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창세기 41:37~40
2022.05.29.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청계천에는 청혼의 벽이라는 곳이있습니다. 대형 멀티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지요. 그곳엘 남자들이 여자들을 데리고 갑니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대형 스크린에 영화처럼 한 남자가 꽃을 들고 등장합니다. 그리고 음악과 함께 멋있는 목소리로 “선영씨 사랑해 우리 결혼해 내가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그러면 여성분들이 감동을 받는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보니까 그곳에서 777번째 청혼 이벤트가 있었다고 하는데, 777번째 이벤트가 있는 날 청혼 성공률은 100%였다고 합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감동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기업에서는 이런 감동받고 싶어 하는 시대 흐름을 놓칠새라 마케팅 전략에도 ‘고객 감동 전략’을 세워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감동은 대다수가 인위적이라는 것입니다. 의도적이고, 가공된 것들입니다. 억지로 감동을 이끌어 내려고 만든 일종의 ‘쑈’요 ‘이벤트’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마는 것입니다.
진정한 감동은 순수함에서 나옵니다. 진정한 감동은 자연발생적입니다. 진정한 감동은 잔잔함에서 우러나옵니다. 감동은 분명, 만족보다 차원이 높은 차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가 바로 감동을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왠만한 말에는 반응이 없습니다. 웃기는 이야기를 해도 웃지를 않습니다. 슬픈 이야기를 해도 슬퍼하지 아니합니다. 놀라운 이야기를 해도 놀라지도 아니합니다.
성경은 이런 시대를 한마디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 11:17)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하여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라고 했습니다.
본문은 당시 최고의 강대국 나라인 애굽의 왕이 한 청년을 보고 이런 말을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오.” 라고 했습니다. 왕이 히브리에서 팔려 온 한 청년의 말을 듣고 한 말입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가 꿈을 꾸었는데 애굽사람들은 그 꿈을 해석하지 못하는데 이 청년이 왕이 꿈을 해석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이 무슨 꿈을 꾸었는데 애굽사람들이 그 꿈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라일 강에서 살진 일곱 마리의 소가 올라오더니 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강가에서 흉악하고 파리한 일곱 마리의 소가 나오더니 살진 소를 다 잡아먹었습니다. 바로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꿈같 아보였습니다. 다시 잠을 청하여 잠이 들었는데, 또 꿈을 꾸었습니다. 무성하고 충실한 한 줄기에가 보이더니 그 줄기에서 일곱 싹이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후 가늘고 바른 일곱싹이 나오더니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싹을 다 삼켜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그 꿈을 단번에 해석했습니다. 애굽에 7년에 큰 흉년이 든다는 것입니다. 41장 25절~ 하입니다. “살찐 일곱 암소와 좋은 일곱 이삭은 7년을 풍년을 말하는 것이며, 마른 일곱 암소와 좋지 않은 일곱 이삭과 일곱 해를 말하는데 바른 소가 살진 소를 잡아 먹고 마른 이삭이 살진 이삭을 잡아 먹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땅에 7년 풍년이 들고 후에 7년 흉년이 든다는 뜻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청년의 말을 들은 왕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리고 이 청년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여기서 뭐 느끼시는 것은 없으신지요? 저는 여기서 하나님의 섬리하는 일들이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사용하시려고 이런 일을 사셨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누구는 요셉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당시에 최고의 나라의 왕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잠에서 깨어난 바로는 애굽의 술사들을 다 불러 놓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해석을 못 했습니다. 지난밤 왕이 불길한 꿈을 꾸었는데 애굽에 왕이 꾼 꿈을 해석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은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당시 왕이 돈이 없습니까? 권력이 없습니까?
그때 술관원장이 왕에게 요셉을 소개했습니다. 전에 자기가 감옥에 있었을 때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요셉이 해석해 주었고 그의 해석대로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바로는 그를 당장 데려오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요셉이 감옥에서 왕의 호출을 받고 바로의 왕궁에 오게 되었고 왕의 꿈을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하시고, 요셉이 그것을 해석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도적인 역사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전이나 지금이나 후에도 이런 식으로 나타나게 되는 줄 믿습니다. 그럴 때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그렇게 사용 받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바로에게 이런 꿈을 주셨고 요셉을 왕궁으로 들어가 바로 앞에 서게 하셨을까요?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세상에서 사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학교를 가고 직장을 다니고 사업을 하는 목적이 될 것입니다.
