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만 하옵소서
마태복음 8장 5~18절 (10-13)
2026.01.18. 강북꽃동산
로마가 유대를 점령했을 때, 유대 거리에는 로마 군인들이 제 집처럼 할부하며 다녔습니다.
로마는 유대를 점령한 뒤 2~3개 군단(약 1만~1만5천 명)과 다수의 보조 군을 주둔시켰습니다.
한 군단은 약 5,000~6,000명의 보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군단 안에는 천 명단위, 백 명단위로 나눠 관리했는데 천명을 관리하는 사람은 천부장, 100명을 관리하는 사람을 100부장이라고 했습니다.
군단의 주된 업무는 유대인들을 감시하고 반란을 막는 일입니다. 예루살렘과 가이사리아 등 주요 거점에는 상시 주둔 병력이 있었으며, 반란 시에는 추가 병력이 파견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럴 때, 저들은 불랙리스트를 만들고 관리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저들에게 예수님은 관리대상 1호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구름떼와 몰려 다녔으니, 그래서 저들은 매일 예수님의 동선을 파악하고 혹 반란이 나지 않는가를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가버나움이라는 곳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로마의 백부장이 몇 명의 군사들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말을 타고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백부장은 예수님이 계시는 공간으로 들어갔습니다. 당시 유대 상황을 아는 사람이라면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반란을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왜 왔는지 궁금합니다. 그가 와서 예수님께 이런 말을 합니다.
(마 8:6, 개정)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말입니다. 다행입니다. 반란 그런 거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다입니다. “하인이 중풍병으로 쓰러져 몹시 괴로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와서 고쳐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인을 데리고 오겠다는 것도 아니고, 기도를 해 달라는 어떤 말도 안 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당황스럽습니다.
로마의 백부장이 한 젊은 유대인을 찾아와 왔다는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오해를 받을 반한 일이죠. 당시 백부장은 권력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그런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자체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음은 부하가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한다고 했는데,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그래서 백부장이 그것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 8:9, 개정)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그 아래 있는 군사를 보내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인이 아픈 일을 가지고 백부장이 직접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 아닙니까? 무슨 의도입니까?
이상하지요.
하인이 중풍으로 쓰러졌다면 병원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당시 유대에는 자기들이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병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하인이 쓰러졌는데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여러분은 이 백부장의 의도를 알고 계십니까? 예수님은 집으로 모시고 가려는 것 아닙니까?
백부장 예수님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일까?
정말 하인의 일 때문입니까요? 혹시 다른 의도는 없는 걸까요?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가 어떤 말을 하는지 상황을 관찰 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말을 들으시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입니다.(7절)
이제 그가 반응을 보일 것입니다.
백부장이 예수님께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 8:8, 개정)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이건 무슨 말입니까? 오시라는 말입니까? 오시지 말라는 말입니까?
저는 “내 집에 오지 말라”는 것을로 들렸습니다.
그렇다면 이상하지요.
주께서 가서 고쳐 주겠다는데 오지 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이 백부장 왜 이러는 것 같습니까?
혹시 저가 바리새인들과 짜고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이 상황을 누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백부장이 예수님께 와서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라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가서 고쳐 주겠다고 해셨습니다. 백부장이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려고 온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오시지 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8장 5–13절에 나오는 백부장과 예수님의 대화입니다. 상황을 조금 더 깊게 살펴보면 백부장의 의도가 보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직접 나아와 자신의 하인이 중풍병으로 심하게 고통받고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는 백부장이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려 했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그는 단지 예수님의 권능을 의지하여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당시 사회적·문화적 배경을 보면, 유대인과 이방인(로마인) 사이에는 교제에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백부장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오히려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백부장의 말을 들으시고 곧바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여기에 오늘 우리들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있을 것입니다.
정리해 보면 백부장이 하인을 위해서 예수님께 나온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려는 생각으로 온 것은 아닙니다. 그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그래서 백부장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려고 합니다.
아마도 백부장에게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갈 수 없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갈 수 없는 이유가 무엇 같습니까?
당시 많은사람들이 예수님은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이 최고로 복을 받는 길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는 것만이 문제를 해결 받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백부장이 자기 집에 오심을 거절한 것에 대해서 예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그날 백부장은 로마 화려하고 권위적인 장교의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왔을 것입니다. 당연히 그 주변에는 호위병 몇몇 함께 왔을 것입니다. 남들이 볼 때 얼마나 당당하고 위엄 있어 보입니까?
