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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할례를 받으라. | 신명기 10장 12~16절

작성자
gfgc
작성일
2024-03-02 10:46
조회
288
할례를 받으라

신명기 10장 12~16절

2024.02.28.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한석봉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행상으로 끼니를 이어가면서 아들 글씨 공부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했습니다. 끼니를 거르더라도 종이와 먹은 모자라지 않게 사다 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석봉은 자기에게만 밥상을 차려주고 허기진 배를 숭늉으로 때우는 어머니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종이를 아껴야 한다는 생각으로 땅바닥과 모랫바닥에 글씨 연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종이가 남아있는 것을 본 어머니는 석봉에게 공부를 게을리했다고 야단을 쳤습니다. 할 수 없이 한석봉이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이렇게 이야기했답니다.

“네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네 어미에 대한 참다운 효도는 네가 하루빨리 명필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효도란! 부모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정성껏 모신다고 다 효도는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자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따를 때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대로 내 나름대로 열심을 낸다고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자녀인 이스라엘에 이런 질책을 했습니다.
12절“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원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다섯 가지였습니다.

본문 12-13에서 다섯 가지를 직접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라.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모든 도를 행하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길로만 걸으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라. 언약 관계 안에서 주어지는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만 섬기라. 온전한 마음으로 전인격적으로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본문에 특별한 문제나 사건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들에게 이런 요구를 하시는 것입니까? 왜 그러시는 것입니까? 부모의 잔소리 아니십니까?

관심이 있으니까? 사랑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로서는 이런 하나님의 요구를 들어드릴 수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제사를 지내고 또한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마음은 아니셨던 것 같습니다.

총신대학교에 가면 정문에 이런 교훈이 적혀있습니다.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사가 되라, 목회자가 돼라.’라고 말입니다.
총신대학은 성직자를 길러내는 대학입니다. 이럴 때 학교는 학생들에게 성직자 이전에 신자가 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원하시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이 저들에게 바라시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14절 이하의 말씀입니다.
(신 10:14-15, 개정) “14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 15 여호와께서 오직 네 조상들을 기뻐하시고 그들을 사랑하사 그들의 후손인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일까요? 한마디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인이신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특별히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 자체가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 사람을 새롭게 하라는 말입니다. 기본에 충실해지라는 말입니다. 위에서 말한 다섯 가지는 기본입니다.

그렇습니다. 몸이 깨끗하고 용모가 단정하다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겉 사람이 사람답다고 다 사람이 아닙니다. 속 사람이 사람다워야 사람인 것입니다.

겉모습만 교인이라고 다 교인이 아닙니다. 그 속사람이 교인다운 모습을 갖춰야 교인입니다. 그 속사람이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그리스도인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다운 행동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왜 이런 요구를 하시는 것입니까?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복을 주고 싶으셔서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너무도 거짓이 만연해 있고 죄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사시는 것이 너무도 민망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원하시는 백성다운 백성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16절입니다. (신 10:16, 개정)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행하고 하나는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마음에 할례를 받으라는 말씀입니다.

할례가 무엇입니다.

할례란! 창세기 17장에 처음 나오는 단어입니다. (창 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아브라함의 나이 99세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선물로 주시기 전에 먼저 할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요? 14절에 말씀처럼 약속의 표시입니다. ‘나와 너희와 너희의 후손이 지켜야 할 야속의 표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만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데, 이유는 그가 약속을 배반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14절)

그렇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과 약속의 표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할례로 약속을 맺으신 이래로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에게 모두 할례를 행하게 하셨습니다.

약속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시작으로 먼저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여야 합니다.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약속 위반입니다.

그러한 의미로 오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적용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약속을 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편에서 한 것도 있겠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했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약속을 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복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잘 지키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갑자기 어떤 약속인지 잘 생각나지 않습니까?

그래서 찾아보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요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인데 그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약속을 할례로 하자고 하셨습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할례는 남자들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일입니다. 정확하게는 남자들의 성기의 끝에 표피를 잘라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흔적보다도 포피 일부를 잘라낸다는데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남자들의 성기 끝의 표피를 자르라고 하셨을까요?
이것은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중요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육체적인 관계로 비롯된 모든 약속과 보장을 끊으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어떤 가문에 태어나면 혈통적으로 그 가문의 사람으로서 그 가문의 상속과 보호를 받게 됩니다. 아울러 그 가문의 사람으로 가문을 위해 살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그것은 인간이 끊고 거절하기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의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 죄의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는아브라함으로 이미 본 적이 있습니다.
인간의 방법, 육체적인 관계로 그는 여종 하갈을 통해서 아이를 낳으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가정에 얼마나 큰 불화가 있었습니까? 이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저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할례란!
인간의 이런 것을 끊고 이제 하나님과의 약속 안에 살게 되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하나님의 유업을 받들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으면서 살겠다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겠다는 약속을 말합니다.