요셉은 바로의 꿈 이야기를 듣고 제일 먼저 이런 말을 했습니다.
25절이지요 “바로의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 이해하시기에 어렵지 않으실 줄 앎니다. 요셉의 말은 바로가 꾼 꿈은 하나님이 하시일을 바로에게 보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말입니다. 이것 중요한 말씀입니다. 바로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실 일이란! 도대체 어떤 일이기에 그것이 무엇인데 주의 종이나 선지자나 예언자가 아닌 악한 바로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까? 그것이 요셉을 사용하실 일이라면, 요셉에게 보여 주시야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이방의 왕에게 보여 주시느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실 일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하실 일이란! 요셉을 통해서 애굽에서 출애굽의 역사를 만드시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훗날 우리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게 하시려는 구원의 매뉴얼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 중요하고 큰일을 하나님께서 이방의 왕에게 보여 주셨다는 것이고 요셉에게 그것을 해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여기서 느끼시는 것은 없으십니까? 저는 그런 것을 느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꼭 선지자나 예언자나 오늘로 말하면 목사나 장로나 주이 종들에게만 보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실 뿐만아니라, 심지어 세상에 악한 사람들에게도 보여 주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하나님은 세상에 권력자, 부한자, 지식자, 유명인을 사용하시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린 그런 예를 구약에서 바사 왕 고레스(주전 538년)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이런 조서를 내렸습니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라고 공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을 할 때 일입니다. 이방 나라왕이 다니엘과 그 친구들에게 감동을 받고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는 것입니다.
신약에서는 바울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울은 핍박자 였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서슴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고 그를 13권의 신약 성경의 저자로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함께 생각할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방 사람들을 통해서도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요셉을 왕에게 보낸 것처럼 나를 보내실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디를 가든지 누구앞에 서든지 늘 하나님 앞에 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왕 앞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했을까요?
28절 이하입니다. “내가 바로에게 이르기를 하나님이 그가 하시는 일을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라고 하면서 요셉은 요셉의 의견을 바로에게 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이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29~33절입니다.
“왕이시여 앞으로 이 땅에 7년에 큰 풍년이 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는 7년 흉년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왕께서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7년 풍년 기간에 오분의 일을 거두어 두었다가 흉년을 대비하여야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게 히브리에서 종으로 팔려 온 청년이 당시 세계최강의 나라 왕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저는 요셉이 애굽에 주는 영향력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방식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세상에 주는 영향력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고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찾아오셔서 은혜를 주시고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인도해 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곳으로 나가야 하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합니다. 성령이 말씀을 주실 때 말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그렇게 요셉은 바로의 궁으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그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바로의 반응입니다. 바로는 요셉의 꿈해몽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가 권하는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까? 요셉에게서 선한 영향력이 나갔습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이 설교를 듣는 이유가 아니겠습니까?
37절입니다. “바로와 그의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8절에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39절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은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오늘 성경 중에 가장 은혜로운 말씀이 이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25절 때문입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라”라고 했는데, 39절에서 바로는 “하나님이 이 모는 것을 네게 보이셨다”고 하고 있습니다. 서로 나 말고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보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은혜롭고 감동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의 역사인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빛을 갚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냥 말이 아닌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 하나님의 말을 했으니 얼마나 큰 역사가 일어날까요?
오늘 애굽의 왕은 요셉의 꿈 해몽과 그가 권하는 말에 크게 감동을 받고 다음과 같은 명을 내렸습니다.
41절 “너는 내집을 다스리라 내 백서이 네 백성이다.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왕좌 분이다.”
42절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에 손에 끼워주고 세마포에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 주었습니다.