반면 예수님은 늘 정해진 휘장 같은 옷에 햇빗에 그을린 검으 수르한 모습은 왠지 없어 보이고 초라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가서 고쳐준다고 하는데, 내 집에 오지 말라니 혹 홀대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오늘 성경은 편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8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주여! 나는 주님이 1) 내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니 여기서 2)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집의 하인이 넉넉히 낳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백부장이 생각할 때 예수님은 너무도 귀하신 분이시라서 감히 내 집처럼 천한 곳에 모시기에 너무도 송구스럽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백부장 마음속에는 감히 예수님 앞에 서 있는 것조차도 부끄럽기 한이 없는 죄인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려고 온 것이 아니고 다만 예수님께 종의 이야기를 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관심을 가지시면 주님이 어디에 계시든지 낳을 것을 믿는 확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종의 이야기를 했던 것인데 주님이 직접 오신다고 해서 얼마나 황송하옵고 당황했는지 몰라했습니다. 백부장 마음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놀라운 믿음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백부장이 가지고 있는 믿음은 어떤 믿음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그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전에 성부 하나님과 함께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써 지금도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도 잔잔케 하시고 귀신들을 명하여 쫓아내신다는 사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씀 한마디만 하면 자기의 종을 중풍병에서 일어서게 할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믿음 특별하지 않습니까?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믿음과 다르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고 싶어도 모시고 가지 못하는데 예수님이 직접 가신다고 하는데 하인이 일어나는 것은 보장된 것이아닙니까? 그런데 오시지 말라니요? 그러다가 괜히 못 고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그는 예수님을 창조자로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백부장에게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8절입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는 그의 말에 믿음이 있습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여기엔 주어와 여러 가지 문구가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의 말을 해석해 보면 이렇습니다. “주여! 주님께서 여기서 말씀하시면 내 하인은 우리 집에서 낫겠습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게 어떻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일을 보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어떤 도구도 사용하지 않으시고 오직 말씀으로만, 물리적인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는 흙이라는 물리적인 재료를 사용하셨지만, 그것은 사람을 특별하게 만드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섬리이셨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백부장이 다만 말씀으로만 하오소서라는 것은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처럼 말씀하시면 내 집에 하인이 낳을 수 있다는 믿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저에게 어떻게 그런 믿음이 있는 것입니까? 그가 말했습니다.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말씀이라는 중요한 단어가 등장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배웠습니다. 은혜의 방편 세 가지는 말씀, 기도, 성례라고 말입니다.
요즘 우리는 믿음을 주제로 40일영성회복 새벽예배를 하는데, 지난 27일동안 믿음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앞으로 12일 남았습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은혜의 방편을 통해서 하나님께 받는 선물입니다. 은혜는 믿음을 전달하는 반편입니다. 오늘 예배에 혹 은혜가 됩니까? 그 안에 믿음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 마음속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믿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은혜의 방편인 하나님의 말씀이 심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믿음을 심었을 것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놀라운 믿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무례하지 않았습니다. 인격적이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전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처럼, 주께서 여기서 말씀을 하시면 집에 있는 하인이 낳을 것을 믿는 믿음 있었습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발견한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평가를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하셨습니까?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 하였느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주님께서도 그의 믿음에 놀라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중에서 이런 믿음의 보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찾아올 때부터 그의 믿음을 보고 계셨습니다. 이런 부분이죠
6절에 “이르시되 주여”, 8절에서 “이르시되 주여”라는 부분입니다. 백부장은 처음 뵙는 예수님 앞에서 “주여”라고 말했습니다. “주”는 왕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잘 아는 대로 당시 로마가 유대를 장악하고 있을 때 “주”는 오로지 로마의 황제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백부장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백부장에게 있는 예수는 메시아이며 왕이시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감히 주 예수를 집으로 모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을 다 알고 계신 주님이 새삼 놀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1~13절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11~12절인데 이 백부장과 같은 사람들은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이고, 이스라엘의 본 자손들은 바같 어두운데 쫓겨나 울며 이를 갈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 없으면 고백할 수도 없고, 고백이 없으면 유대인 일찌라도 버리신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13절에 백부장이 믿음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백부장의 믿음대로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지 않았지만 하인은 중풍병에서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상정을 가지고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우리의 “주”이십니다. 예수를 주로 믿는 이 믿음은 세상이 아무리 어렵고 험악해도 우리를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성령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령 시대의 특징은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기도하면 저기서도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의 고백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에 관심이 많으신 이유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