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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죄 사함의 은혜 | 히 9:27-28

작성자
gfgc
작성일
2025-09-18 21:39
조회
145
죄 사함의 은혜

히 9:27-28

2025.08.07. 강북꽃동산교회
제가 접하는 뉴스는 여러분이 전하는 것보다 2-3일 정도 빠르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가 접하고 나서 이틀 정도 지나면 텔레비젼 뉴스에 나오더라구요. 아마 그런 차이는 팩트체크를 하는 기간, 뉴스를 만드는 시간이 포함해서 그럴 것입니다.

방송에 나왔는지 모르겠는데 저는 이런 뉴스도 접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하고 부엌 아궁에서서 불살라 버렸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느냐고 했더니 좋은데 가라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요즘 날이 갈수록 세상이 악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즘 뉴스에는 묻지마폭행, 살인사건, 폭력사건은 매일 등장합니다. 왜 날이 갈수록 세상이 점점 악해지는 걸까요? 악한 사람들이 많아서, 정치를 잘못해서, 교육이 잘못돼서. 다양한 이유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한마디로 죄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가 세상을 악하게 했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악해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죄를 지어서 악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한마디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롬 5: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면 죄가 들어오면 악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죄가 들어오면 그 사람이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음란해지고 욕을 하고 거칠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통제하지 못하면 일을 저지르고 사회적 기준을 초과하면 법적인 제제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죄의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죄는 악합니다. 결과가 비참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왜 악한지 정리해 보면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죄 때문인데, 죄를 잘 모르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즘, 성추행은 죄도 아니라면서요. 어제 뉴스입니다. 음주 운전도 죄도 아니라면서요~ 욕은 죄도 아니라면서 욕을 잘해서 멋있어 보이고 강해 보인다면서요.

세상에 악한 또 하나는 이유는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후세계, 죽음이후 세계를 말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지만 가장 알기 힘든 것이 있다면, 사후세계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누구나 한번은 가야 할 곳이지만, 그곳에 대해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죽음학학이라고 하는데 거기서 연구대상으로 삼는 것은 주로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임사체험자들의 증언입니다.
의학적으로 죽었다는 판정을 받은 뒤 다시 살아난 사람들 가운데, 사후세계를 경험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증언을 기본 자료로 해서 사후세계를 학문적으로 설명해 보려고 시도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들의 이야기가 서로 많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영매라는 사람들의 주장입니다.(죽은 자들과 대화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죽은 자들과 대화를 한다면서 나름대로 사후세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매들마다 하는 이야기가 서로 다 다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죽음학에서 이런 자료들을 기초로 설명하는 죽음과 사후세계에 대한 결론은 이렇습니다. “죽음과 사후세계는 결코 두려워할 곳이 아니다. 그러니 차분하게 죽음을 맞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에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사후세계의 심판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죽음학의 설명을 듣다 보면 은연중에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을 보면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이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사람들의 주장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는 사실상 죽은 것이 아닌데, 죽었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죽었더라도 죽음의 문턱까지만 갔다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사후세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심판이 없다는 식의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들이 소설, 영화, 드라마, 학문이라는 이름으로까지 소개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저는 그 뒤에 사탄의 간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 죽음 뒤에 심판이 없다고 속이려 하는 것입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사탄이 선악과를 따먹어도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속인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사탄이 심판이 없다고 속이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죄를 짓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죄를 지으면서도 머뭇거리는 이유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심판에 대한 두려움마저 없애줌으로써 마음 놓고 죄를 짓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사단에 속임에 넘어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를 멀리하셔야 합니다. 이유는 죄 속에 사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없다는 말에 속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화되면 안 됩니다.

주님께서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했습니까?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심판받고 영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죄 사함을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영생을 누리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죄는 이렇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본문을 2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말씀하는 죄란 무엇일까요?
창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원죄라고 말씀합니다. 이 죄가 모든 죄의 출발점이고, 모든 죄의 뿌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건을 보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죄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죄의 시작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창 2:17에서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3:4를 보면 뱀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안타깝게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사탄의 말을 따랐습니다. 이 불신에서 죄가 싹이 트게 된 것입니다.

죄의 완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3:6을 보면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것입니다. 이 불순종으로 죄가 완성된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못해 믿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해서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뒤에 겪게 된 일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창 3:8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나무사이에 숨은지라”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뒤에 하나님이 두려워 피했다는 것입니다.