44절에 온 애굽땅에 요셉의 허락 없이는 수족을 놀릴자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요셉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하루아침에 왕이 가지는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당시 누구도 요셉이 애굽 왕궁에 들어가게 될 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더더욱 그가 애굽의 국무총리가 될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혹 남이 모르는 사이에 요셉이 애굽 왕실에 들어가려고 공부를 했거나 준비를 한 것도 없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이인자가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지금까지 살게 된 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떤 노력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목사가 되고 직분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남들보다 의롭게 살고 이웃에게 구제를 많이 하고 늘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에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갈 수 있습니다.
혹 이유가 있다면 누군가가 나를 위해 기도를 했었을 것입니다. 아니면 조상 중에 믿는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쌍히 여기셔서 천군과 천사를 보내셨고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의 마음을 감동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궁전에 들어가게 된 것과 그가 왕의 꿈을 해석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결코 그의 실력이 아닙니다.
그가 왕의 꿈 해몽을 잘했습니다. 그리고 꿈과 관련해 왕이 해야 할 일을 아주 잘 말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왕은 큰 결단을 내리고 애굽을 새롭게 다스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이 일에도 누구의 실력이나 노력도 없었습니다. 여기에도 오직 하나님의 감동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감동은 애굽 온 나라를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애굽은 원래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감동은 이방의 나라라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움직여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들의 마음을 주관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누구라도 세상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감동의 원천이십니다. 창 1장 4절을 보면 첫째 날 빛을 만드셨습니다. 성경은 그 빛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을 만드시고 그 빛을 보시면서 감동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매일 매일 감동을 연발하셨습니다. 특히 마지막 날에 인간을 만드시고 모든 창조를 끝내시고는 더욱 크게 감동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심히 좋았더라.”감동의 시작은 하나님이십니다. 감동의 하나님은 피조물을 통해 감동을 받으십니다. 감동을 받으신 하나님은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 바로 왕은 요셉에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원래 바로는 요셉을 잘 모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자신의 시위대장의 부인을 겁탈을 하려다가 감옥살이를 했다는 사실 정도만 압니다. 자신의 신하로부터 꿈 해몽을 잘한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별로 대단한 호감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꿈자리가 너무 사나와서 그리고 자신들의 술사들이 해석을 못 한다니까 그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그의 꿈 해몽은 보통 사람들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바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창 41:38)“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바로에게 은혜는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요셉에게 은혜는 하나님의 그의 머리와 마음과 온몸을 감동시켜 바르게 꿈을 해몽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성령님은 보내셔서 감동을 받으시고 감동을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통해 감동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봉사와 헌신에 감동하십니다. 우리의 예상치 못한 큰 믿음을 보시고 크게 감동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이 전능한 분이심을 알리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감동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감동의 원천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마음을 움직여 주시고 찬양하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시고, 죄를 생각나게 하시고 회개를 도와서 예수를 믿게 해 주십니다. 감동이 없는 시대에 살면서도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 가운데, 오셔서 만져주시고 자극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면 우리 마음이 움직입니다. 마음이 열립니다. 하나님의 감동의 역사를 경험하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가 원래 기독교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이 나라는 우상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 나라가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감동에 순종하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우리나라를 찾아온 선교사님들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분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은 우상의 나라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곳이 이방 나라이든 그것이 감옥이든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신다고 믿는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왕이 자신을 찾을 때 특별히 잘 보이려는 노력이나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곳을 성공의 기회가 될 거라는 기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혹 그가 기대를 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을 전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에 순종해야 합니다. 감동은 성령이 역사입니다. 성령이 믿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는 이유는 세상을 감동하시려는 것입니다.
바로은 요셉을 통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창 41: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다윗도 성령에 감동된 사람입니다.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적용
오늘 말씀을 정리해 보면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그 감동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을 세상에 보내셔서 세상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하더니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일개의 종이 왕에서 나가는 것만도 영광인데 나라의 운명을 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지금 애굽은 요셉이 말하는 대로 움직여 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성령에 순종하여 세상으로 나가서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면 세상은 하나님의 방식대로 움직여진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은 그 어느 때 보다 세상이 악합니다. 무섭습니다. 이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우리가 성령의 감동을 받고 나가서 성령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직장도 나라도 마을도 지역도 감동시킬 수 있으며, 악하고 무거운 사람도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한주간도 성령님과 동행하시고 성령에 감동되어 사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