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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성령의 검을 가지라

작성자
gfgc
작성일
2016-03-05 11:37
조회
990
성령의 검을 가지라

사무엘상 17장 45~47절, 엡 6:10~18

2016.01.27. 꽃동산성령체험캠프 서대산 겨울
2016.01.31.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예배

작년에 시작한 40일 특별 새벽기도회가 이제 5일 남았습니다.
이번 40일 기도회 주제는 “성령의 검을 가지라.”입니다. 제목에서도 보이지만, 이번새벽기도회의 성격은 위로나, 축복이나, 은혜 이런 것보다는 매우 도전적이고 전투적인 용어가 많이 등장하는 성령의 검, 기도의 보초, 회개, 기도회 입니다.
이처럼 무겁고 전투적인 주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에게 닦아올 어두운 날들 때문입니다.

사방에서 들려오는 악하고, 잔인하고, 비관적이고, 비 소망적인 소식들은 우리 마음에 있는 믿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믿음은 알게 모르게 세상으로부터 위협과 협박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큰 성도라 할지라도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도 목회자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무엇인지 표현은 하지 않지만,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이때 교회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설교를 해야 할까요?
성도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해야 할까요? 이것은 오늘을 사는 목회자들의 고민입니다.
그래서 이번 새벽기도회를 그렇게 준비했고, 그래서 1월은 거의 전투적인 설교를 했습니다. 목회자는 오늘도 이 시대를 영적인 전쟁상태로 보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늘 말씀드렸지만, 영적인 전쟁의 내면에는 늘 사단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 그렇게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이 세상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악에는 항상 사단이 개입돼 있습니다. 이 사단이 사람에게 들어가서 그 사람을 통해 세상에 악을 저지르고 아프게 하고 행복을 빼서 가는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의 몸에나 짐승의 몸에 출입이 가능한 존재입니다. 사탄이 사람에 몸에 출입이 가능한 것은 사단은 영적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육신의 눈을 가지고 사탄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은 사단이 들어간 사람들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사단은 악합니다. 간교합니다.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사단은 사람을 이용합니다. 싸움을 하게하고 전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일어난 모든 악한 일, 전쟁은 다 사단과 관계가 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크고 작은 악한 일들은 모두 영적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영적 전쟁이라는 말 자체를 모릅니다. 영적 전쟁은 우리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왜 그것이 영적전쟁인가요?
그것은 싸움은 사람이 하지만, 전쟁을 일으키게 한 것은 사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매일 전쟁이 있습니다. 그 전쟁은 꼭 피를 흘리는 전쟁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있는 행복이라든지 믿음, 신앙을 빼앗아 가려는 것은 영적인 전쟁입니다. 그러면 이런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에 그런 상황에 잘 나타나 있고 승리하는 방법도 잘 나와 습니다.
엘라 골짜기에 전쟁
행복하기만 하던 이스라엘 땅에 평화가 깨지고 긴장이 흐리고 있습니다. 강대국인 블레셋이 쳐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에 가지고 있는 보물과 재산을 빼앗으려고 키가 6규빗 반, 즉 3메다가 넘는 장수를 앞세워 이스라엘 국경 인 엘라 골자기에 쳐들어와 와서 이스라엘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일어난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모두가 위협과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전쟁이 일어 난지 40일이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은 더 이상 진행되지는 않고 긴장상태에만 있습니다.

블레셋이 당장이라도 이스라엘을 어떻게 할 뜻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는 장수를 앞세우고 쳐들어왔지만, 더 이상 진정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은 전쟁 상태라를 것과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이 유협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블레셋이 쳐들어 온 것은 이스라엘을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지 단지 위협하고 협박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을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공격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지 기회만 있으면 언제라도 쳐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바로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 직장, 가정, 교회를 위협하는 것들이 눈앞에 와 있습니다.
(벧전 5:8)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저들은 왜 공격을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두 가지 때문입니다.

