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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나는 벌레요 | 시 22:1-8

작성자
gfgc
작성일
2025-09-03 15:33
조회
243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시 22:1-8(구 816)

2019.03.10. 강북꽃동산교회

요즘 우리 주변에 우울증을 앓고 있는 분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학회 보고에 의하면 우울증이 그렇게 위험하다고 하네요. 얼마나 위험하면 암보다 더 위험하고 치매보다도 위험하다고 합니다.

치매는 주로 연세 드신 분들에게서 나타나는데, 우울증은 어린아이에게도 나타난다고 합니다. 치매는 증상이 보이는데 우울증은 비교적 조용해 증상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번 행동하면 큰일을 내는 병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가장 무서운 병을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우울증이 그렇게 무서운 것은 우리 몸 전체에 다양한 각도에서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고통을 줍니다. 우울증은 사람 안에 있는 기쁨을 몰아내고, 그 마음에 슬픔과 좌절감을 주고, 불행감과 죄책감을 주고, 허무감을 주어 자존감을 무너트립니다. 그래서 행복해야 할 마음에 큰 고통을 줍니다.

생각에 고통을 줍니다. 자신을 무능하다고 생각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더 나가서 다른 사람과 세상은 너무도 자신에게 무정하고 적대적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 비정상적인 생각만 하게 되지요. 아니 정상적인 생각을 할 수 없게 합니다.

몸에 고통을 줍니다. 육신이 마음과 생각에 지배를 받게 되면 소화불량이 나타나고, 두통에 시달리게 되고 식욕도 저하되며, 이유 없이 이곳저곳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행동을 지배합니다. 을 잘 잘 수가 없습니다. 사회적 활동을 회피하고 위축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늘 불안하고, 때로는 자학적 행동을 합니다. 결국, 극단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이런 우울증은 왜 오느냐는 것입니까?
학자들은 그 이유를 고난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많은 일들을 겪게 되는데 그중에 어떤 일들은 우리를 기쁘고 행복하게 주지만, 어떤 일들은 우리를 힘들게 만들기도 하지요.

그때 마음이 무엇엔가 무겁게 짓눌리는 것을 느끼게 되는데, 그러면서 마음이 우울해집니다. 이 때 이런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하게 되면, 이 우울한 기분이 우리 마음속에 계속 남아있게 되고, 그것이 감정 전체를 지배하게 되이요. 더 나아가 몸과 마음과 생각과 행동에 장애를 준다고 합니다.

심할 경우 ‘사망의 골짜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견디기 힘든 마음의 시련을 겪기도 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우울증을 마음의 병이라고도 합니다.

문제는 세상에는 마음을 치료하는 병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정신을 치료하는 병원도 있고 몸을 치료하는 병원은 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치료하는 병원은 없습니다.

지금 병원에서 우울증을 치료하기는 하는데, 사실은 약물로 예전 있었던 일을 잊도록 하는 정신적 치료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대단한 효과는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치료되지 못했기 때문에 온전한 치료가 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를 들어보시면 우울증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곳과 해결 가능성을 발견할 것입니다.

우울증은 진단이 중요합니다. 진단은 그의 말에 있습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우울증이 있는지 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사람이 한 말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진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이 사람은 성도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입니다. 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1)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이 사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과 절망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고을 때, 소리치고 기도도 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자 신음소리처럼 그런 말을 했던 것입니다. 즉, 그 마음의 고통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6)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생각해 보니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기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벌레 같은 존재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누구도 그를 벌레라고 하거나 백성의 조롱거리라고 말한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혼자 저러는 것입니다.

이런 말도 했습니다.“나는 물 같아서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14)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1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들이 나를 워어쌌으며”(16) “내 생명을 건지소서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20)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보니 어마어마한 환란을 당하는가 봅니다. 그 환란은 생명을 위협하는 환란이고 그 환란을 주는 존재는 개와 같은 존재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개의 세력에서 건져 달라고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기도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부르짖었지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으시고 잠잠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백자는 지금 사람들을 믿지 못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다 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말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 우울증 증상이 있습니까? 있는 것 같지요? 제가 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람 누구입니까?
그는 다름아닌 성경에서 유명한 우리가 잘 아는 이스라엘에 2대 왕인 다윗입니다. 다윗은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왕으로 성경과 오고 오는 사람들이 그를 성왕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다윗을 역대 왕 중에 최고의 왕으로 존경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조상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성경은 수천 년 전부터 다윗의 혈통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에게 왕이 되는 기름을 부을 때 주의 신이 그에게 감동했고 하나님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맘에 합한자라, 내가 그를 통해 내 뜻을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윗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신앙적인 말이 한마디도 없습니다. 다윗이 이상해 졌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셨답니다. 자신이 나는 벌레요, 비방거리요, 조롱거리”라니 이게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다윗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우선 그의 고백을 들어보니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지 짐작은 하고도 남습니다.

