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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오전

위기의 순간에 | 마가복음 4장 35~4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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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25-03-23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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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순간에
막 4:35-41
2025.03.02. 깅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지난 3년여 전 세계를 휘몰아쳤던 코로나 광풍은 인류역사상 가장 크고 심각한 피해를 남겼습니다. 집계된 감염자는 7억 명, 사망자는 7백만 명에 이릅니다. 단일 바이러스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고 죽은 예는 없습니다.
코로나는 현대문명 자체를 멈춰 세웠습니다. 경제적인 피해는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기업들이 파산했고, 실업률이 급증했고, 경제성장률은 일제히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갖가지 문제가 생겨났고, 개인적으로는 스트레스와 불안, 우울증 등 정신 건강에도 큰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예배를 멈추게 했습니다.
최첨단 현대의학이 두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초기대처를 알지 못해 허둥댔고, 적절한 치료법이 없어 사망자가 급증했습니다. 백신을 개발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전 세계로 확산하는 것을 막지 못했습니다. 재앙입니다.
그렇게 자랑하고 큰소리치던 최첨단 현대과학과 현대의학이 작은 바이러스 하나의 등장에 이렇게 허둥댈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동안 우리 인간이 대단한 존재인 줄 살아왔는데 착각이었습니다. 이번 이 코로나사태로 우리 인간이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최 첨단시대에 사는 오늘의 인생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재앙을 만났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살아남을 자들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깨달았고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한 날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수 한복판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그때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37절입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제자들이 배로 예수님을 모시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는 중에 갑자기 큰 광풍을 만난 것입니다. 과정에서 물결이 배를 덮쳐서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됐고, 배가 침몰할 수 있는 상황이 됐었습니다.

성경에 ‘광풍’이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광풍이란! ‘미친 바람’이란 뜻입니다. 갑작스럽게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게 부는 바람을 말하고, 너무 강력해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거나 통제할 수 없는 바람을 말합니다. 마치 코로나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발생 돼었던 것처럼, 그렇게 바람이 불었다는 것입니다.
물결이 심하게 쳐서 배에 부딧쳐 물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배가 가라앉기 직전이라는 말입니다. 배조차도 자기들의 안전을 지켜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위기는 왜 오는 것일까요?
제자들은 왜 이런 위기를 겪는 것일까요? 오늘은 주님께서 그 배에 함께 계시는데 저들에게 왜 위기가 오는 것일까요?
그래서 본문을 묵상하다가 아주 특별한 구절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38절입니다. (막 4:38, 개정)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라는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제자들이 탄 배가 광풍(미친바람)을 맞이하여 배에 물이 들어오고 배가 뒤집어지기 직전인데, 예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배에서 고물을 베시고 주무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구절이 좀 의심스럽고 이해가 잘 안되는 것은 광풍이 불어 물이 배에 들어오고 배가 심하게 흔들렸을 것이고, 제자들은 이를 어찌해 보려고 하면서 큰소리를 쳤을 것 같은데, 주님께 잠을 주무시고 계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제자들이 깨우지 않으면 모르실 정도로 깊은 잠을 드셨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상식은 아닙니다.
주님께 그 상황에서 깊은 잠에 드셨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자는 척하셨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서 이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구절을 하나 더 찾아보았더니 다음 구절입니다. 35절입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자고 먼저 말씀하셨고, 그래서 제자들이 배를 저어 갔는데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면 오늘 생긴 환란은 제자들의 실수나 잘못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순종해서 생긴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의 환란은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만드신 위기 상황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을 잘못 해석하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의도적으로 위기로 몰아넣으신 것처럼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다음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약 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제자들이 처한 상황은 무엇일까요?그것이 바로 자연이고 세상입니다. 참고로 세상은 죄악의 결과가 있는 곳입니다. 가시와 엉겅퀴가 무성하고 사망과 질병이 있는 곳입니다. 세상은 천국이 아닙니다. 죄악의 바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영원히 살 곳이아닙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이런 세상에서 우리를 건져서 천국의 삶을 살게 하시고, 훗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이 자녀가 되었다고 해도 세상은 세상일 뿐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어도 세상은 세상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도 사탄의 시험에 대상이 되고 광풍을 만나게 되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제자들이 처한 상황은 세상에 있는 일들중 하나에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는 오늘 갈릴리 호수에 아주 큰 광풍이 불 것을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의도가 있을 거라는 것이지요.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매우 놀라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제자들이 평생을 살아온 놀이터와 같은 곳이고 삶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어려서부터 이곳에서 놀이하며 자랐습니다. 어른이 돼서는 어부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 호수에 대해 잘 알고, 이 호수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지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들이 겪고 있는 이 위기는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처음 겪는 일입니다. 자기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은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두렵고 놀랐으면 죽게 됐다고 소리를 질렀겠습니까?

