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 창세기 14장 14~16절

gfgc gfgc
작성일 2024-08-10 11:52
조회 66
인류 최초의 전쟁/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창세기 14장 14-16 2024.07.28. 강북꽃동산교회
세상은 평화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 더 늘어간다. 이 모든 인간 고통 두려움뿐 그 지겨움 끝없네. 그러나 주 여기 계시니,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우리가 아들 믿을 때에 그의 영으로 하나 돼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우리 모두 다 하날세. 80년대를 풍미했던 복음성가입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주목할 만한 전쟁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일 것입니다. 2022년에 시작되어 여전히 진행 중에있습니다.
이외에도 아프가니스탄, 에디오피아, 이라크, 예멘, 시리아, 소말리라, 리비아, 콩고민주공화국, 미얌마, 몰롬비아, 말리 같은 나라들도 내전이나 무장 충돌을 겪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최초의 전쟁은 창세기 14장, 오늘 본문입니다.이 전쟁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가나안에서 일어났고 연합전쟁이라는 점입니다. 시날왕 아므리벨, 엘살왕 아리옥, 엘림왕 그돌아오멜, 고임왕 디달이소돔왕 베라, 고모라왕 비르시, 아드마왕 시남, 스보임왕 세메벨, 벨라와 소알왕이 싸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정리해 보면 네 나라가 다섯 나라와 싸우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싸우게 되는 이유는 12년 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13년에 배반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배반했다는 것은 조공을 바치다가 안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내 주겠다고 네 나라가 연합군을 만들어 쳐들어갔는데 공격을 받는 나라들도 이에 질세라 연합군은 만들었는데 다섯 나라가 의기 투한 한 것입니다.
이 전쟁은 어떻게 될까요?네 나라와 다섯 나라가 싸우게 되는데, 객관적으로 다섯 나라 연합군이 이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묵상하다 보니까 전쟁에 변수가 될 만한 나라 이름이 보였습니다. 1절입니다. (창 14:1, 개정) “당시에 시날 왕 아므라벨과 엘라살 왕 아리옥과 엘람 왕 그돌라오멜과 고임 왕 디달이”라고 했습니다.
주목하게 되는 왕은 시날 왕 아무라벨입니다. 창세기 11장으로 가 보면 시날 평지에 하늘을 찌르며 올라가는 탑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소위 바벨탑이지요? 노아 때 홍수로 큰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시 있을 홍수를 대비해서 하늘에 닿는 탑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다시 큰 비가 오면 하늘로 올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흩어짐도 면하고 훗날 자신들의 이름도 내자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시날 사람들입니다. 시날왕 아므라벨입니다. 일을 낼 만한 사람이 아닙니까? 네 나라가 다섯 나라를 이기겠느냐라고 생각하는 것은 시날 사람들을 몰라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탐을 쌓아도 하늘에 닿게 쌓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들의 공격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저들도 연합군을 만들었지만, 시날사람들 같겠는냐는 말입니다. 저들의 용맹과 배짱같은 것이 있겠냐는 말입니다.
그럴 때 걱정이 되는 것은 소돔입니다. 왜나하면 소돔에는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돔이 잘 못되면 롯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걱정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부음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 때문입니다. (창 12:2-3, 개정)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는 말씀입니다.
“너는 복이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아브라함에게 있고 아브라함을 통해서 세계만민이 복을 받는 일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복의 최종은 아브라함의 계보에서 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지요.
아브라함은 복이 되는 근원입니다. 그리고 그리고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롯을 통해서 보여주셨습니다.
(창 12:10, 개정)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구절을 보니 아브라함이 먹고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롯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지만, 13장 1절에 롯과 하께 올라왔다는 말씀을 보면 함께 내려갔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하는 동안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응하는 일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마음을 함께 하는 자는 함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씀을 응하신 거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는 롯이 아브라함과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재산 문제로 싸우고 서로 헤어 졌는데, 롯은 연합전쟁의 한가운데인 소돔에 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전쟁 한복판에 있는 롯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전쟁에서 이기면 좋겠지만 지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아브라함과 함께 있으면 그래도 덜 걱정이 되겠는데, 지금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영적인 차원에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연합 전쟁을 어떻게 되었을까요?
(창 14:11-12, 개정) “11 네 왕이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아 가고 12 소돔에 거주하는 아브람의 조카 롯도 사로잡고 그 재물까지 노략하여 갔더라”라고 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롯을 비롯한 가족이 포로고 잡혀갔고, 재산은 모두 노략당했습니다. 롯은 상황이 안 좋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고 재산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첫 번째 말씀이 여기에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디나 늘 전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은 욕심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욕심이나 정욕을 따라 살면 누구든지 전쟁 한복판에 설 수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롯에게 일어날 일에 대해선 성경이 이미 말한바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이 재산 문제로 큰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혈이다.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라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않냐 네가 먼저 선택하라 네가 우하면 내가 좌 한다. 네가 좌하면 내가 우한다.”(창 13:“8-9)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롯은 소돔을 선택했고 지금 롯이 소돔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롯이 선택한 소돔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13절입니다. (창 13:13, 개정)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라는 것입니다.
