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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내 안에 거하라

작성자
gfgc
작성일
2017-12-01 16:33
조회
1296
내 안에 거하라

요한복음 15:1-8

2017.07.09.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1971년 미국의 스탠포드 대학에서 주목할 만한 실험을 했습니다. 대학은 신문광고를 통해서 아주 특별한 실험대상을 모집했습니다. 대학은 광고를 보고 찾아온 24명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정해진 룰에 따라 2주 동안 12명은 간수 역할을 그리고 다른 12명은 죄수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시작하기 전 24명은 서로 악수를 하고 우리 모두 선량한 시민이기 때문에 서로 잘해보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가면서 두 그룹 사이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간수 역할을 한 사람은 날이 갈수록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자들이 되고, 죄수 역할을 한 사람은 날이 갈수록 눈치를 보며 비굴해져 가더라는 것입니다. 1주일이 지나자 간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정말 간수처럼 변하고, 죄수 역할을 맡은 사람은 죄수처럼 변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이 실험을 진행하지 못하고 1주일 만에 끝냈다고 합니다.

그러면 대학은 왜 이 실험을 했을까요? 실험을 통해서 알려고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대학은 이 실험을 통해서 사람이 자기를 누구라고 생각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인격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실험은 그것을 증명해 냈습니다. 가기가 누구라고 생각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격도 삶도 달라진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실험과 관련된 좀 전문적인 용어 하나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셀프이미지’입니다. 셀프이미지로 위에 실험을 말한다면 사람이 어떤 셀프이미지를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삼과 인격이 그렇게 변해 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셀프이지에 관련해 먼저 말씀을 시작했습니다. 셀프이미지란! 무슨 말일까요? 우리나라 어학사전에는 나오지는 않지만, 셀프와 이미지의 합성어로 “자기 자신 스스로가 나는 누구라”고 생각하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단어가 자존감이라는 단어입니다.

어느 글에서 “셀프이미지와 자존감”이라는 글을 발취했습니다.

“나 스스로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내 성장의 한계가 결정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생각의 크기만큼, 본인의 셀프이미지 만큼 성장한다. 내 성장가능성의 리밋을 해제시키는 것은 남들이 아니라 바로 나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남들이 아무리 나를 안다 해도 그들은 나만큼 나를 모른다. 그래서 그들의 말보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규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우리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수 억분의 1의 경쟁을 뚫고 세상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내 삶은 무엇인가 큰 의미와 목적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존재를 평범하고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정말 큰 오류이다.” Live Extraordinary!

셀프이미지! 여러분은 어떤 셀프이미지를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오늘 말씀을 나누시면서 그것들을 발견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분문은 주님이 제자들에게 셀프이지미를 갖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시는 셀프이미지는 간단합니다. “너희는 포도나무의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예수님은 포도나무시고, 하나님 아버지는 포도나무를 키우시고 관리하시는 농부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지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셀프이미지의 주인은 농부이신데, 그 농부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게르시지도 않으시고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농부이신 하나님이 이처럼 열심히 일하시는 것은 가지에 거는 기대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가지는 오늘 저와 여러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오늘 말씀을 풀어가는 전제가 됩니다.

이런 기본 전제를 가지고 지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포도나무 이신 당신에게 거하여 탐스런 포도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을 심어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농부인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제자로 부름 받은 제자들이 진짜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셀프이미지를 심어 주시는 의도가 무엇일까 굼궁합니다. 그것이 단순히 열매 때문일까요? 6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거나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거는 기대는 단순히 열매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문론 열매도 기대를 하는 것이지만, 심판도 있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은 열매와 관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열매를 계속 맺지 못하면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열매를 기대하시는 주인이시며 농부이신 하나님은 지금도 이 일을 계속 진행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에게서 열매를 얻기 위해서 지금까지도 일하셨지만, 지금도 수고를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가지가 끝내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그 가지는 잘라 버리신다는 것이 오늘 말씀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서 분명히 알아야 하는 사실은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에게서 열매를 기대하시는 농부이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능력자 농부시라는 것입니다. 즉, 그분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나무에게 얼마든지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본문에서 주님이 말씀하시는 농부가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 농부이신 하나님은 못하실 일이 전혀 없으신 분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 심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자꾸 우리를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6절의 말씀입니다.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거나,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농장에서도 가지처럼 밖에 버려지거나, 사람들이 모아다가 불사름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농부로 계시는 농장에서 일을 수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상이 저와 여러분 중에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농장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다음 성경 구절과 관계가 있습니다. 4절 “내 안에 거하라”, 5절에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고 여러 곳에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성경 말씀을 푸는 중요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거하면 많은 열매를 많이 맺고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면 이루어지고,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거한 자는 제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게 된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가지인 우리가 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붙어 있으면 열매를 맺지만 떨어지면 마른 가지가 되어 불에 던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오늘 본문에서는 수 없이 “내 안에 거하라”고 한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반복해서 나옵니다. 원어성경을 보면 15장에 이 표현이 무려 13번이나 나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제자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강조 또 강조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우리 인생의 문제, 구원의 문제, 열매의 문제가 무엇이지 충분히 발견하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는 거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문제가 하나도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예수 안에 거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거한다는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거한다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것을 아는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 우리에게서 열매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안에 거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고 계십니까? 그래서 지금 여러분은 예수 안에 거하고계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은 열매를 행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자라고 있습니까?

