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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성령을 따라 행하라 | 갈 5:16~25

작성자
gfgc
작성일
2026-03-02 18:07
조회
363
성령을 따라 행하라

갈 5:16~25

2022.06.05. 강북꽃동산교회 성령강림주일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이천년전 하늘에 계시던 성령님께서 세상으로 강림하셨는데 교회는 이것을 중요한 일로 보고 기념하여 지키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사람들이 말하는 살아있는 사람의 구성은 육과 정신입니다.

이때 숨은 쉬는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경우, 우리는 그를 뇌사자라고 말합니다. 뇌는 육에 일부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정신은 온전할 수 있습니다. 말하지 못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정신은 온전하지만 표현을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람의 구성은 다릅니다.
성경에 사람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해 영이 죽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모양은 위에서 말하는 뇌사자와 반대로 보입니다. 영이 죽었지만, 몸은 움직입니다. 그러나 영이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의사표현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사람에 살았다는 것은 영과 육이 함께 산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영과 육중에 하나라도 죽었다면 살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활동하고 있지만, 영과 육이 다 살아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이 뇌를 다쳐서 말하고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를 죽었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이 사람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때 사람이 움직이고 큰 일을 한다고 영육이 다 살아 있다고 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뇌사자의 경우 한 달 만에 깨어 나는 경우도 있고 1년만에 깨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상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합니다.

영의 세계에도 그런 일이 있습니다. 즉,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적인 세계도 보고 하나님께 의사 표현을 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기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은혜라고 말을 합니다.

이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일어날 일이 아니죠. 수 천 년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하나하나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욜 2:28)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내 신”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죽었던 우리 영이 사는 일은 성령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성령이 세상으로 강림하셨다는 것은 죽었던 세상에 영들이 살아날 것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지요. 하나님의 영은 예수님과는 달리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바람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존재합니다. 이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들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그는 인격을 가지신 영이라서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해주시고 사람들의 마음에 참 평안을 주십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이시라서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또 한 보혜사이시라서 인생을 넉넉히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때문에 누구든지 그분을 만나고 받아 드리기만 한다면 그는 세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의 최고의 목표는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을 돕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영을 살려주고 그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고, 죄를 깨우쳐 회개하고 예수를 믿도록 도우시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그가 예수를 끝까지 잘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만드시고 계획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구원을 완성하신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지옥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땅에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교단은 성령님이 오신 것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성령강림 주일로 선포하고 예배를 드리는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날을 기념하고 성령감림을 강조하며 예배를 드리는 중요한 이유는 성령강림과 나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즉 성령이 오셨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성령이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기 때문에 세상에 모든 사람이 다 자동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살펴볼 중요한 몇 가지 말씀이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고전 2:12, 개정)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은 성령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성령님은 받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말로는 영접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마 10: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구원이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라면 성령님도 하나님이 주실 때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 중에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령님을 어떻게 받아야 합니까?
우리가 잘 아는 데로 예수께서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실 때 제자들에게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이 오실터이니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때는 유대인의 큰 절기인 오순절이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은 제자와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께서 그것으로 임재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세상에 오셨지만, 모두가 다 받은 것이 아니라 주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받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강제로 사람에게 들어오시지 않습니다. 그분이 녹크하시고 감동을 주실 때 인정하고 영접하는 분들에게 주십니다. (행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죄를 회개한다는 의미이고 성령을 받고 싶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은 이미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당신을 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성령님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받으신 분들은 그분과 끊임없이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마지막 때를 승리하며 사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으로 돌아오면 성령을 받는 일과 관련해서 매우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갈 5:17, 개정)의 말씀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성령을 받고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거스리는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우리 육체가 하는 일을 거스린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육체는 성령이 하고자 하는 일을 거스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이 서로 대적하여 우리가 원한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시는 성령, 우리 구원과 관계된 성령,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세상을 이기는데 반듯이 필요한 성령님이 다 좋은데 이게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은 이것을 성령의 부작용 이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령을 받으면 우리 마음 안에서 나를 대적하는 일이 생기는데 그래도 성령을 받으시겠습니까? 한동안 매주 힘들 수도 있는데 받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성령을 받지 않으시려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까?
고전 2:14절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육에 속해 있으면 성령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에 속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요? 육에 속한 사람이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말합니다. (요 3:6-7, 개정)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한 마디로 육에 속한 사람이란 성령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강림 후 세상에는 사람을 구분하는 새로운 기준이 생겼습니다.
바로 성령 받은 사람과 성령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성령 받지 않은 사람은 영적인 일에 대해 눈이 멀었고, 귀가 닫혀있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나아가 영이신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예배드릴 수 없고, 믿음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린 이것을 영적 식물 인간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 받은 사람은 영적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보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을 매 예배 현장에서 그리고 삶의 현장에서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상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안에 들어오면 거스리고 대적하고 못 하게 하는 일들이 생길 것인데 영접하겠느냐? 오늘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성령을 받아들이면 내 인생에 엄청난 일들이 생기는데,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엄청난 갈등들을 감당하시겠습니까? 때로는 가정에 불화가 생길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친구들에게 따 돌림을 당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사회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도 있는데 감당하시겠습니까?