즉 소돔은 이미 죄악의 땅이었고,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롯의 선택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롯에 눈에 비쳐질 소돔 땅은 여호와의 동상같고 애굽 땅과 같아서 그곳을 선택한 것 같은데, 롯은 그 땅에 죄악의 땅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시했을 것입니다. 이유는 애굽에서 돈을 벌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롯은 소돔을 선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롯에게 소돔으로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를 쫒아내지도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롯이 소돔으로 가길 바라지 않았습니다. 롯의 선택은 자유입니다.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성도는 부름의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아브라함과 롯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창 12:4, 개정)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롯은 죄악의 한복판에 있고 전쟁 한복판에 있습니다. 롯이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하나님이 그에게 저주한 것입니까? 여기서 사람들이 오해를 합니다. 롯이 아브라함과 싸우고 떠나서 벌을 준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땅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롯이 선택한 땅은 죄악의 땅입니다. 하나님이 심판의 대상인 땅입니다. 벌, 먼지, 뱀, 모기가 많은 곳에 있으면 물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처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그 사명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 복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시 1:1-2, 개정)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롯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적에게 포로가 되어 그동안 모아두었던 재산은 모두 노략당하고 본인을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까지 모두 적지로 끌려갔는데, 앞으로 롯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는 무슨 힘, 능력으로 자신을 비롯한 가족을 구출해 낼 수 있을까요?
그 길은 여기에 있었습니다. (창 14:14, 개정)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라고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롯의 안타가운 소식이 들려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집에서 잘 기르고 훈련된 318명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밤에 나가서 롯과 그의 가족과 부녀들과 친척들과 재물들을 다 찾아왔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이 적으로부터 구출 받았습니다.
롯의 구원은 외부에 있었습니다. 자신의 힘과 노력, 그가 그동안 모아둔 부에 있지 않았습니다. 롯을 구원할 힘은 처음 하나님이 부르셨던 소명과 소명에 담긴 사명을 감당하는 곳에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지금 그 일에 증인입니다. 그는 복에 근원이고 말씀을 따라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가면 문제가 해결되고 그로 인해 눌린자, 갇힌자가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두 번째 말씀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육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입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거룩한 믿음의 조상입니다. 고상하고 성자와도 같고 큰 소리나 혈기 그런 것은 전혀 없는 거룩하고 고상한 할아버지를 연상하게 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를 당황하게 하는 것은 그에게 개인적인 군사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말입니다. 오늘로 말하면 경호원 일수 있는데 경호원치고는 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무슨 왕도아닌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318명의 잘 훈련된 군사가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여차하면 전쟁하려는 것입니까? 아니면 재산을 지키려는 것 뿐입니까?
그래도 왠지 우리 기독교의 정신에 반한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단 말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면 되는 것 아닙니까? 기도하면 하나님이 막아 주셔서 적이 왔다가 도망하는 것아닙니까? 군사라니! 경호원이라니! 믿음의 조상, 영적인 사람이, 왠지 어색하고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성경학자들은 이런 아브라함을 ‘전쟁에도 능한 사람’이라고 호평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전쟁이 많은 세상에서 전쟁에 포로가 된 사람들을 구출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 하나님께 부름받았던 그 마음에 늘 충실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적 육적 죄에 빠져 구원의 여망이 전혀 없을 때 하나님은 귀히 쓰시는 사자를 보내셔서 손 내밀라 하시고 손 내밀자 잡아 일으키시며, 죄악의 구덩이에서 잡아 끌어내시더니 죄를 회개하라 하여 ‘주여! 나는 죄인이다’라고만 말했더니 성령으로 내 인생의 모든 죄를 사해주시더니 안아 주시더니 아들이라 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을 주고 능력이 줄테니 함께 가자고 하셔서 아멘하고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사명의 목적은 전쟁으로 인해 포로되고 죄에 빠진 영혼을 구원하는 것임을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건강을 주신 이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전쟁에 포로 된 자들을 구출하는 사명을 감당하라는 뜻입니다.
지금 이 땅에는 늘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소문은 끊임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욕심 때문입니다. 이런 전쟁은 총과 칼 미사일을 써야먄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전쟁은 죄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브라함처럼 영적으로 뿐 아니라 육적으로도 지혜롭고 강한 능력있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런 복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강북꽃동산교회는 이 시대에 아브라함과 같이 복이 되시고 평화가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