1. 고지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쳐들어 온 이유는 이스라엘의 귀중품을 빼앗고 나라를 빼앗고 사람들은 포로고 끌고 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행복을 빼앗아고, 선물로 받은 믿음을 빼앗으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터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적들이 마을이나 도시로 들어오지 않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사실입니다.
블레셋 진영 엘라산 꼭대기에는 이미 많은 군사들이 올라갔습니다. 키 큰 장수도 올라가고, 무거운 무기도 가지고 올라가고, 먹을 것도 다 산으로 가지고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적이 쳐 들어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스라엘도 이미 산으로 다 올라갔습니다. 군사, 장수, 먹을 것 등이 다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왜 그러는 거죠? 전쟁의 목적은 빼앗는 것인데 왜 적군은 안 빼앗고 산으로 올라간 것입니까? 엘라 골짜기에 보물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엘라 골짜기에 왕이 숨어있는 걸까요? 왜 적군들은 엘라 골짜기로 모이는 것일까요?

그리고 이것을 막아 보겠다는 이스라엘은 왜 덩달아 산으로 올라간 것입니까?
고지 때문입니다.
블레셋이 그렇게 자신 있게 쳐들어왔지만 40일째 소리만 지르고 못 쳐들어가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지에 있지 때문입니다. 고지가 무엇입니까?

고지란! 사전적 의미로는 “높은 지대의 땅”을 말합니다.
전쟁에서 고지란! 전쟁하기에 유리한 장소를 말합입니다. 엘라 골짜기에는 두 개의 고지가 있습니다. 한 쪽은 적군이 한 쪽은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양쪽 군대는 이 고지에서 상대방을 움직이는 것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군대가 고지를 점령하고 있으면 적이 함부로 공격할 수 없습니다.

지금 블레셋이 엘라 골짜기 까지 쳐들어왔지만, 산으로 올라간 것은 앞으로 이스라엘을 확실히 공격하기 위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도 한쪽 고지에 올라간 것은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쟁에서 고지는 그 정도로 중요합니다. 전쟁 영화를 보면, 대부분 영화의 배경이 산입니다. 먼저 산으로 올라간 군대가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군대는 먼저 산에 올라간 군대를 멸하기 위해 죽을 가고하고 산으로 오릅니다.

왜 그렇습니다. 고지를 점령하지 하지 않고는 승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고지는 그만큼 중요합니다. 고지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고지는 유리한 위치입니다. 공부하기 유리한 위치는 고지입니다. 취직하기 유리한 위치는 고지입니다.

신앙생활에도 고지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영적인 전쟁이 있다면, 영적인 고지도 있습니다. 영적인 고지는 무엇입니까? 역시 신앙생활하기 유리한 위치가 고지입니다. 전도하기 유리한 위치가 고지입니다. 봉사하기 유리한 위치가 고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데 유리한 위치가 고지입니다. 그곳이 어디입니까?

1) 기본적으로 영적으로 기본 고지
영적 전쟁에서 기본적인 고지는 교회입니다. 교회는 영적 전쟁의 본부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음성)을 듣는 곳입니다. 영적으로 보초를 서는 곳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에 영적인 전쟁이 있음을 인정한다면, 고지인 교회를 잃으면 안 됩니다. 교회를 잃으면 고지를 내어주는 것으로 영적전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은 영적 전쟁이 있는 때입니다.
이 때 우리는 영적 고지인 교회를 잘 지켜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일을 성수해야 합니다. 공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각종 기도회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유는 교회가 영적 전쟁에서 고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단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 교회를 어수선하게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단이 교회 안까지 들어 온 것입니다. 교회가 영적으로 졸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영적으로 가장 강력한 군사인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까지 고지를 떠난다면 앞으로 이 고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분명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의 적들은 고지(교회)를 점령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고지를 점령하면 곧바로 그들은 도시와 마을로 내려와 다음 공격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으로 들어올 것이고 직장으로 나라 구석구석으로 들어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지를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고지가 사단의 손에 들어가지 않도록 자리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아멘
2) 신앙생활에 고지
신앙생활이란! 성도가 머무는 모든 삶을 말합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이란! 결코 성도가 교회에 와서 예배드릴 때만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성도가 있는 모든 곳이 예배하는 곳이며, 기도하는 곳이고, 봉사하는 곳이며 선교하는 곳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가 있는 곳은 어디나 영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그럼으로 영적인 고지도 성도가 있는 곳은 어디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영적고지는 신앙생활하기 유리한 곳이 영적 고지이며,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유리한 곳이 영적인 고지인 것입니다.
교육계에도 영적인 고지가 있습니다. 성도가 영적 고지를 점령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일에 시험보지 않고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정치 경제계에도 영적 고지가 있습니다.
행정기관에도 영적인 고지가 있습니다. 국회에도 영적인 고지가 있습니다. 문화 예술계예도 여적고지가 있습니다.
생활에 영적인 고지도 여러분이 점령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그 고지를 점령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2. 전선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려고 쳐들어왔지만, 산에만 있고 동네로 쳐들어오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다.