“내안에 거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제자들 한명 한명이 실제로 예수님 몸으로 들어간다는 뜻입니까? 아니면 예수님과 떨어지지 않고 붙어 다닌다는 뜻일까요? 여러분은 그것이게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과 함께 3년을 살았고, 지금 예수님으로부터 이 비유의 말씀을 듣고 있는 제자들을 “내 안에 거하라”이 말씀을 알고 있을까요?

우리가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내안에 거하라는 말씀을 더 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주님께서 하늘로 다시 올라가실 때가 가까운 때입니다. 그렇게 볼 때 내 안에 거하라는 주님의 말씀에는 두 가지 어패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곁에 계시면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다면 몰라도 다시는 볼 수 없게 될 텐데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시는 것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이 사람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곁에 있을 수는 있어도 피차가 서로의 안에 있다는 말은 어폐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면 내 안에 거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영적인 연합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안에 거하시고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거하시는 것과 같은 영적 연합의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3년 동안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지만, 아직 영적인 연합의 단계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인간관계의 연합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저들 곁을 떠나시게 되면서 제자들과는 영적인 연합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이것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바로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영적 연합의 관계를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나무에 붙어서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관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예수님께서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안에서 두 가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도의 실천입니다. 본문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한 마디로 말하면 제자들이 주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특별히 언어라는 도구를 주셨습니다. 말로 의사소통하고 서로 교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말로 하나님과 소통하고 교제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오직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인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늘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요 17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이렇게 기도로 교제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 가운데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신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이렇게 주님과 기도 가운데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기도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기도는 특별한 시간과 장소에서 드리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께 나의 소원을 아뢰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물론 그런 기도도 있습니다. 다른 종교를 가진 분들 중에는 우리보다 이런 기도를 훨씬 잘 하는 분들 많이 있습니다. 무속인들, 이슬람인들 불교인들

그러나 기도의 본질은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드리고, 내 생각을 아뢰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묻고,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 안에서 주님과 영적 교제를 맺는 것이 우리가 주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체적으로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가지로서 더 철저하게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야 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더 철저하게 기도 안에서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한 마디로 말하면 제자들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지키는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늘 아버지의 뜻을 생각하셨고 아버지께서 명하신 말씀을 철저하게 지키셨습니다. 성경을 이루시기 위해 죽으시기 까지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내 안에 계신다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가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계명을 알아야 지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열심히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입니다.

적용 ->

주님은 오늘 비유에서 우리의 위치를 가지라고 이미지화 했습니다. 우리가 가지 일 때, 다행스런 것도 있지만, 부담스런 것도 있습니다. 다행스런 것은 열매를 맺고 못 맺고는 우리의 노력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부담스런 것이 있다면 가지의 사명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 일들을 감당 할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는 포도나무인 예수님에게 붙어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4절 말씀 때문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즉, 우리가 주 안에 거하지 않고서는 결코 우리 힘으로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고는 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실패하는 사람들은 보면 여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예를 든다면 교회를 한번 빠졌는데, 그다음에 또 빠지고 싶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에 나가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이 가지가 나무에서 떨어진 예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잠시 말씀드렸던 사촌 여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은혜를 많이 받았는데 십일조가 아까워서 한번 빠졌더니 교회가 싫어지고 몸이 아프고 결국엔 신내림 굿을 하고 보살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땅에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전도의 열매를 맺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성령의 9가지 열매와 같은 인격의 열매를 맺어보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교회를 부흥시켜보려고 애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기 힘으로 기도의 응답을 받아보려고 부르짖고 몸부림치며 기도에 주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듯이 안 됩니다. 힘 만들고 열매가 맺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주 안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열매는 가지 스스로 맺지 못한 다는 것입니다. 열매는 나무가 맺게 해 주는 것입니다. 뿌리를 통해 양분도 제공해 주고 물도 제공해 주기 때문에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지는 다만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나무가 열매를 맺게 해 주는 것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나무가 갈 곳을 안내합니다. 꽃피고 열매 맺는 시기를 알려 줍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전도는 주님께서 열매 맺게 해 주십니다. 우리는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우리의 인격도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말씀대로 순종만 하면 다양한 신앙생활의 열매도 주님께서 풍성하게 얻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한마디로 주님께서 우리의 갈 길을 안내해 주십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에게 두 가지 확실한 열매에 대해서 보장해 주셨습니다.

하나는 기도 응답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할 때 우리가 주님께 구하는 것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이루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기도 자체보다는 기도하는 내가 주 안에 거하고 있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지 않은 채로 기도할 때 응답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말씀의 역사의 열매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할 때 우리가 말씀을 지키면 그 말씀이 놀라운 역사를 나타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안에 거하면서 말씀의 역사를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하지 않은 채로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기대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주 안에 거하는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기쁨입니다. 11절을 보면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주 안에 있어서 열매를 많이 맺게 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데 그 기쁨이 우리의 심령 안에 전해져서 정말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결단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신앙에 열매와 관련해서 양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에서서 불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주님에게서 떨어지게 하거나 불어지게 하려는 요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태풍과 같은 시험이요, 게으름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혼미 케하는 세상에 소리들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주님에게서 떨어지지 아니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이 거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경청하고, 말씀을 읽고, 말씀을 공부하고, 그리고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의 심령 속에 주의 말씀이 거하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말씀을 지키려고 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성령이 우리를 도와서 우리가 주 안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가지인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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