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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 막 5:30-34

작성자
길윤구
작성일
2026-08-05 11:20
조회
78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막 5:30-34

2024.06.16. 강북꽃동산교회

12년 전에 몸에 이상에 생겨서 병원을 찾았지만 낫지도 않고, 증세가 더 악화되어,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며 용하다는 의사를 다 만나보았지만, 아무런 효험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 과정에서 있는 재산도 다 허비하게 되었고, 지금은 아무런 치료도 못 하고 손 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혈루증을 앓은 한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혈루증은 헬라어로 하이마레오 인데, 피의 유출이라는 뜻입니다. 보통 여인은 월경 때에만 하혈을 하게 되는데, 이 병은 월경과 무관하게 불규칙하게 출혈이 되거나 어떤 상처로 계속 피가 출혈되는데 지혈이 안 되는 병입니다.

성경이 이름이 밝히지 않은 어떤 집에 여인은 12년 전부터 혈루증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낳지 않았고 이 의사 저 의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이야기하느냐 정말 괴로움을 많이 받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여인의 상태를 26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많은 의사에게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도 없고 도리어 더 중하다”라고 했습니다.

혈루병에 문제는 율법적로 부정한 병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런 병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자체가 어렵습니다. 문둥병자와 비슷한 처지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레위기 15장》에서 그 사람이 가는 곳, 만지는 것은 모두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지금 여인은 육적으로 정신적으로 매우 괴로운 상태입니다. 그 병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자존심, 자존감, 우울증, 경제적 손실, 그리고 희망 상실로 오는 괴로움 그 자체입니다.

본문 26절은 그 여인의 현재 상태를 잘 말해 줍니다.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다”라고 했습니다.

성경에 그의 가족(부모 남편 자녀)과 인척 관계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서 누구하고 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앞으로도 이 여인은 외롭고 더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인에게 기쁨의 희망은 없는 것입니까?

있습니다. 27절입니다. (막 5:27, 개정) “예수의 소문을 듣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여인에게 한 소문이 들렸는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는 순간 몸에 변화를 느겼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겼습니다. 삶의 의욕이 생겼습니다.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소문인데 그렇습니까? 혹시 예수님이 혈루증을 잘 고치시는 전문가라는 소문을 들은 걸까요? 예수님에게 혈루병을 고쳐준다는 약속을 받은 것입니까?

성경에는 예수께서 여인의 병을 고쳐 준다는 어떤 약속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요? 그가 들은 소문이 어떤 것이기에 괴로운 여인을 이처럼 기쁘게 하는 걸까요?

그래서 마가복음 5장까지 오면서 여인이 기뻐할 만한 예수의 소문이 무엇인지 살펴봤습니다. 혹시 예수께서 여인처럼 혈루증을 고친 사례가 있는지 자세히 봤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혈루증을 고쳤다는 기록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인은 어떤 소문을 들었을까요?

그것은 추측인데 예수님은 어떤 병이든지 다 고치실 수 있다는 소문이 아닐까요? 자기와 상황에 똑같은 병은 아니지만, 자기보다 더 심한 병을 고친 것을 보아 예수님은 못 고치시는 병이 없으실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28절에 보면 그 여인의 현재 마음 생태를 볼 수 있는 구절 있습니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놓치면 안 됩니다.
“예수님 옷에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절입니다. 이거 믿음이 아닌가요?

그렇다면 여인의 마음에 이 믿음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무슨 약을 쓰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옷에 손만 대어도 병이 낳는다는 말입니까? 그가 언제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습니까? 그것도 아니고 오늘 처음 주 앞에 처음 나와서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말입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여인이 가지고 있는 이 믿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성경을 보고 다시 보아도 이 여인이 어디서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것 밖에 못 찾았습니다. 27절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라는 구절입니다.

