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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주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사람

작성자
gfgc
작성일
2016-04-24 23:26
조회
1308
주의 거룩함을 나타내는 사람
민 27:12-23, 민 20:2~13
2016.04.24.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우리 기독교는 부름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세우시기 위해 사람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감당 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사명을 다 감당했으면 그 사명을 계승하도록 합니다. 우리는 초대 성도와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과정에서 그는 “나이가 많아 못한다. 못 간다. 말을 못한다. 성경은 잘 모른다. 하나님을 잘 모른다. 등의”일로 부름을 거절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그에게 능력을 보여 주자 그가 순종을 했습니다.

사실 모세가 부름 받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종으로 살고 있을 때,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태어나는 남자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머니에 의해 갈대상자에 담겨 나일강에 버려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애굽 왕궁에서 자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80세에 그를 정식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부름을 받은 모세는 애굽에 내려가서 이스라엘 박성들을 인도해 냈고 지금은 가나안 땅이 눈에 보이는 모압 평지에 와 있습니다. 조금만 높은 산에 올라가면 가나안 땅에 보이는 곳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아바림 산에 오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가나안 땅은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모세가 곧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모세에게 주어진 사명도 여기까지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랍고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사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받아 드리고 계십니까?
지난 광야 40년 오로지 가나안 땅만 바라보고 달려왔데, 그 땅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고 들어가지 못한다니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얼마나 기가 막힌 말씀일까요? 이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모세도 이런 사실에 대해서 받아 드리기 힘들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 3:24-25 “주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크심과 주의 권능을 주의 종에게 나타내시기를 시작하였사오니 천지간에 무슨 신이 능히 주의 행하신 일 곧 주의 큰 능력으로 행하신 일같이 행할 수 있으리이까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편에 있는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옵소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 진노하사 내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내게 이르시기를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그렇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끝내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일 일로 기도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 모세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지도자의 길을 생각을 해본적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갑자기 나타나셔서 부르신 것입니다. 할 수 없다고 했지만, 갈 수 없지만 가라고 해서 갔던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만 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더하고 싶지만 이제는 더 하고 싶다고 해도 할 수 없는 때가 온 것입니다. 사실 지금 모세의 나이 120살입니다. 은퇴를 할 시기가 훨씬 넘었습니다. 모세는 벌써 그 직분을 내려놓아야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모세의 은퇴에 대해서 좀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 간 다음에 사명을 내려놓고 죽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어떤 분들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에 대해서 마치 천국에 못 들어 간 것처럼 해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건 우리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모세를 가나안에 못들어 가게 하시고 그 사명의 길을 여기서 그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그 이유가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2. 명령 거역했다.
14절입니다. (민 27: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모세가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직접적인 이유는 신 광야 사건 때문입니다. 그러면 신 광야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스라엘에 신 광야 르비딤에 도착했을 때 물 때문에 큰 난리가 났습니다.
14절에서는 “신 광야에서 회중에 분쟁할 때”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민수기 20장 3절에서는 “백성이 모세와 싸웠다”고 했습니다.

광야에서 물이 없자 백성들이 모세에게로 몰려와서 강력한 항의를 한 것입니다.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서 우리와 자녀와 가축이 목말라 죽게 하느냐?”이 과정에서 모세와 백성이 아시에 타툼이 있었던 것이죠. 모세가 회막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아무런 말씀도 안하시고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짐승에게 마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현장에 나타나셔서 그들의 싸움을 다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이 다 모여 있는 곳에서 손을 들어 큰 소리로 “우리가 물을 내랴”하면서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그러자 물이 많이 나왔고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넉넉히 마셨습니다.(11절)

그런데, 여러분!
여기에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는 모세가 사명을 내려놔야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없을 만큼 큰 문제입니다. 사실 우리가 볼 때는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물이 많이 나왔고 그래서 목마른 백성들과 짐승들이 실컷 마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일로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시기에 무엇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물이 나오는 과정에서 모세가 무엇을 잘못을 해서 그것 때문에 모세는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입니까? 여러분은 발견하셨습니까?