엘라 골짜기에는 고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엘라산 두 고지 사이에 있는 선입니다. 이 선은 실제로 아무도 눈으로 볼 수 없지만, 엘라 골짝이사에 사이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선을 전쟁의 용어로 전선이라고 말합니다. 그러한 선을 나라와 나라 사이에 있을 때는 국경선이라고 말합니다. 각 나라는 이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선을 함부로 넘으면 그 나라 범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쟁에서 전선은 법입니다. 누구든지 넘으면 죽습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힘이 쎄도 자기들 고지에서 더 이상 못 움직이는 것은 전선 때문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이 마무리 약해고, 비록 위협을 당하고 있을 찌라도 현재보호를 받는 것은 전선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전선이 뚤리고 밀리게 되면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전선이 밀리는 것만큼 빼앗기게 되는 것입니다.

사탄과의 전쟁에서도 전선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영적 전선이라고 말합니다. 이 전선은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보이지 않는 선입니다. 그러나 마귀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선입니다. 이 선 때문에 마귀를 크게 위협을 하지만, 우리에게 함부로 못 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에 영적 전선은 안전하십니까? 이상은 없습니까?
영적 선선은 어떤 것입니까?
성령의 검을 가지라.
그러면 앞으로 엘라 골짜기에 전쟁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둘 다 고지를 점령하고 있으니, 그래서 아무도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이렇게만 있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 문제를 끝내는 것은 고지를 지키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적의 화살이나 칼을 막는 것만으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영적으로는 기도의 보초로만 해결되지 않고, 믿음의 방패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공격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무엇으로 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는 상대에게 영향을 주는 공격용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선전을 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적은 40일째 큰 장수가 이스라엘을 위협하고는 있으나 공격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고지에 어린 소년하나가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입니다. 사실 이 소년은 전쟁을 하려고 이것에 온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이 전쟁에 참전한 형들을 면회하러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 소년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형들을 면회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골리앗이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바로 이 말입니다. “사울왕의 신복들, 겁쟁이 놈들아! 너희 중 한 사람을 택하여 내에로 와서 싸우자. 그래서 나를 죽이면 우리가 너희의 종이 되겠고, 내가 그를 죽이면 너희가 우리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삼상 17:8) 일대일로 싸우자는 말은 그 말입니다. “너희가 믿는 신은 어디 갔느냐? 신의 이름으로 내가 믿는 신과 대결해 보자”
그날 소년은 골리앗이 하는 그 소리를 듣는 순간 견딜 수 없는 분이 솟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소리는 지난 40일 동안 골리앗이 날마다 한 말 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에 이스라엘은 모두 벌벌 떨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윗은 그의 말을 듣고 속이 부글부글 끌어 올랐습니다.
왜 다윗만 골리앗의 말에 속만 부글부글 끌어 오르는 것입니까? 다윗의 속에 무엇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알아 맞줘 보시기 바랍니다.

결국 다윗의 상황이 왕에게 보고가 들어갔고 다윗은 왕의 부름 받았고, 또한 다윗은 왕의 보내심을 받고 다윗은 두 번째로 엘라 골짜기에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전쟁을 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은 골리앗을 이길 수 있는 무기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다윗이 그날 전쟁터에 가지고 나간 무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막대기입니다. 양을 칠 때 뱀을 쫓고, 짐승들이 오면 휘둘려 위협하는 용이고 양들이 다른 길로 가려고 할 때, 들어서 바른 길로 가게 하는데 사용했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골리앗을 이길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데 어떻게 가능할 까요? 제가 보기에는 상대의 공격을 막는 방패의 역할밖에는 안됩니다. 그러나 골리앗의 칼을 막아 내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바보가 아닌 이상 나무 막대기를 전쟁터로 가지고 간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모세의 예를 들면 이해야 가시겠습니까? 모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서 바로왕 앞에 갈 때 지팡이 하나 들고 갔습니다. 그는 그 지팡이 하나로 넉넉히 애굽의 군사를 이겼습니다. 그는 그 지팡이로 애굽의 군사를 홍해 바다에 수장 시켰습니다.