그러니까 여인은 예수의 소문을 듣는 순간부터 달라졌습니다. 그것이 은혜이고 믿음이고 행복의 시작이고 구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가 들은 예수의 소문은 천국에 가는 첫 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소문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있었던 성령이 말하게 하시는 기도는 예수 소문 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에 한국교회에 예수 믿은 사람 말 잘한다는 것이 상식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를 잘 믿고 성령 충만하면 말 잘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이용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를 말하고 예수를 믿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소문은 곧 복음입니다. 복음은 그 자체에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그 자체가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의 주체는 예수님 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말 자체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희망을 주기에 넉넉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을 듣는 것은 은혜입니다. 예수라는 말은 듣는 것은 이 땅에 듣는 최고의 은혜입니다. 예수시라는 말을 듣는 것만 가지고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 소리만 들어도 하나님께 나올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0: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이라고 했고 마가복음 2: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고 했고, 마가복음 7: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아래 엎드리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 앞에 나온 것은 알게 모르게 우리 귀에 예수의 소문이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먼저 예수의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것을 기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받은 일로 예수의 소문을 내시기 바랍니다. 구원받고 축복받은 일로 예수의 소문을 내시기 바랍니다. 소문을 내야 하는 이유는 구원받을 사람들이 주께로 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의 소문을 들은 여인은 예수님이 계시는 현장으로 나왔습니다.
혈루증을 앓고 있는 사람은 원래 이런 장소에 나오면 안 됩니다. 그것은 율법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여인을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고 있어 이런 장소에 나올 수 없고 용기와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여인이 이 공적인 장소에 나왔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힘이 아니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가 예수님께로 왔을 때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시는 현장은 늘 그랬듯이 오늘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여인은 사람들을 뚫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의기 소침한 여인이 많은 사람들의 속으로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을 만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이 여인이 왜 이러는 것입니까? 그러나 우리는 위에서 여인이 왜 그러는지 위에서 이미 발견했습니다. 그 여인의 귀에는 예수(복음)이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 있는 뜨거운 믿음은 그가 예수님께 나가 주의 옷을 만지는 것은 못 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바쁘신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하고, 특별한 안수 기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그의 마음은 예수님의 옷을 만지기에 넉넉했습니다.

그래서 무리들 속을 파고들어 갔습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예수님 가까이 접근해서 예수님 옷자락을 만지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떨려서 아주 살짝 만졌습니다. 그래서 이를 눈치챌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여인의 몸에 놀라운 변화가 있었습니다. 소름 돋는 것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여인은 자신의 몸에 혈루의 근원이 말랐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29절) 놀랍게도 병이 나은 것입니다. 신기하게 이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본인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안수 기도를 하신 것이나 선포하신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여인을 만진 것도 아니고, 여인이 예수님을 만진 것인데, 그것도 예수님이 알 수 없도록 옷에 살짝 손을 댄 것뿐인데 병이 나은 것입니다. 이는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그런데 여인에게 순간 고민이 생겼습니다.
다음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이야기 해야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냥 가면 되는 것입니까? 이제라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도 모르는 일인데 말입니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여인이 예수님께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 피해를 준것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조금도 피곤하게 해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주변에 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때 여인은 나름대로 이런 판단을 했습니다.
이 일은 참으로 좋은 일이고, 행복한 일이지만, 아무도 모르게 고침도 받았고 예수님이 나에게 수고하신 것이 없기때문에 그냥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뒤로 물러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님께서 가시던 걸음을 멈추시더니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여인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마치 도적질하다가 들킨 기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히 제자들이 나서서 막아 주었습니다. “선생님 무리가 이렇게 에워싸는 것을 보시면서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말씀하십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은 물러서지 않으시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니다 누가 내게 손을 댓다. 그래서 내게서 능력이 나갔다”는 것입니다.

그때 너무도 놀란 여자는 부들부들 떨면서 예수님 앞에 와서 엎드려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주여 제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댓습니다. 사실은 제가 12년동안 혈루증이 있는데 아무도 못 고치지만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순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 예수님께 피해 드리지 않으려고 살짝 만졌는데, 저의 무례함을 용서해 주세요.”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요?
이 여인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은 자신의 옷에 손을 댄 여자를 왜 찾으신 걸까요?

우리는 그 이유를 33절에서 찾았습니다.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라고 했습니다.

여자는 자신에게 있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와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병이 치료되어서 기쁘기보다는 왠지 두렵고 죄를 지은 것 같고 도적질을 한 것 같은 것입니다.