우리가 이 문제를 쉽게 발견 할 수 있는 성경 구절은 민수기 20장 8절과 11절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과 모세가 행한 것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는데, 모세는 어떻게 했습니까?
8절에서 하나님은 “바위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 11절에서 모세는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이나 내리 쳤습니다.
성경은 정확하게 여기서 모세가 한 일에 대해서 잘 못되었고 말씀하십니다.
14절을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은 민 20:8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것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쳤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보실 때 이것은 심각한 명령 위반이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물만 나오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 명령은 결코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곧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전체 구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아니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거역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120년 전 모세를 나일강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애굽의 왕궁에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40살이 되던 어느 해, 그는 혈기를 부리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는 왕궁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미디안 광야에서 짐승을 돌보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40년 동안 말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일강에서 건지실 때는 쓰시려고 살려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나일강 사건이 추억속으로 사라지려고 할 때 모세의 나의 80세가 되던 하나님이 다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80세 노인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지금 모세는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좋은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40년 동안 양을 치는 목자로서 생명을 귀하게 여기를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그 인격으로 바로와 앞에 선 모세는 자기백성을 구출하게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동안 말로 다할 수 없는 속상한일이 있지만, 모두 참아 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백성들과 크게 싸웠습니다.

민수기 20:3절입니다.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싸움은 그냥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기가 바위에서 물을 나오게 한다고 말하고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내리치는 결과로 이어 졌습니다.

여러분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음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순종하는 곳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증표이기도 합니다.

명령을 지키는 것은 쓰임의 문제입니다.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안했어도 물은 나왔습니다. 물이 없다고 아우성치는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도 모세의 사명은 여기까지 였습니다.

모세의 사명이 여기 까지 였다고 이것이 모세가 천국에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의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은 상벌의 문제도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명과 능력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듯이 오늘도 우리를 통해 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바라고 계십니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 영적으로 혼탁한 시대입니다. 주의 말씀을 구분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주님이 주신 말씀에 더욱 귀 기우려 주의 음성을 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명령을 거역한 것은
모세가 마실 물이 없다고 원망하는 백성들 앞에서 그들과 다투고 회막 앞에 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세에게 말했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쳤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분명히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고 했는데 모세는 지팡이로 박석을 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물은 나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일로 너무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급기야는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왜 하나님 마음이 아프셨을 까요?
14절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 당신의 거룩한 모습을 들러내시려 했습니다. 그 거룩함은 지팡이가 아닌 말씀으로 명령하면 바위가 터지고 거기서 물이 나오는 거룩이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대 말씀으로 빛을 만드신 것처럼 하늘과 땅을 차조하신 놀라운 사실을 보여 주시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물 때문에 원망하고 싸우는 일을 없애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지팡이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위에게 명령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지팡이로 바위를 쳐서 물을 내든, 명령하여 물을 내든 모두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이 아닙니까? 그래서 물이 나왔으면 되었지, 모세에게 이렇게 가옥함을 주시는 것입니까?

그러면 지팡이로 바위를 치는 것과 바위에게 명령하여 물이 나오게 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모세가 들고 있는 지팡이를 통해서 수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그 지팡이를 통해 애굽의 바로를 징벌했습니다. 라일강을 피가 되게 했습니다. 해를 가르치면 빛을 잃게도 했습니다. 홍해를 가르기도 했습니다. 바위를 치면 물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에게 지팡이는 하나님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지팡이가 아니더라도, 그냥 말씀만하도 바위에서 물이 나오게 하는 하나님의 살아계시는 능력을 보여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당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어떻게 창조한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시기를 바랬습니다.

오늘을 사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당신이 살아계시고,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을 보여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더 이상 다투지 않고, 세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제일먼저 하신 일은 한 잔치지에 들리셔서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는 것을 보여 주신 일입니다. 그밖에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눈 먼자를 보게 하고, 못 듣는 자를 듣게 하고 죽은 자를 살려 주시고, 바람과 바다를 잔잔하게 하는 것을 보여 주시고, 귀신이 나가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는 당신이 살아나신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 보고도 주님의 부활을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는 도마를 행해서 보여 주시며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도마와 제자와 우리 모두에게 분명히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세상에 사람들이 예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보고 하나님을 믿기를 바라십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보고 믿는 것을 다행히 여기십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것은 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매일 같이 구름 기둥 불기둥으로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나님이 먹이시는 분이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이 가나안에 가까이 오면서 하나님께는 깊은 고민이 생기셨습니다. 이제 멀마않 있으면 지팡이도 살아지고 구름기둥 불기둥이 살아지고 만나와 메추라기도 다 사라지게 될 턴데 이들이 마무 것도 모지 않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이 보지 않고 믿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오을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거룩하신 하나님 자신을 세상에 자신의 백성들에게 보여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그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보여 주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들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을 보여 주시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여러분 말속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이 드러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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