이 성 점령 실패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까? 물론 이것이 전쟁의 실패 원인이 된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지도자 여호수아도 그것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너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꿰 앞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 쓰고 날이 저물도록 슬프게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음과 같이 응답하셨습니다. 10~11절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11절 때문입니다. (수 7:11, 개정) “이스라엘이 범죄 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놀란 것은 이스라엘에 범죄 하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 범죄는 하나님의 명령과 관련된 것인데, 온전히 바친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13절에도 보니까 “너희 가운데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참고로 하나님은 “그 온전히 바친 그 물건을 너희 가운데서 제하기 전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서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온전히 바친 물건이 무엇이냐는 말입니다. 현재로선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다음 구절에서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11절입니다.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들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 두었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즉, 전쟁 중에 누가 온전히 바친 물건을 도둑질했고, 그것을 자기들의 물건들 가운데 두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제가 되는 물건은 이미 온전히 바쳐진 물건이라는 점입니다. 그것을 누가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둑질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 물건이 자기들 물건 가운데 두었다는 점입니다.
이게 문제가 되는 것은 13절과 연관을 시켜야 합니다. “너는 일어나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거룩한 물건이 거룩하지 못한 사람들의 물건과 섞여 있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오늘 이스라엘이 아이 성에서 패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물건을 누가 훔쳐다가 거룩하지 못한 곳에 섞어 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성경은 이 일을 큰 문제로 여기셨습니다. 심지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스라엘은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거룩이란! 구별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죽게 하신 것은 사람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서 거룩한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지금까지 인도하신 것은 저들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늘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거룩한 삶일 것입니다. 세상과는 다른 인본주의가 아닌 신본주의의 삶을 기대하고 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기억하시고 거룩한 삶을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4)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아이성의 실패는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 표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오늘 저와 여러분은 모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도 이것이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하나님의 거룩에 도전하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파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를 찾기 위해서 제비를 뽑았습니다. 그때 유다 지파 중에 아간이라는 사람이 뽑혔습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청하노니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숨기지 말라” 다시 말해서 여호와께 온전히 바친 물건을 찾는 일은 여호와께 영광이 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으로 말하면 명예가 회복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때 아간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습니다. “내가 노략한 물건은 외 투 한 벌, 은 200세 겔, 금덩이 하나 탐나서 땅속에 감추었나이나”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사람을 보내어 감추어진 물건들을 찾아 여호와 앞에 두었고 아간과 그의 아들들과 딸들과 소와 양, 그리고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끌고 아골 골짜기에 돌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 8:1, 개정)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군사를 다 거느리고 일어나 아이로 올라가라 보라 내가 아이 왕과 그의 백성과 그의 성읍과 그의 땅을 다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라고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사람들이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어떻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결론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신본주의 삶을 권해드립니다. 그 일이 크든 작든 늘 하나님께 기도해 보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그래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권해드립니다.
이스라엘의 아이성 실패에 가장 큰 원인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 점령을 앞두고는 철저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성과의 전투에서는 하나님께 기도했던 흔적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아무런 흔적도 없었습니다. 정탐꾼의 이야기만 듣고 전쟁했습니다. 그래서 실패했습니다. 이는 인본주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성의 실패는 단순히 아간의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아간 욕심 뒤에는 이미 사단이 있었고 아간은 사탄의 괴임에 넘어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거록한 것을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누구라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사단에 넘어가고 사단은 욕심을 줄 것이고 욕심은 죄를 짓게 할 것입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적용
지금 지구상에 일어나는 그코 작은 전쟁의 원인은 사람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욕심은 인본주의의 사실입니다. 자신의 명예, 권력의 유지, 결과를 내려는 것 모두가 욕심입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사람이 요구하는 왕정 정치를 허락하신 것은 그곳에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따라서 영혼을 사랑하고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힘쓰는 자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의 가는 길을 지켜 주시는 줄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신 일은 우리를 세상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보내셨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구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셔서 죽으신 목적은 우리의 구별입니다. 구별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목표입니다. 거룩은 구별입니다.
아이 성에 실패는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물건을 자기 것들과 섞은 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원수들 앞에 능히 서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구별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구별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최고 관심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면 승리하는 삶을 살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 편입니다. 거룩의 반대는 세상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편에 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편에 서는 자들과 함께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내일 위하여 거룩하라고 하셨습니다.
거룩은 내일을 위한 저축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일이 행복하시기 원하십니까? 오늘 거룩한 편에서시기 바랍니다. 내일도 거록한 편에 서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늘 행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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