12년 동안 앓았던 병을 치유 받았습니다. 그런데 왜 두려운 것입니까? 이유는 딱하나 예수님을 몰래 만졌다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도적질했다는 느낌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치료받고도 행복하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인이 예수님의 옷을 몰래 만져 고침을 받았다면 도적질을 한 것입니까? 지금 무엇인가는 치유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치유도 도적질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믿음도 구원도 도적질할 수 있겠네요? 그러면 예수님과는 관계없이 내가 만지고 싶은 대로 만지고, 무엇인가 생각하고 빌면 그것이 내게 오는 것입니까? 병 고치는 것이 그렇다면 믿음이 그렇고 구원도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여기에 사람들의 큰 오류가 있습니다.

만일 오늘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지 않고 그냥 간다면 이런 오해는 얼마든지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주님이 여인을 꼭 만나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은혜나 믿음이나 치유, 구원 천국은 내가 빌고, 내가 만져서 오는 것이 아니고, 그 주체이신 하나님이 주셔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에게서 능력이 나갔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주님은 여인이 자기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고 여인이 손을 댓을 때 치유를 선포하셨습니다. 즉, “네가 나를 만질 때 내가 너를 치유를 했다”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인이나 우리는 이 사실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이 행복합니다. 내가 땅을 파고 땀을 흘려서 이룬 것이 아니고, 내가 주님께 와서 크던, 작던 수고를 해서 치료를 받은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소문이 내 마음을 감동해서 주 앞으로 오게 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몸에 손을 대게 했습니다. 그때 성령 하나님은 순간 그를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여인은 이 사실을 꼭 알고 가야 합니다.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결코, 주께서 그에게 사례를 요구하시려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꾸중하시려고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인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한 더 이상 예수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믿음이나, 구원이나, 치유나, 축복이나 내가 같고 싶다고 갖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두가 선물이기 때문에 줄 분이 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만져서 치유한 것이 아니라, 여인이 주님을 만질 때 주님이 그에게 치유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여인을 찾으신 또 한 가지 이유는 34절에 찾았습니다.
34절입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여인에게 선포하는 내용에 관심을 갖아야 합니다. 주님은 여인에게 두 가지를 선포했습니다. 하나는 구원이고 하나는 병에서 건강해지는 선포입니다.

바로 여기에 고침 받은 사람이 주님을 다시 먼저 만나야 할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고침 받고 몰래 집으로 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구원의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치유와 함께 구원을 주시기를 즐겨 하셨습니다. 그러나 치유를 해 주셨다고 다 구원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치유를 받은 후 주님의 당부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들에게 구원을 선포해 주셨습니다.

만일 주님이 여인을 만나지 않은 상태에서 여인이 그냥 집으로 간다면 여인에게 구원의 은총이 있었을까요? 또 한 그의 믿음은 온전한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에게 아주 이상한 믿음이 자리 잡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부터는 예수님께 나오지 않아도 되고 예수님의 사진이나 동상을 앞에 두고 만진다든가 절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오늘에도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어느 특별한 기도원에서 나오는 물을 먹어야 병이 낫고, 누가 어디에 손을 대고 기도해야 낳고, 병을 고침 받으려면 어느 기도원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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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날 그의 귀에 들인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은 그를 새롭게 했습니다.‘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날 수 있다.’는 믿음까지 주었습니다. 그는 그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와 예수님 옷에 손을 살짝 대었는데 병이 나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가 병이 나아서 행복해야 하는데 그에게는 두려움이 먼저 찾아 왔습니다. 그때 주님이 그를 불러서 두려움을 없애 주시고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들음의 종교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성령의 능력에 실어 절망과 실패로 괴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 보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순종하여 예수의 기쁜 소식을 실어날으는 복음의 자동차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말하는 자가 없이는 듣는 자도 없고 듣는 자가 없으니 믿음도 없고 믿음이 없기에 구원의 역사도 없다.(롬 10:14)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은 성령의 능력이 있는 예수의 이름이 필요합니다.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늘에서 이루어지고, 그 이름으로 말하면 사람이 감동하고, 그 이름으로 말하면 귀신도 물러가고 그 이름으로 말하면 병자고 고침받는 그런 능력 있는 이름말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그 이름의 능력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에서 일어나는 소문이 퍼져 나갈 때 병자가 오고 죄인들이 오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 와서 치료받고 해결 받는 우리의 교회와 삶의 현장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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