죄 짓고 난 뒤 제일 먼저 일어난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입니다. 죄 짓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사람들이 죄 짓고 난 뒤에 하나님을 피해 숨어야 했습니다. 바로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끊어놓은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영적인 죽음이라고 부릅니다.

2) 다음으로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는 것입니다.
창 3:1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아담과 하와가 사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결국 죽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3) 죄 짓고 난 뒤에 일어난 또 다른 변화는 삶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그 자체가 고통이 될 것이고, 결국 그 삶이 끝이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죄짓고 난 뒤 육체적인 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4} 그리고 죽음 뒤 심판을 받고 영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겠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 이후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놓아서 사람을 영적 죽음 상태가 되게 만듭니다.
마치 고아가 부모의 돌보심을 받지 못한 채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것처럼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게 되고 죽은 뒤에 저지른 죄 때문에 심판을 받아 영원 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죄는 살아서도 평안을 모른 채 살고, 죽어서도 영원 형벌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 죄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의 무게를 무겁게 느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느낄 수 있습니까?

본문 2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을 희생제물로 드리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말할 수 없는 큰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다는 것인데 어떻게 오시게 되셨을까요? 사람들이 오셔달라고 청해서였을까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배척했습니다.
오셨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했고, 그 말씀을 철저하게 어겨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 왜 오셨을까요?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모릅니다.
우리에게 주님께서 오셔야 할 조건과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야 할 조건과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일방적인 은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엡 2:8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것은 결코 우리의 노력이나 자격으로 얻게 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선물로 우리에게 주셔서 받게 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예루살렘으로 압송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에서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을 섰었고, 특히 스데반이 순교하는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기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바울이 누구시냐고 물었을 때 주님께서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바울은 두려워서 떨었을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 그야말로 큰 벌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뜻밖에도 자신을 주님의 일꾼으로 세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랐을까요?

이것이 죄 사함의 은혜요. 그 은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아무런 자격도 없고 공로도 없는데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히려 큰 죄를 저질러서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인데 은혜를 베푸십니다. 일방적으로 택하시고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이 일방적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본문에 또 다른 은혜가 있습니다.
“죄를 없이 하시려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죄 사함의 은혜를 베푸시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인 줄을 모르고 삽니다. 자신이 어떤 죄를 저질렀고, 그 죄가 지금 어떻게 자신을 종 노릇하게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인이라고 하면 펄쩍뜁니다. 그리고 죄 사함의 은혜에 대해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눅 5: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이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난 뒤에 보인 반응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게 되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딤전 1:15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자신이 죄인 중의 괴수라고까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 사함의 은혜는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 그것도 보통 죄인이 아니라 큰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요 16:8 말씀처럼 성령께서 오늘도 우리 안에서 우리의 죄를 책망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주 앞에 나와 참회하게 됩니다. 이 또한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 내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이것을 고백하고 나면, 주님께서 죄를 사해주십니다. 지었던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나를 짓누르던 죄의 짐을 털어버릴 수 있게 됩니다. 죄로부터 자유를 얻고 참된 기쁨을 얻데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죄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죄가 사라졌기 때문에 하나님 앞으로 더 가까이 나갈 수 있게 되었고, 거리낌 없이 하나님과 영적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영적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우리의 일상생활도 달라집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도 떨쳐버릴 수 있습니다. 평안과 기쁨을 맛보며 살 수 있게 됩니다. 영생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것을 이미 이 땅에서 맛보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저 천국을 소망하며 살게 됩니다. 심판이 두렵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누리는 은혜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기독교 신앙은 죄 사함의 은혜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고백의 핵심이 내가 죄인이었지만, 예수 믿고 죄 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죄 문제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죄인이었으나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죄 사함받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깨닫고 고백하실 수 있기 바랍니다. 오늘도 죄와 싸워 승리하는 능력 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적용~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한 이래로 지금은 가장 은혜가 풍성한 시대인 것은 지금이 바로 성령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시대란! 성령이 세상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시대를 말합니다. 하나님이 성령을 이세상에 보내주신 것은 시대가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악한 시대는 예수를 구주로 믿었어도 그 믿음을 감당하기 여러운 시대를 말합니다. 그렇 때 성령은 강력한 은혜로 악을 분별하게 하고 죄가 우리으ㅟ 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을 분별하게 하고 세상을 넌걱히 이기게 합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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