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농부의 착각
마태복음 21:33-41
2024.07.07. 맥추감사주일
오늘 우리 교회는 맥추 감사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절기의 핵심은 감사입니다. 성경은 성도에게 감사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성도에게 감사를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동안 교회는 그 이유를 감사에는 능력과 축복이 있다는 것으로 설교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감사를 요구하시는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꽤 괜찮은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질 좋은 포도나무를 심고, 짐승이나 도적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쳤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망대를 세웠습니다. 포도가 열매를 내면 바로 다서 가공할 수 있는 시설도 만들었습니다. 포도가 달리기만 하면 바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완벽한 시설을 만든 것이지요?
그런데 이상하지요! 주인은 이렇게 포도원을 만들어 어떤 농부에게 세를 주고 외국으로 이사를 간 것입니다.그리고 몇 년간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포도즙을 자는 공장도 가동이 되어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농부에게 주인이 잊혀지나 싶었는데, 어느 날 농장에 어떤 두 사람이 나타나서 명함을 주는데 주인이 보낸 사람들 이었습니다. 이야기가 잘 되나 싶었는데, 농부가 화를 내면서 두 사람을 밀치고 그러는 사이에 다른 농부들이 몰려 나오고 농부들이 주인이 보낸 종들을 돌로 치고 때리는 폭행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급기야는 한 명은 죽고 한 명은 돌에 맞아 중한 상태입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농부들은 왜 이러는 것입니까? 무엇이 잘 못 되었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주인의 대응입니다. 당신이 보낸 종이 죽고 한 명은 중퇴에 빠졌는데, 다른 종들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참 이상하지요? 주인은 농부를 어떻게 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최소한 경고라도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협박이나 경고도 없이 또 다른 종들을 보냈다는 것 아닙니다. 이번에도 가서 세만 받아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한 다시 가는 종들도 먼저 갔던 종들의 사망 사고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보다는 세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로 작정하고 농장에 갔습니다.
새롭게 주목할 것은 이번에 전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에 대한 주인의 기대일 것입니다.
그런데 또 다시 우리는 놀랍게 하는 것은 이번에도 종들은 세를 못 받았습니다.
앞으로 이 일은 어떻게 될까요?비로서 주인은 법적 조치를 취할까요? 아니면 주인이 직접 와서 받아 갈까요? 온 김에 농부들을 혼내주지 않을까요? 최소 경고는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주인은 그의 사랑하는 외 아들을 보내기로 작정했습니다. 주인의 생각에는 그들이 아들은 존대 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같은 곳에 종들을 몇 번 보냈고 그 과정에서 종들이 돌아 맞아 죽었고 농락 당했고, 그랬는데도 세를 못 받았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낸다는 것입니까? 주인은 아직도 농부를 모르는 것일까요? 아니면 알면서 보냈다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요?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주인에게는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인 생각입니다. “아들을 보내면 저들이 내 아들은 존대 할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사람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자 작정을 하고 노골적으로 죽이자고 합의하고 아들을 죽였습니다. 그래서 아들을 죽이고 아들은 포도원 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이는 주님이 들려주신 비유인데, 왜 이런 비유를 들려주시는 것일까요?
주인 생각에 아들을 보내면 저들이 존대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건 틀리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주인은 저들이 아들을 죽을 것을 미쳐 모른 것입니까?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주인의 행동이었습니다. 세를 받으려고 종들을 죽게 하고 아들을 죽게 하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어떤 대응도 하지 않은 모습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주인에게 세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종들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을 잃어 가면서 받으려고 하는 것이고, 그리고 농부는 당연히 내야 하는 세를 안 내려는 것이고 주인의 보낸 종들을 죽이고 아들까지 죽이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주인이 받으려는 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세는 은혜를 입은 자들은 당연히 내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세”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최근에 많이 언급되는 “인류세”를 조금 이야기 하겠습니다.
人類世 / Anthropocene 인류세 또는 인신세(人新世)란 오늘날 인류 문명의 발전으로 인한 지구 환경의 극적인 변화를 강조하고자 제안된 지질시대의 구분이다.
이 용어는 1980년대에 미국의 생태학자 유진 F. 스토머가 처음 사용했으며, 네덜란드의 대기학자 파울 크뤼천이 대중화시켰습니다
인류세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기후 변화=인간 활동으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후 변화. 생물 다양성의 상실=대량절멸로 인한 생물 다양성의 감소, 인공 물질의 확대=플라스틱, 콘크리트, 화석 연료의 연소 등, 방사선과 대기 중의 이산화 탄소 증가=핵실험과 산업 활동으로 인한 변화 그래서 요즘 인류세가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세에 대한 주님의 생각은 누가복음 20장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서기관들이 주님을 책 잡으려고 질문을 했습니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그러자 주님께서 저들에게 데나리온 하나를 보여주라고 하시면 질문 했습니다. 거기에 누구의 형상과 글이 있느냐 사람들이 가이사라고 하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25절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셨습니다.
