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명분
창세기 25:27-34
2025.09.21. 강북꽃동산교회
전에 손을 다쳐서 초음파 검사를 해 본적이 있는데, 참신기했습니다.
초음파 스케너로 다친 손에 대고 모니터를 통해서 보는데 피가 흐르는 것이 보이고 뼈와 뼈 사이 관절이 다 보이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끊어진 곳에 상태인데 잘 연결됐습니다. 의사가 제 엄지손가락을 잡더니 살짝 구부렸습니다. 그때 신기한 건 인대가 살 속에서 들어갔다 나왔다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보고 살짝 움직여 보라고 해서 했더니 인대가 고무줄처럼 팔쪽으로 올라갔나가 내려왔다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참 좋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살 속에 감추어진 것까지 다 볼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임신한 여성분들 아이가 세상으로 나오기 전에 어머니 뱃속에 아이 상태도 미리 볼 수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천년전 한 여인이 아이를 잉태했는데 배가 너무 이상해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창 25:22, 개정)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 25:23, 개정)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라고 했습니다. 쌍둥이라는 것입니다.
4천년 전, 아직 의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에 아기엄마 태속에 두 명의 남자아기를 임신했고 그 아이들이 태 속에서 싸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분이시고 영이시기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심지어 생각까지 다 알고 계십니다. 머리카락까지 세신다고 했습니다.
오늘 중요한 것은 태속에 두 아이가 있는데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에 그 결과 나중에 큰 자가 어린자를 섬기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들의 탄생과 이들이 세상에 나와서 싸우는 과정을 볼 것이고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될 것입니다.
해산의 기한이 차서 여인이(사라) 아이를 낳았습니다.
한 아이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데 범상치 않았습니다. 얼굴이 붉고 머리가 시커멋습니다. 우렁찬 울음소리, 팔뚝에 떨이 보글보글했습니다.
이어서 또 한 아이의 모습이 보이는데 손이 먼저 보입니다. 오늘 우리가 당황스런 것은 손 때문입니다. 손이 형의 발목을 꼭 잡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먼저인데 얼굴은 안 보이고 손이 보였습니다. 아주 특별한 과정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의 이름을 지을 때 이들의 출생과 관련해서 지어 주었습니다.
먼저 나온 아이, 털이 많아서 붉다는 뜻의 이름을 자진 에서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형의 발꿈치를 잡고 나온 아이는 잡았다는 뜻을 가진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치고 박고 살았던 아이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이제부터는 저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사는지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엄마에게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길 것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섬기는 자가 되는지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아도 저들이 자라면서 얼마나 치고 박고 살았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그들이 어느 정도 성장했을 때, 한 장면이 기록되어 있어서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27~34절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내용을 보니까 야곱이 자기는 차자로 에서의 동생이 된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마음속에는 차자에 대한 불만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좋게 생각하면 축복에 대한 열망이 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불만이 많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이 야곱을 어떻게 생각하시는 하지요? 우리가 이 야곱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야곱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 계속 따라가 보겠습니다.
야곱이 장성하여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직까지도 장자권에 집착하고 있었습니다. 31절 “야곱이 이르되 형에 장자의 명분을 내게 팔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야곱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장성한 지금까지 장자에 대한 명분을 한 번도 포기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장자권을 살 수만 있다면 사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딱 기회가 온 것입니다.
형에서는 날때부터 야성적이라서 밖으로 다니고 사냥을 즐겼습니다. 아버지는 에서가 잡아 온 사냥 고기를 즐겨 먹었습니다.
오늘도 에서는 사냥을 하러 들로 나갔습니다.
이것이 야곱에서 기회가 되었습니다. 꼭 이날을 의도적으로 기다렸다기보다는 어떻게 하나다 보니까 지금이 형에게 장자의 명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어머니에게로 달려가서 음식을 만들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 대한 특별한 연민이 있었습니다. 28절에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어머니도 야곱에서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고 둘이 기발한 꾀를 생각해 낸 것입니다.