그래서 의문은 이스라엘이 언제부터 할례를 받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할례가 아브라함 때부터 시작되어 이스라엘에 생명과 같이 지키며 받아왔고 모세가 애굽에 들어가기 전에 그의 아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하나님의 사자가 모세를 죽이려고까지 했던 사실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데 도대체 이스라엘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래서 오늘 성경을 잘 살펴보았더니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16절입니다. (신 10:16, 개정)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라고 말입니다.

즉, 지금 이스라엘에 문제가 되는 것은 할례를 안 받아서가 아니라, 할례를 받았지만, 할례를 안 받은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문제는 저들이 할례를 받아서 몸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흔적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할례 이전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요구는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부터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할례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렘 4: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라고 했습니다.

마음의 할례란! 마음의 가죽을 베는 것이라는 말합니다.

본문을 보면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라고 말씀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말르템 에트 오를라트 레바브켐”이라고 했습니다. “오를라트 레바브켐”이라는 말은 마음의 표피입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라는 말은 직역하면 “마음의 표피를 잘라내라”는 뜻입니다.

마음의 표피를 잘라내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마음으로 의지하고 기대던 것들을 잘라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를 의지하던 마음을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자식을 의지하던 마음을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들을 의지하던 마음을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학연, 지연, 기술 능력을 의지했던 것을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다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며 그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게 된 사람들 그들이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금실이 좋은 노부부가 계셨습니다.
80이 넘어 해로하면서 행복하게 사셨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1달이 못 돼서 할아버지가 자살하셨습니다. 자살 이유는 할멈 없이는 못 산다는 것입니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아내를 위해 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매정한 말일지 몰라도 아내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아닙니까? 자식을 사랑하기에 자식을 위해 죽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식 없이도 살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할례를 받으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것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음이 뜨거운 믿음의 사람들을 한결같은 고백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부족한 것이 없고 더 이상 구할 것이 없는 날이 오면, 그런 신앙고백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든 것이 다 있어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어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16절을 보면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미 목이 곧은 것에 대해서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신 9:6을 보면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고 평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이 곧게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목이 곧다”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목이 곧다는 말은 소들이 멍에를 메기 위해 목을 숙여야 하는데 멍에를 메지 않겠다고 버티는 모습을 비유로 한 말입니다.

아이들을 키워보신 분들은 겪어보신 일입니다만 아이들이 만 2살 시기쯤 되면 특유의 고집이 나옵니다. 원하는 것 사 주지 않으면 장소 상황 불문하고 울며 떼를 씁니다. 만지지 말라고 그렇게 말해도 꼭 손을 대서 망가뜨립니다. 다른 아이들과 놀면서 제 것이라고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립니다. 대개 엄마들은 이쯤 되면 참다 참다 주먹이 나갑니다. 어떤 엄마들은 너무 속상하고 어떻게 할 줄 몰라 옆에서 같이 울기도 합니다.

심리학자 에릭슨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2살쯤 되면 세상을 보는 나름대로 눈이 생긴다’라고 설명합니다. 이때 철저하게 세상의 중심이 자기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자기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자기 것이어야 합니다. 남의 말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집을 부립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의 사람을 목이 곧은 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는 데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빠져 삽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느 9:25-6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희가 견고한 성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모든 것이 풍족하고 부족함이 없을 때 더욱 목이 곧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장 하나님이 필요 없을 때 목이 곧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대상은 하나님이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어떻게 마음의 할례를 받으며 무엇으로 목을 곧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신 10:13, 개정)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했습니다.

이는 오늘날로 말하면 여호와의 명령 규례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적용~

이제 오늘 말씀을 이 세대에 적용할 때입니다.
이 시대에 할례는 무엇입니까? 또 마음의 할례는 무엇입니까?

전에 할례의 의미가 육신의 표피를 자르는 것이었고 마음의 할례가 오로지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었다면, 영과 진리의 세대인 이 시대에 할례를 말한다면 같은 의미 아니겠습니까?

흔히 이 시대는 세례를 할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면 세상 줄을 끊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고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때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는 교회에 등록하고 때가 되면 받게 되겠지만, 마음의 할례는 어떻게 받느냐는 것입니다.

마음의 세례는 교회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요 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거듭나는 것은 죽은 영이 다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길을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물은 말씀, 전에 율법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마음의 할례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때부터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들에게 또 할례를 받으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저들이 언제부터 불순종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할례를 받았지만, 속사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저들에게 정확하게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 받기가 이스라엘에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은 원하지만 안되는 것입니다. 몰라서 못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 시대에 한 게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성령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완성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의 결단만 남았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기를 원하시면 말씀에 순종하시고 성령님을 의지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예배 중이라도 기도 중이라고 심지어 길을 걸어가다가도 거듭나는 역사라 있게 됩니다.

우리 교회가 모두 마음의 할례를 받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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