그럴 때, 제자들은 무엇인가를 깨닫게 됐을 것입니다. 그렇게 익숙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잘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갈릴리 호수에서 자기들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난 것입니다. 그 위기 앞에서 저들은 인생이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인간은 연약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한때 천하는 호령했던 자도 말로 날아가는 새를 떨어트린다는 자도 늙고 병들면 아무것도 아니요, 최첨단의 의술을 자랑하는 인생도 바이러스 한 마리에 속소 무책으로 쓰러진다는 사실입니다.
관세라는 키를 잡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자들과, 첨단의 기술력을 가지고 세계를 긴장의 도가니로 몰아가는 사람들 역시 하나님 앞에 연약한 인생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전에 피라밋을 쌓았던 사람이나, 바벨탑을 쌓으려고 했던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앞에 별거 아닙니다.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시는 첫 번째 말씀입니다.
인생은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어떤 위도를 가지고 제자들을 호숫가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갈릴리 호수에 미친바람이 불 것을 아시면서도 당신도 거기서 여려움을 겪으실 가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그곳으로 인도하신 것은 그 위기의 상황에서 무엇인가를 알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저들을 호숫가 인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는 두 가지가 보였습니다. 하나는 39절입니다. (막 4:39, 개정)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담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께서 단지 말씀으로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셔서 제자들을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막 4:41, 개정)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제자들 지금 무슨 말 하는 것입니까? ‘그가 누구이기에’가 무슨 말입니까? 제자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 아닙니까? 우리는 제자들에 이런 말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가 누구신지도 모르고 따라고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제자들은 아직 예수가 누구신지 무엇 하시는 분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오늘 일이 있기 전 예수께서는 이미 나병환자를 고치셨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제자들이 다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다 본 제자들이 예수가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당신이 누구인지 제자들에게 알려주시고 저들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 오늘의 일을 만드셨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하시는 일을 좀 더 살펴보면 특별한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며”라는 말씀입니다.
사전을 보면 “꾸짖다”라는 말을 이렇게 풀이해 놓고 있습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에 대해 엄하게 나무라다.” 다시 말해서 꾸짖는다는 것은 권위를 가진 윗사람이 그 권위에 복종하는 아랫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엄하게 나무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럴 때 지금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셨다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바람을 꾸짖으실 만한 권위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바람은 예수님의 꾸짖음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 주님이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바람과 바다를 위에 계시는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렇습니다.예수께서는 자연에 관한 권한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서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셨던 분이십니다. 사람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창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창조자로 꾸짖으실 수 있는 권위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꾸짖으시는 장면이 몇 곳 나옵니다. 우선 막 8:33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꾸짖으셨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교사로서 권위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도 꾸짖을 수 있는 분입니다.

막 1:25를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그리고 막 9:25를 보면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귀신을 꾸짖으실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명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귀신도 그 명을 받들지 않으면 안 되는 권위를 가지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눅 4:39를 보면 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예수님께서 열병을 꾸짖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바람을 꾸짖으셨다고 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열병을 꾸짖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바람을 꾸짖으실 수 있으셨을까요? 이것들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열병은 질병 현상이고, 그리고 바람은 자연현상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꾸짖으실 수 있으며 또 이런 것들은 또 어떻게 그 명에 순종할 수 있을까요?
이 모습을 본 제자들이 41절에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단지 위대한 스승 정도의 분이 아닙니다.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절대 권위를 가지신 분이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은 이렇게 놀라운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 어떤 사람도, 그 어떤 영적 존재도, 그 어떤 피조물도 그 권위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분의 꾸짖음을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특별한 권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 권위를 가진 주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하여졌습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은 주님이 말씀하시면 바람도 바다도 잔잔해질 뿐만 아니라 마귀도, 질병도, 환란도, 악함도, 혼란도, 흙암도 다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인생의 바람과 풍랑을 꾸짖어 주시고 고요하라 명하시면 악함도 혼란도 어두움도 물러가게 될 줄 믿습니다.
더 나가 우리 가정, 우리 일터, 우리나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풍랑을 꾸짖어 주시고 고요하라 명하시면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또 하나는 믿음입니다.본문 40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라고 하셨는데 이번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느냐”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주님이 보실 때 제자들은 어떤 면에서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까? 제자들이 어떻게 했기에 예수님께 믿음이 없다고 책망을 받았던 것일까요?
38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입니다. 즉,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시는 예수님께 자기들을 구원해 달라고 청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칭찬받을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들의 힘으로는 지금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위기에서 건져주실 수 있다고 믿었기에 주님께 청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주님께 도움을 청했다는 것은 위기를 만났을 때 주님께 기도한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도대체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보시고 믿음이 없다고 책망하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시고 단번에 믿음이 없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뭘 보고 믿음이 없다고 하셨는지 본문에 힌트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무서워한 것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주님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광풍이 불었고, 물결이 밀려들어 배가 침몰할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이때 광풍을 보고, 배에 가득 찬 물을 보고 두려워한 것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저들에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광풍이 불어 배가 잘 잘못되면 배에서 주무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먼저 잘 못 될턴에 배가 잘 못 되는 일이 있겠느냐는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이거 놀라운 믿음입니다. 오늘 성경이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은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이 믿음을 섬눌로 주시려는 것입니다. 이 믿음 선물로 받아 가시기바랍니다.
이 믿음에는 이런 전제가 있습니다.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 영광을 받으면 주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고 제자들이 고난을 받으면 주님이 고난을 받으시는 것이 전에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이런 전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들에게는 성령하나님이 임재해 계십니다. (약 4: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 (엡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뿐만아니라 교회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입니다. 가정에 하나님을 모셨다면 가정도 성전입니다. 자동차에 하나님을 모셨다면 자동차도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영광을 받으면 하나님이 영광이 되고 교회가 영광을 받으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반대로 내가 고난받고 잘못된면 하나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잘못된다는 것입니다,
용요한 것은 내가 우리가 하나님의 전이기 때문에 잘 못 될 수 없다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심지어 죽음의 순간이 다가와도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주님께 맡기고 담대하게 그 위기와 맞섭니다. 그리고 결국 승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더욱 믿음을 굳건히 하십시오. 세상 그 모든 것을 꾸짖으실 수 있는 주님을 믿으십시오. 바람과 바다를 잔잔케 하실 수 있는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담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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