세를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 나라의 국민이 세를 바치는 것은 의무입니다. 따라서 오늘 농부는 당연히 세를 내야 했습니다.
안 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적으로 성도가 하나님의 나라에 세금을 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 나라에 내는 세금을 십일조 감사 헌신 선교, 절기 헌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교회가 세를 이야기하면 왠지 교회가 세속적이고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오늘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세가 단순히 의무적으로 한 국민이 나라에 내는 세금 같은 것이냐는 것입니다.
본문을 잘 분석해 보면, 말씀 중에 세는 단순히 의무적으로 내야 하는 헌금 헌신의 의미만 있지 않았습니다.
40절을 주목해 보시겠습니다. (마 21:40, 개정)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다음은 43절을 주목하겠습니다. (마 21:43, 개정)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몇 개의 단어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는 주인이 올 때이고, 그때 세를 안 낸 농부는 포도원을 빼앗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성경에서 포도원은 천국을 의미하게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직역하면 이와 같은 사람들(세를 안 내는)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시 성경을 묵상해 보았더니 다음 구절이 보였습니다. (마 21:41, 개정)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열매를 바칠 만한 농부”에게 세를 준다는 구절입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았더니 세는 돈이 아니라 열매에 해당되었고 천국에 들어가는 무엇과 같았습니다. 무엇은 믿음이 아닐까요? 농부에게 주인을 믿는 믿음 말입니다. 주인이 자신을 정말 신뢰하고 사랑하기에 그 어머머마한 시설을 위임했다는 믿는 믿음 말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우리에게 말씀하려는 핵심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더니 열매였습니다. 우리의 주인되신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세, 즉 열매를 요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시고 계십니다.
(출 23:14) “너는 매년 삼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출 23:17)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 (출 34:23) “너희 모든 남자는 매년 세번씩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보일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열매를 요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순히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해서 일까요? 왜 절기를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들처럼 단순히 생일잔치상을 받고 기쁨을 얻으려는 것입니까? 종들이 죽고 아들이 죽는데 단순히 월급받고, 세를 받는 그런 기쁨을 누리려는 것입니까?
왜 세 받는 일에 그렇게 몰두 하시는 것입니까? 다시 43절을 주목하겠습니다. (마 21:43, 개정)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세는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세를 통해서 농부들에게 더 큰 나라는 주시려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면 간단합니다.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절기를 지키라고 하시는 이유는 열매가 천국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내년에도 절기를 요구하실 것입니다. 이유는 열매를 보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하나님의 나라와 관계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오늘도 이 절기를 통해서 천국의 열매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 하시기 바랍니다. 작년에 이어 계속해서 믿음의 열매를 낼 수 있는지 점검하시고 어떤 어려움과 시렴이 와도 주님께 감사의 감사의 열매를 보여 드릴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의 문제는 종들을 죽이고 주인의 아들을 죽인 농부입니다.
농부 왜 그랬을까요? 주인은 이런 농부를 모르고 그에게 농장을 맡겼을 까요?
제 생각에 아마도 처음에 농부는 안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도 그에게 농장을 받겼을 것입니다. 어디서 문제가 생겼을까요?
34절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마 21:34, 개정)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열매를 거둘 때’에 주목합니다.
포도나무는 심고 삼고 3년을 기다려야 열매를 낸다고 합니다. 여기서 거둘 때란! 세를 주고 3년이 지난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은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주인이 그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을 때 농부는 착각에 빠진 것입니다.
이런 것이죠! 3년 이라는 시간에 지나면서 아무런 것도 내지 않고 편하게 살다 보니까 모든 것이 공짜같고 주인의 것도 내 것 같고, 3년동안 아무런 연락도 없으니, 주인이 그냥 준 것 같고 그러는 동안 그들은 주변 땅(농장 주면)에다 자기가 심고 싶은 것을 심었겠지요. 그럴 때 누구 하나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으니 점점 내가 주인 같은 생각 든단 말입니다.