참고로 믿음의 사람들은 다 그런 일들을 감수하고 성령님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란! 다윗, 요셉, 다니엘, 에스더, 초대 사도들 근대에 손양원 주기철 등등입니다.

솔직히 성령님을 선물로 받은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유는 그분이 내 일생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체와의 대적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성령과 대적하는 육체의 욕심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그 육체의 욕심에 대해서 상세하게 나열을 했습니다. 19절부터입니다. (갈 5:19-21, 개정)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15가지나 됩니다.

그런데 바울이 열거한 육체의 욕심을 자세히 살펴보면 모두 죄와 관계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죄와 관련된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결단하기가 쉬워졌을 것입니다. 육체의 욕심이 이런 죄와 관련이 있다면 받듯이 성령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에서 갈등이 일어나더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마음의 갈등이란! 대적이란! 이런 것입니다.
성령이 음행, 더러운 것, 술취함 분쟁, 분냄 이런 것과 싸우시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하면 안 된다고 갈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상에 무엇이 누가 이런 것을 이기게 하겠습니까? 오직 성령께서 만이 육체의 소욕을 이기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님과 늘 동행하시고 그분에게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너희가 만일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 안에 수없이 많은 육체의 소욕이 있고, 세상에는 그것을 이기게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성령의 인도하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육체의 욕심은 율법과 관계가 있습니다.

25절에는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말인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행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되는 것입니까?

1) 우선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동안, 설교를 듣는 동안, 기도하는 동안, 영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안 우리 심령 속에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생각과 일으켜 주시는 선하고 거룩한 마음을 주시해야 합니다.

2) 다음으로 그 생각과 마음을 분별해야 합니다.
성령이 주시는 것인지 아니면 내 육신의 욕망에서 나온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확인시켜주십니다. 우리 마음이 평안하고 또 그 일을 생각하면 기쁨이 가득합니다. 비록 장애물이 있고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과 마음을 따라야 합니다. 주저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인도하심을 따라야 합니다. 이때 성령께서 세밀하게 역사하십니다.

3)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본문 22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할 때 우리 안에 성품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령의 열매라고 표현해 놓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의 열매”라고 한 점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 주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의 열매를 단수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 아홉 가지 열매를 성령의 열매들이라고 표기하지 않고 하나의 열매로 표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홉 가지 성품의 모습은 한 가지 성품의 여러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사랑은 할 수 있는데 충성이 부족하다. 나는 오래 참는 것은 잘하는데 절제가 잘안 된다’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열매로 이루어진 성품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본연의 성품의 특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성품을 새롭게 빚으실 때 이 아홉 가지 성품의 모습이 하나같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오래 믿으면서도 우리 성품 때문에 아직도 고민이 된다면 아직 성령의 열매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성품 때문에 주변에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도 성령의 열매를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온전히 성령께 맡기고 성령께서 우리 성품을 새롭게 빚어주시도록 다 맡겨야 하겠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각자의 심령 속에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안에 내주해 계시는 성령을 따라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이 주시는 능력으로 육체의 일을 끊고, 그분께서 우리의 성품을 새롭게 빛어 주시기 바랍시니다.

적용

사랑하는 여러분!

키위새를 아십니까?
뉴질랜드에 있는 새인데 날지를 못합니다. 그렇다고 타조처럼 잘 달리지도 못합니다. 에뮤처럼 덩치가 큰 것도 아닙니다. 아주 작은 새인데 날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멸종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원래는 잘 날던 새입니다. 그런데 천적도 없고 땅에 지천으로 먹을 것이 널려있어서 날지 않고 오랜 세월을 지내다 보니 결국 날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을 받았으나 성령의 능력이 없는 것은 키위새처럼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미 받으신 성령의 능력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의 이름을 부르시고 성령님을 의지하시고 성령님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를 인격적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능력이 회복될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육신이 통제가 안 되는 시대입니다. 시대가 지나도 말과 소는 재갈과 고삐로 통제가 가능합니다. 큰 배도 작은 키로 통제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시대가 기면 갈 수로 통제가 안 되는 것은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살면, 성령으로 살게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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