에서가 사냥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추어서 음식을 만들고 그 음식 냄새를 풍길 작정을 한 것입니다.
오늘은 에서는 마음먹은 대로 사냥을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29, 30절을 보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왔는데 많이 피곤해 보입니다. 32절에는 죽을 만치 힘들어 보였습니다.
때가 왔습니다. 하루 종일 짐승을 쫓아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던 에서가 들에서 돌아왔습니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가득 메웠습니다. 야곱이 의도했던 대로 되었습니다.
에서가 집으로 오더니 어머니 리브가에서 죽 한 그릇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무슨 일입니까? 동생 야곱이 가로막으면서 자기가 만들었기 때문에 자기의 허락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장난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야곱에게 이것은 농담도 장난도 아닌 진심이었습니다. 야곱은 만든 이 그림은 장난이 아닌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이번 기회에 형의 장자권을 정말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형에게 정식으로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31절입니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라는 것입니다. 붉을 것을 줄테니 형의 장자권을 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집에서 상상외에 일이 생겼습니다. 형의 반응입니다. 32절에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장자권이 넘어 갔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엄청난 거래의 현장을 보고 있습니다.
동생이 형에게 붉은 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의 명분을 샀습니다. 역사적인 일입니다. 형인 에서가 동생이 되고 동생인 야곱에 형이되는 순간입니다. 집안에 서열을 바퀴는 순간입니다.
물론 이 일에 어떤 문서나 공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처럼 인감, 호적등초본이 있는 시대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증인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의 부모들이 들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부모들은 애들 장난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 뻔합니다. 야곱이 장자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물건을 사고 판 것처럼 영수증이나 거래 증명서도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제부터 이 집에 장자입니다.
형이나 부모는 장난이라고 할 수 있지만, 야곱은 이 일에 진지했고, 그것에 인생을 걸고 목숨까지 걸었습니다.
야곱은 왜 이처럼 장자의 명문에 집착하는 것일까요?
장자의 명분 없으면 못사는 것입니까? 물론 우리는 그 이유를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자의 명문이 에서에게서 야곱에게로 넘어가는 순간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의 형에게 보게 될 것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동생에게 넘긴 형 에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34절입니다.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이 여김이었더라”라고 했습니다.
에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냥 배고파서 장난으로 해 본 말인지 모르겠으나, 에서에 인생에 엄청난 변화가 생겼습니다. 장자의 명분이 우수워졌습니다. 그래서 책임감도 없어졌습니다. 무기력해졌습니다. 소망도 없습니다. 기쁨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일이 장자권을 동생에서 넘기고 난 후부터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요?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장자권을 너가지라고 하기 했지만, 외형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그러는 것입니까?
바로 이 부분이 우리들의 간과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에서가 어떻게 이렇게 무기력해져 가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29~30절을 보면 그는 심히 피곤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성공을 위해서, 육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32절에 “내가 죽게 되었는데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고”고했습니다.
여기서부터 에서의 인생에 문제가 생기게 시작한 것입니다. 원래 그의 신분은 장자의 신분이었지만, 그것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고 먹고 마시고 사는데 그 장자의 명문이 무엇이 필요하냐는 생각은 자신을 장자로 세우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비신앙적인 행입니다. 하나님의 섬리를 인전하는 않는 행위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시지 않음으로 그는 직분은 가볍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장자의 명문을 소유한 야곱의 마음은 어떠한가?
야곱은 형으로서 형이가지는 권한들을 생각하며 행복 해 했습니다. 그것은 에서가 자기에게 형 대접을 안해주고 형이라고 불러주지 않아도 상관 없습니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이거 참 웃긴 일입니다. 야곱 혼자만 자기가 형이라는 것입니다. 형이 한 번도 야곱에게 형이라고 한 것도 없습니다. 아버지도 야곱을 맏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27장 1절입니다. (창 27:1, 개정)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혼자만 형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동생으로 태어나서 형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야곱, 이 사람 왜 그러는 것입니까?
