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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하나님의 사자를 보는 짐승 | 민수기 22:21-30

작성자
길윤구
작성일
2026-08-05 11:25
조회
97
하나님의 사자를 보는 짐승

민 22:21-30

2020.03.21.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2024.06.02. 강북꽃동산교회

요즘 신학교가 미달입니다. 전에는 신학교를 가라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신학교를 가라는 사람이 별도 없다네요. 전에 신학교를 가라고 한 사람들은 주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들 이었는데, 요즘 기도하는 사람이 적은가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40년이 다 되어갈 때, 저들은 요단강 동편 모압 평지에 진을 치게 됐습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스라엘에 이런 움직임은 주변 나라에 무서운 위협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일어난 일들 때문입니다. 홍해바다가 갈라지고, 바위에서 물이나고,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저들을 다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최근 아모리, 바산이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다가 크게 망한 사건은 저들을 더욱 두렵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는 이스라엘의 움직임에 모압 왕 발락이 겁이 나서 어쩔줄몰라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모압 왕은 살기 위해 이런 머리를 썼습니다.

유명한 점술가를 초청해서 이스라엘을 망하게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람이라는 점술가를 찾았습니다. 자기 이름과 받침 한 획만 틀립니다. 발락, 발람

발락이 발람이 살고 있는 유브라데강가 브올에 사신을 보내 복채를 주고 함께 가기를 청했습니다. 발람은 왕이 주는 복채를 거절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왕이 보낸 사신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 22:12, 개정)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그래서 발람은 발락의 요청을 거절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합니다.

앞으로 이 일은 어떻게 될까요?
오늘 하나님은 발람을 통해서 우리들에 무엇을 말씀하실까요?

발람, 그가 오늘 우리의 신앙을 대변하는 자라면, 지금 여기까지는 참 잘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상입니다. 그런데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여기서부터는 신경을 써야합니다.

모압왕 발락이 순순히 물러서겠느냐는 것입니다. 예상했던 일이 생겼습니다.

모압왕 발락은 전보다 지위가 더 높은 사신을 보내서 발람의 마음을 흔들만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17절이지요. (민 22:17, 개정)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높은 자리, 돈, 명예, 권력 다 준다는 것 아닌가요?

발람이 끌리는 조건이 아닐까요? 발람마음에 유혹이 왔습니다.
발람이 하는 일은 어떤 정치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사적 행동을 하는 것도, 어떤 이스라엘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아닙니다. 말을 잘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 다만 이스라엘을 저주만 하면 됩니다.

발람에게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점술가로서 어렵게 살았는데, 이번에 한미 천 잡을 기회가 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말 한마디만 하면 장관도 되고 돈도 벌고 평생 보장되는 일이 생길 것이라는 생각이 아닐까요! 혹 우리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것은 우리들에게 사탄의 전략을 생각하게 만들입니다.

발람 어떻게 할까요?
우리는 발람을 계속 관찰 해 보려고 합니다. 위에서 말씀했지만, 발람은 당시 유명한 점술가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혼돈하게 하는 것은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발람은 예언자인가요? 제 생각에는 예언자인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입에 말을 주셨다는 것이지요.

더 중요한 오늘에 발람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목사, 장로,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까?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용하시고 그 마음의 말을 입을 통해 말씀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 우리는 누구냐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구입니까?
베드로 사도의 말과 같이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예언자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주신 감동을 입으로 말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제 발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민 22:18, 개정)입니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라고 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이는 내가 혹 말을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만 하겠다는 뜻 아닙니까? 발람이 안가겠다는 것입니까? 가겠다는 뜻입니까?

이미 발람의 말에는 가겠다는 생각이 들어가 있습니다. “내가 가서 말을 하더라도”가 누락 되어있습니다. 즉 발람은 모압 왕이 주는 유혹에 이미 넘어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모압에 가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가서 말을 하더라도”라는 전제를 이야기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발람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 민 22장 20절에 갈 테면 가라고 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발람은 나귀를 타고 두 종과 함께 저들을 따라나섰습니다.
그런데 가던 중에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나귀가 가던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놀란 발람 책직을 들어 나귀를 내리쳤습니다. 그러자 나귀가 담쪽으로 가서 담에 몸을 기댔습니다. 발람의 발이 짓눌졌습니다. 발람이 다시 책칙으로 나귀를 사정없이 때렸습니다. 그래서 나귀는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갈 길이 없는 좁은 길이라서 나귀는 그는 땅에 엎드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발람은 지팡이로 나귀를 세 번이나 내리쳤습니다.

그러나 나귀가 사람의 말을 했습니다. “내가 당신께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 같이 세 번 때리느냐. 나는 당신이 일생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버릇이 없었더냐”(22:28-29)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민 22:23, 개정) “나귀가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들어간지라 발람이 나귀를 길로 돌이키려고 채찍질하니”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저가 가는 길을 막으셨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고 길에서 벗어나 밭으로 갔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포도원의 좁은 길에서 다시 길을 막았습니다. 역시 발람은 못 보았습니다. 나귀가 보고 몸을 담에 대고 피했습니다. 이번에는 여호와의 사자가 피할 데가 없는 좁은 길에서 다시 길을 막았습니다. 발람은 못 모았습니다. 나귀만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렸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발람이 화가 나서 지팡이로 나귀를 내리쳤습니다. 그때 나귀가 입을 열어 말을 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네가 나를 거역하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면 곧 너를 죽였으리라”(29)라고 하자 나귀는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30)라고 했습니다.