그러던 중에 자기들이 업서브로 심을 농작물에서 소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착각은 더 심해 지기 시각했습니다. 주인의 땅에서 난 수확보다 자기들이 머리써서 일군 데서 더 큰 수확이 난다는 생각이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성경을 살펴보았더니 이런 구절도 있었습니다.(마 21:38, 개정)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아들을 죽였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농부들의 생각엔 아들만 없애면 그 많은 재산이 자신들에게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농부는 처음부터 이렇게 악했던 것입니까? 그것도 모르고 주인은 그와 계약을 했던 것입니까? 무엇이 어디서 잘 못 되었습니까?
왜 농부들은 이런 생각을 다 했습니까? 이것은 악한 생각이고 죄를 짓는 생각이 아닙니까? 이것이 바로 착각입니다.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농부들이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엇인가 저들에게 이런 생각을 하도록 하는 것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 소설이 아니라 실제 가능성이 있는 문서에서 밀려온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소작과 관련된 다음과 조항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3년간 소작농에게 소작료를 받아가지 않으면 소작농이 그 땅의 주인이 될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초기 당시 유대인들은 많은 신앙의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땅 주인들은 땅을 두고 유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당시는 전쟁이나 질병과 같은 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주가 죽는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3년이나 지났는데도 주인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이 없고, 소작료를 받으러 오지도 않는다면 농부는 주인이 죽은 것으로 간주해서 그 땅을 차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오늘 본문 상황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상당한 기간이 지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농부들은 그동안 소작료를 내지 않았고 얼마만 더 시간을 끌면 법 규정에 따라 그 포도원을 자기들이 가질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착각이었습니다.
보통 과수원은 열매를 수확하려면 적어도 3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이때 소작농들은 포도나무 주변에 농사를 지어 먹고 살기 위해서 이것저것을 더 심게 되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큰 결실을 준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착각이 아니겠습니까?
여기서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소작농들 생각엔 주인이 심어놓은 나무보다 자기들이 심은 나무에서 더 큰 수익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들은 포도원에 남다른 애착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마치 그 포도원인 자기의 것처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마음에 변명의 이론도 생겼습니다. ‘주인이 심어준 포도나무에선 수입이 별로 없고, 자신들이 심은 나무가 자기에게 더 많은 열매를 주었다.’는 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농부들은 주인에게 세를 주는 것이 아깝다. 억울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다른 농부들과 공유하면서 세를 안 내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도대체 뭘까요? 여러분은 이것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자기들이 힘쓰고 애쓰고 노력해서 포도원을 만들었고, 그래서 포도원이 자기의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이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래서 소작료를 받으러 온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주인의 아들까지 죽인거 아니겠습니까? 이들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들 왜 그런 것입니까?농부들의 지금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 농부들은 지금 자신들이 열심히 해서 살만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심어주고 빌려준 땅으로는 결코 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오해이고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자기들이 땅을 삿고 자기들이 땅을 일궈서 농사를 짓고 공장을 지어서 돈을 벌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지금 내게 있는 것 하나님이 주심 것임을 인정하십니까? 혹 이라도 내가 열심히 땀 흘려서 이루었고 모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우리의 몸과 가정과 교회 나라 모두가 하나님께 받은 선물임을 인정하십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시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적용
이 말씀에서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 말씀이 비유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농부들은 유대교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세를 주었다는 것은 주인과 농부 사이에 소출 계약을 맺었다는 것인데,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유대인들 사이에 언약이 체결되어있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언약은 무슨 언약일까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님을 통해 이 땅에 구원을 주신다는 언약입니다. 마지막 종들을 누구일까요? 선지자들입니다. 아들은 누구일까요? 예수님이십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종들과 아들이 세를 받으러 왔다가 죽기까지 했는데 여기서 세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주의 종들을 보내서 끊임없이 세를 요구하시는데, 그 세가 도대체 무얼까요? 많은 분들이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조건 헌금 봉사 충성 헌신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과연 그럴까요?
오늘 본문에 세가 무엇인지 나와 있습니까? 있습니다.
34절입니다. (마 21:34, 개정)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라고 했습니다. (마 21:43, 개정)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주님이 이 비유를 우리들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종이 죽기까지 아들이 죽기까지 받으시려는 세는 언약을 지키라는 것인데 오늘 성경은 그 세를 열매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계절적으로 열매를 맺는 계절입니다. 주님은 이 계절 우리들에게도 세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세는 구원의 열매입니다.
성도 여러분!세에 대한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세는 십일조가 아닙니다. 절기 헌금이 아닙니다.
세는 열매입니다. 열매는 천국과 관련이 있습니다. 절기는 열매를 얻는 계절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의 열매가 천국가기에 넉넉한 계절이 되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