예상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골리앗은 막대기를 보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개로 아느냐 너를 죽여 새들과 짐승의 밥이 되게 하겠다.”(삼상 17:43~44) 다윗이 막대기를 들고 나온 것에 화가 난 것 갔습니다.

이것은 벌써 골리앗이 다윗에게 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골리앗이 다윗의 막대기를 보자 감정을 통제 할 수 없었고 성신이 혼미해 졌습니다.
다윗이 들고 있는 막대기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간 줄 믿습니다. 마치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로 홍해를 치면 피가 되고 , 그 지팡이로 하늘을 행해 들면 해가 뜨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이 믿음의 막대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에게 골리앗을 이 길 수 있는 무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삼상 17:40)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주머니에는 물맷돌 다섯 개가 있습니다. 전에 다윗은 이 돌로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인 적이 있습니다. 그럼으로 오늘 잘하면 이 돌로 골리앗도 죽일 수 있습니다. 잘 맞추기만 하면 사자보다 못하고 곰보다 못한 저 짐승 같은 골리앗을 죽이는 것은 문제도 아닙니다. 아멘

이제 엘라 골자기에 공격이 시작될 시점에 있습니다. 먼저 일대일로 싸움을 시작합니다. 일대일의 싸움이 중요한 이유는 신들의 싸움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골리앗이 먼저 화를 내며 한마디 합니다. “네가 나를 개로 아느냐 너를 죽여 새들과 짐승의 밥이 되게 하겠다.”(삼상 17:43~44)

다음은 다윗이 한마디 했습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군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는 줄 알게 하겠고,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 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

그리고 다윗이 먼저 공격했습니다. 물맷돌을 꺼내어 던졌는데, 골리앗의 이마에 정확히 박혔습니다.
엘라 골짜기에 함성이 들렸습니다. 이 함성은 이스라엘의 승리의 함성입니다. 승리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합성입니다. 적군은 모두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적군을 몰고 온 사단도 모두 물러갔습니다. 전선도 영적 전선도 모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물러갔습니다. 40일간 긴장 속에 떨고 있던 엘리 골짜기는 다시 조용해 졌습니다.

어떻게 된 것입니까? 무엇이 이 전쟁을 끝나게 했습니까? 놀랍게도 이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는 작은 물맷돌 하나였습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정말 물맷돌이 그렇게 무서운 무기라는 것을 느끼셨습니까? 전쟁에서 승리한 이스라엘과 실패한 불레셋은 무엇을 느겼을까요?
물맷돌을 최신무기로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을까요?
그래서 앞으로 이스라엘은 전쟁이 나면 모든 군사들이 물맷돌을 공격용 무기로 사용할까요? 전쟁에 실패한 불레셋도 물맷돌을 무기로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할 까요?

여러분! 우리가 얻고자 하는 교훈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윗에게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적인 무기인 성령의 검입니다.
(엡 6: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윗은 그것으로 이 전쟁을 이겼습니다.

다윗에 마음에는 골리앗에게 위협을 줄 수 있는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음입니다.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간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 주겠다.”
이 말씀이 다윗에 입에서 나가 골앗에 귀에 들려지는 순간, 골리앗은 이미 말씀에 칼에 맞은 것입니다. 가가 던진 돌은 이미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보조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말씀이 무엇인데 그렇습니다.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성도 여러분!
세상이 위협을 주지만 겁먹지 마시고 성령의 검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 읽으세요.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승리를 얻게 될 줄로 믿습니다.
다윗이 말한 대로 실제로 육적인 엘라“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않고,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다.”면, 영적인 전쟁은 100%로 여호와께 있지 않겠습니까?
믿음의 막대기와 성령의 검을 준비하여 2016년 영적 전쟁에서 꼭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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