이거 동화 이숍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에 나온 실화입니다. 하나님께서 나귀의 입을 여셔서 나귀가 하나님의 말을 사람에게 한 것입니다. 발람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귀 앞에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 들고 길에 선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이 우리에게 충격이 되는 것은 당시 유명한 예언자가 영적으로 눈이 멀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도도 모르고, 짐승도 보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도 못 봤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꾸은 짐승만 때리고 심지어 죽일 생각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발람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우리말에 “눈 뜬 장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무엇을 보고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보면서도 실제로는 보지 못하는 답답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발람이 어느 순간 눈뜬 장님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순간일까요? 17절입니다. 모암 왕으로부터 높은 자리를 보장 받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후부터 그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졌습니다. 그 약속을 받은 후부터 마음은 높은 자리에 올라 목에 힘 줄 일들 생각에 들떠있습니다. 그리고 왕이 무엇이든지 준다고 하니 왕에게 무슨 소원을 말할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여러분!
참 신기한 것은 며칠 사이에 발람의 눈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바람이 왕의 약속을 듣기 전에는 여호와의 사자를 보았었는데, 지금은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발람이 왕의 약속을 듣기 전까지 여호와의 음성을 듣던 사람인데, 왕의 약속을 들은 후부터는 여호와께서 보내신 사자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눈 뜬 장님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한순간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눈은 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영안이 닫히고 영적인 감각이 마비되어 버립니다. 발람이 여호와의 사자를 보지 못하게 됐던 것처럼 영안이 닫히면 영적인 것을 보지 못하고 영적인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묵상해도 영감을 얻지 못하고 주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기도의 문이 닫히고 주님과의 영적 소통이 끊어집니다.

막 8:18에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라고 책망하신 것처럼 그렇게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늘 성경에 집중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어야 합니다. 그래야 영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건과 사고를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볼 것을 보고 들을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귀의 영안을 열어 하나님의 사자를 보게 하시고, 그의 가는 길을 막아 세우시는 것입니까?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지금 발람의 가는 길을 막고 싶으십니다. 그런데 발람은 이미 물질에, 세상 소망에 눈이 멀었습니다. 여호와가 주의 사자를 보냈는데도 그의 분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나귀의 영안을 열어서 나귀를 통해 바람을 못 가도록 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해석이 있으십니까?

본문을 보면 자세히 보면 나귀가 말을 하긴 했지만, 말을 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라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나귀를 통해서 발람에게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귀를 통해 발람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셨을까요?
발람의 오해를 책망하려 하신 것입니다. 지금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습니다.

12절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발락 왕이 처음 보냈던 사신들이 왔을 때 발람이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발람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을 자들이니라” 발람이 이 말씀을 듣고 분명하게 가지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사신들이 왔을 때, 가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알고 당연히 거절해서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발람은 모암왕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다시한 번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응답을 주신 것입니다. 20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너를 부르러 왔거든 일어나 함께 가라 그러나 내가 네게 이르는 말만 준행할지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발람이 저들을 따라 모압에 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 오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바람은 가라는 하나님의 참 의도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함께 가라는 하나님의 참 의도가 무엇인지 아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신앙생활에서 참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하나님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키우다 보면 그런 경우를 보게 되는데, 자녀가 어느 날 와서 어디를 가겠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생각에는 안 갔으면 좋겠는데, 자꾸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모는 네가 가고 싶으면 하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녀는 어떻게 해야 되지요? 가지 말아야 합니다. 자녀가 가도 된다는 말들 듣고 신나서 가는 것은 오해입니다. 실제 부모의 마음은 ‘가지 말라’입니다.

발람은 함께 가라는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따라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분노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셔서 길을 가로막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가도 된다고 하시고 그가 가는 길을 가로막으시는 것입니까?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왜 발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 했을까요?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들의 파격적인 제안을 받고 보니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니 그 말씀을 오해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대로 듣는 경향이 있습니다. 본문의 발람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대로 들은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오해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못 파악합니다. 그 이유가 듣고 싶은 대로 듣기 때문입니다. 차분하게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들으려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오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약 1:14-15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사람이 욕심에 사로잡히면 죄를 짓게 되고 죄를 짓게 되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 시작이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욕심이 그렇습니다. 물고기가 미끼가 탐이 나서 덥석 물고 나면 물 밖으로 끌려 나오게 되고 결국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여기저기 미끼가 널려있습니다. 자칫 덥석 그 미끼를 물기 쉽습니다. 물면 끌려가는 것입니다. 욕심에 사로잡혀 죄를 짓게 되고, 그러다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미끼를 물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욕심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인가 욕심나는 것이 나타나면 긴장해야 합니다. 그것이 미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차분하게 먹이인지 미끼인지를 확인하려고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으로 나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도 잘 모르겠거든 멘토나 기도 동역자들과 상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담이 인류 최초로 죄를 짓게 된 것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싶은 욕심이 발단이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우리 주변에도 따먹고 싶은 열매가 널려있습니다.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흔들리고 욕심이 생겨납니다. 그것이 욕심인 줄 알아야 하고, 그 욕심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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