보통 사람들 같으면 둘째로 테어나는 것은 하늘의 뜻으로 믿고 그렇게 순종하고 사는 것이 일반인데 야곱은 생각이 다릅니다. 장자로 태어난 것은 자기의 의도와는 관계없다는 것입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요? 어려서는 몰라서 그렇다 쳐도 지금을 왜 이러는 것입니까? 이것 때문입니다.
1) 장자가 누리는 특권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그러고 보면 야곱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장자의 특권이 무엇인지 알았던 것입니까? 당연히 세상에 나와서 살면서는 장자가 가지는 특권은 하늘이 내린 특권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장자가 되려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장자의 특권이 무엇이길래 야곱은 그 특권을 가지려고 하는 것입니까?
우선 고대 사회에서 장자란! 족장으로서, 아버지의 뒤를 잊게 되고,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게 되고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게 되고, 또한 자손에게 축복해 줄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이것은 장자로서 대단한 영예이며, 권한이기도 합니다. 신약 신대에서 장자가 가지는 권한은 예수님을 장자로 표현할 만큼 귀한 것이었습니다.
장자의 명분은 특원의 명분입니다. 오늘 성경이 이것을 중요하게 다루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달라지는 하나님의 자녀의 명분을 귀하여 여기라는 의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구주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녀는 특권입니다. (롬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2) 신분의 변화입니다.
오늘 야곱이 장자의 권한을 산 이야기는 단순히 야곱이 형이 되어서 형을 이기고 형 대접을 받고 형이 누리는 권한과 명예를 누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원래의 신분은 축복의 신분이 아니었지만, 그의 신분이 축복의 신분으로 바귀였다는 이야기가 핵심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신분에 맞게 그를 보호하시고 축복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야곱은 누구도 자기를 장자로 인정해 주지 않았지만, 형으로부터 장자권을 받았던 이후로 누구도 알 수 없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장자로서 자부심이 생겼습니다.
장자로서 책임감도 생겼습니다. 장자로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 당장 변화되건 벌로 없습니다. 그러나 훗날 야곱은 믿음의 조상에 반열에 당당하게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믿음의 조상 족장을 말할 때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야곱이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머리가 좋고 싸움을 잘해도, 하나님의 섬리와 도움이 없이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야곱이 붉은 것을 지불하고 장자권을 산 이후로부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장자의 자존감이 생긴 것은 운명이 아니라 역사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섬리와 도움심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교훈을 나누고자 하는 것은 야곱은 신분의 전환을 위해 힘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다가 가는 신분에서 축복의 신분자로서, 축복도 받고 후손들에게 축복을 빌어주는 자로 살려고 애썼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런 삶을 살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족장하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아닙니까?
성도 여러분! 현재 우리의 신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래서 축복된 삶이 보장되어 있습니까? 후손들에게 믿음의 조상으로써 축복을 빌어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장자입니까?
우리 모두 우리의 신분을 살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세상의 아들로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 죄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신분 그대로 살다가 죽는다면 지옥엘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신분의 변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분전환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야곱처럼 무엇을 주고, 돈 주고 사자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행이 우리에게는 신분을 바꿀 수 있는 은혜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 아직까지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이 변하지 않은 분 계십니까? 예수를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야곱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를 영접하면 신분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이 세상살 때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축복받고 잘 살다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는 어떤 직분이 있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장남,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여러분에게 이 직분은 어떤 것입니까? 명예 영광 권세 축복, 아니면 부담, 챙피 그래서 숨기며 살고 있습니까? 에서처럼 가볍게 여기시는 일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직분은 크던 작던 하나님이 주신 직분입니다.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께 장자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께 장자의 직분을 주시 이유는 그를 세상에 보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직분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직분은 혼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직분은 대상이 있을 때 직분입니다. 예수님의 장자의 직분 대상은 세상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우리를 대신 죽게 한 후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에도 대상이 있습니다. 우리 직분의 대상은 좁게는 강북구입니다. 넓게는 온 세상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게 주어진 직분을 귀하여 여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귀하게 생각하고 여러분이 그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권세적으로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