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적을 보여주시는 목적
요 4:46-54
2025.09.28. 강북꽃동산교회
“1.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야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2.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야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임승원씨가 작사하고 백광재씨가 작곡한 아동성가입니다.
어렸을 때 교회를 나가본 사람은 다 알만한 노래입니다. 믿음을 강조한 노래이지요. 이 노래는 교회 본질과 기독교의 본질을 말 할 수 있는 대표적인 노래입니다.
오늘 본문은 믿음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어떤 아버지가 예수님을 급히 찾아왔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급히 찾아온 것은 아들이 병이 들어서 위독한데, 찾아온 이유는 오셔서 좀 고쳐 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예수께서 그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 갑자기 초면 일턴데 ‘너희’라고 하면서 싸늘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성경을 보니까 예수님을 급하게 찾아온 사람은 왕의 신하였습니다. 그에게 아들이 있는데 그 아들이 병이 나서 위독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왕의 신하가 아들이 병이 들었으면 병원에 가야지 왜 예수님께 온 것입니까? 병원에는 안 갔던 것입니까?
혹 돈이 없는 것입니까? 의사가 없는 것입니까? 왜요? 갈 곳 다 가보았고, 유명하다는 의사에게 왜 안 가봤겠습니까? 그런ep 어떻게 예수님을 다 찾아왔다는 것입니까?
47절에 보이시죠?
(요 4:47, 개정)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rk 보이시지요? 즉, 예수께서 오셨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소문은 그를 예수님께 오게 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어떤 소문을 들었다는 것입니까? 죽은 자를 살리는 소문, 바다를 잔잔케 하셨다는 소문, 귀신을 쫓아내는 소문, 눈 먼자를 보게 했다는 소문,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했다는 소문, 무슨 소문을 들었을까요? 아마도 병자를 고쳤다는 소문을 들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또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지금까지 예수님은 그런 기적을 일으키신 적이 없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사적을 막 시작하신 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것은 하나 있습니다. 갈리리 가나 잔치집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던 일입니다. 오늘 주님이 갈릴리 가나에 다시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들을 고쳐 달라고 온 아버지가 들은 소문은 예수께서 얼마 전에 있었던 혼인집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소문을 듣고 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그렇지요? 아들이 죽에 생겼는데, 그 소문을 듣고 병을 고져 달라고 온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본문에 나오는 왕의 신하는 누구인지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누구일까요? 왕의 신하는 당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고 있던 분봉왕 헤롯 안디바의 신하를 말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이 사람은 헤롯 안디바의 친척이거나 왕궁의 고위 관리이거나, 아니면 왕궁 수비대의 고급 장교일 것이라고 합니다. 어쨌든 이 사람은 당시 신분이 높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자기의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당시 의사도 아니고 낮고 천한 신분의 한 청년,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님 앞으로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가나 지역까지 말입니다. 거리가 얼마나 될까요? 약 34킬로나 되는 먼 길입니다. 그가 그렇게 와서 예수님께 겸손히 머리 숙여 자기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자존심 체면 다 내려놓은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께서 저에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요 4:48,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친절한 말씀 아닙니다. 혼나는 뜻한 말입니다. 자존심 상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이 회담이라면 결렬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말씀에 중요한 단어와 메시지가 있습니다.
중요한 두 개의 단어가 보이죠? 하나는 표적과 기사, 그리고 또 하나는 믿음입니다. 주님은 이 두 단어를 이렇게 상용하셨습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않으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고 말입니다.
이를 정리해 보면 믿음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온다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왕의 신하에게 ‘너희는’이라고 했는데, 이방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들뿐이겠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이나 오늘 우리도 물이 갈라지고, 죽은 사람이 일어나는 표적을 보지 못했지만, 주님이 주시는 표적이 버금가는 것들을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중요한 일입니다.
믿음이 표적과 기적와 관계가 있다는 말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표적을 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왕의 신하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들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알 수는 없지만, (요 4:47, 개정)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말에서 상태가 위중한 것은 거의 죽게 되었다는 말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요 4:49, 개정)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라는 말이 아들의 상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모시고 가서 죽어가는 아들을 살릴 수 있을까요?
다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 4:50, 개정)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당황스럽지 않습니까? 이 일이 가능한 것입니까? 예수님을 모시고 가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들이 산다는 것입니까? 기도를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먼 길을 달려왔는데 그냥 가라니요.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냥 갈 수 있습니까? 갈 수 있다면 무슨 근거로 갈 수 있습니까? 혹시 이런 의심은 어떻게 해결하시겠습니까?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는 말씀 말입니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에 대해서 오해하기에 충분은 말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왕의 신하에게 그것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왕의 신하에게 “가라 네 아들이 살아있다.”라고 하시자 왕의 신하가 바로 일어나서 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요 4:50, 개정) “….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라는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만 믿고 바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께 와서 아무것도 본 것이 없습니다. 아들이 낳았다는 어떤 증거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만 낳았다는 말씀만 들었을 뿐입니다. 증거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말씀만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왕의 신하는 그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왕의 신하는 하나님과 교회를 위하여 한 것이 없습니다. 그저 아들을 고치기 위해 그 먼 길을 달려왔을 뿐입니다. 예수님께 헌금을 드린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왔다가 꾸중같은 말만 들었습니다. (요 4:48)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낳았다니 그것을 어떻게 그 말씀을 믿으라는 말입니까? 어떻게 그 말씀만 듣고 돌아가란 말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람은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돌아갔습니다.
아직 표적을 보기 전입니다. 이게 오늘 말씀에 핵심입니다.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요?
저는 두 가지 때문에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한가지는 소문 때입니다. 그에게는 이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래서 그 소문은 그 마음에 믿음을 주었고 그 소문은 그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여 30킬로가 넘는 그 먼 길을 한순간에 달려오게 했습니다.
여러분! 이 소문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소문은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 은혜 속에는 믿음이 있다는 사실이지요. 그리고 그 믿음은 그가 예수님께로 나오기에 넉넉한 믿음인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 앞에 나온 것은 큰 믿음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지요? 우리의 이성과 판단 결정으로 우리는 오늘 주 앞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나와 예배하며 헌신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듣고 배웠던 예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예가 너무도 많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을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나와서 병 고침도 받고, 이적과 표적을 보기도 했습니다. 베세다 광야에서 예수님이 만드신 기적의 떡을 먹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다구원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단지 은혜에 불과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에서 작은 믿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믿음 큰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을 받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왕의 신하는 오늘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예수님께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네 아들이 살아있다.” 그의 믿음은 여기서 생겼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믿음의 말씀을 하셨고 그는 그것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은 소문을 듣고 30킬로가 넘는 곳을 한숨에 달려 온 것도 믿음이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선포를 듣는 순간 더 큰 믿은 성숙한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도 이 믿음의 원칙은 동일합니다. 주님이 선포하시면 그 순간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능력이 나갑니다. 낳았다고 하면 믿으면 낳았고 두려워 말라고 하셨으면, 두려워 안 하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얼마든지 주의 은혜가 있다면 그 작은 믿음으로 주 앞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오면 더 큰 은혜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구원받은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주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경험이 있어야 하고 주께서 인정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와 주님의 말씀만 믿고 순종하며 집으로 가는 왕의 신하는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주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사람과 말씀을 듣는 사람이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라셨습니다.
왕의 신하가 주님 말씀을 믿고 자기 집 가버나움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멀리서 하인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주인의 아들이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자초지종 들어보니 그 아이가 나은 시각이 예수님께서 네 아들이 살아있다고 말씀하셨던 바로 그 시각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 소식입니까?
왕의 신하의 마음에 큰 결단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바로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일가와 친척들을 다 집으로 초청하라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아직 이 사람이 집으로 가서 아들이 나은 것을 확인했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물론 집으로 가서 아들이 나은 사실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본문을 보면 이 아들이 어떤 병에 걸렸었는지 그 병세가 얼마나 중한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병이 나은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역시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이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중요할까요? 그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일가와 친척 온 집이 다 이 사실을 알고 믿기를 원했습니다. 53절입니다.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주님이 행하진 7개의 표적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가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표적은 첫 번째 표적입니다. 본문 54절을 보면 “두 번째 표적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20:30~31에 보면 표적의 목적이 정확하게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두 가지이지요. 하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믿고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인 많이 있는데 일곱 개만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지만, 오직 이것만을 기록한 것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로 하여금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려는 것과 그로 인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적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두 번째 표적입니다. 오늘도 주님이 표적을 보여주는 이유는 당시에 사람들과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여러분들에게 큰 믿음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적용
주님의 사역은 그 자체가 표적과 기사의 장이었습니다. 움직임 자체가 표적이었습니다. 소문자체가 기사였습니다.
왜 주님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까? 믿음 때문입니다. 제자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였고 따르는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였습니다.
(요 2:11)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 2:22)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요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표적은 은혜요 선물입니다. 표적에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표적 자체가 믿음이거나 구원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신 것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표적을 보이고 계십니다. 크고 작은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때로는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하시기도 합니다.
지금 세상에는 표적이 필요합니다. 표적이 필요한 이유는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질서를 지키고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하나님의 표적이 필요 없다고 하는 시대입니다.
이유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아도 못 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못하는거 없습니다. 병도 고치고 사람도 만듭니다. 하늘도 올라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믿음입니다. 은혜 기적이 없으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믿음을 얻기 위해 교회를 나오고 믿음으로 교회를 다닐 수 있고 믿음이 있어야 구하기도 하고 믿음이 있어야 찬양도 하고 봉사도 할 수 있다. 믿음으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믿고 믿음으로 구원을 믿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세상이 평안하고, 세상이 험해도 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축복과 상을 기다립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에는 표적인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근거가 하나님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표적이나 은혜를 주셔야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하나님의 은혜인 표적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겠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서 다음 말씀으로 정리했습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오늘도 예배 중에 은혜를 받으시고 큰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뵈어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