우리가 아는 데로 다윗은 이새의 8형제 중에 막내입니다. 막내로서 형들의 그림자에 늘 가려 있었지만, 이스라엘에 2대 왕을 세우는 면접날 그는 형들이 내팽개친 양들을 들에서 돌보느냐 면접을 볼 기회조차도 박탈당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왕으로 기름을 부음을 받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좋았습니다.

그에게 불행이 찾아온 것은 이스라엘을 한입에 삼키려는 블레셋의 장수 골리앗을 넘어뜨린 이후부터였습니다. 전쟁 중에 아무도 할 수 없었던 적의 장수 골리앗의 목을 가지고 왔을 때 그는 영웅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게 되어서 왕이 좋아했습니다. 왕의 아들도 좋아했습니다. 백성들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후 남이 모르는 큰 고통에 바다로 빠져가고 있었습니다. 왕이 자기보다 백성들이 다윗을 더 좋아하는 것을 보고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고통속에서 나온 글입니다. 글 속에 등장하는 개는 사울 왕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글이 다윗의 글이라는 것이 자꾸 믿어지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이상의 내용을 보면 다윗에게 문제가 있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다윗은 지금 오늘 우리들의 표현대로라면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다윗이 겪고 있는 우울증 증세에는 일반적인 우울증 증세에서 볼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소연하는 대상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그의 아버지도 형도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9~10절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어머니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다윗의 이런 증세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우리는 이런 상황을 볼 때 먼저 영적인 상황을 보아야 합니다.

1-2절을 보면, 이렇게 절규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멀리하시고, 돕지 않으시고, 응답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6절에서 다윗은 자신을 벌레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는 심각한 질병이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누가 그에게 벌레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그를 언제 버렸습니까? 환란 날에 언제 안 도왔습니까?

사실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고, 그를 만나 기뻐하셨습니다. (행 13:22)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은 조금도 그를 벌레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스스로 벌레라고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다윗은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까? 왜 그렇습니까? 무엇이 그의 생각이 그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의 생각을 지배했습니까?

악한 영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은 영적인 치료를 해야 합니다. 여기에 우울증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면 자칫 믿음의 뿌리까지 심각하게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마음에서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울증을 극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울증을 치유하지 못하면 생각, 마음, 건강에서 믿음까지 흔들려 버릴 수가 있습니다. 자칫 하나님 품을 떠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우울증은 극복해야 합니다. 그것도 빨리 떨쳐버려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병이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며 구원의 문제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우울증이 오기 전에 우리는 말씀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떻게 우울증을 극복했습니까?

19절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했고, 21절에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다윗은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있을 때,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리신 것 같고, 자신을 멀리하신 것 같고,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것 같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상황 속에서도, 힘겹지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에 우울증을 이기고 고통에서 이기는 답이 있습니다. 이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가지는 놀라운 특권이자 은혜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선진들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그런데 여러분! 다윗처럼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있으면 이런 기도 조차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어떻게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윗에게 이런 은혜가 있습니까?

그것은 전에 다윗에 들에서 양들을 돌볼 때,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를 가까이했을 때,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 뿌려주신 말씀의 씨앗 때문입니다. 그 말씀의 씨앗은 어느덧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라났고 오늘 위기 속에서 “여호와여 멀리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열심히 말씀을 듣고, 읽고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세상을 살다 보면, 나이가 들고 그래서 움직이기 어렵고, 세상을 살다 보면 원치않는 고난을 당하게 되는데, 그때 우리가 우리의 이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부르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를 대비해서 지금 마음에 말씀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술에는 기도의 근육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이가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우울증이나 치매가 온다 하더라도 예쁜 행동과 예쁜 말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다윗이 이렇게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22~23은 그가 영이 회복된 다음에 부른 노래입니다.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찌어다.” 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마디로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입니다.

힘들지만 다윗이 기도했더니 어느덧 흔들리던 믿음이 바로 세워졌고, 영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권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그를 찬송하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마음 깊이 새겨 두어야 할 것은 다윗이 기도를 통해 어느 정도로 회복되었는 아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내용은 시편 22편입니다. 그런데 22절 이후 변하기 시작하더니 시편 23편은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습니다. 함께 일겠습니다.

시 23:1~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이것이 나는 벌레라고 했던 사람의 고백입니다.

적용=

성경에는 심각한 우울증이 걸린 사람들이 이야기가 다윗 말고도 또 나옵니다.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욥입니다. 엘리야입니다. 이들 모두 성경에 등장하는 큰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 우울증 증상에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을 비관하고 하나님께 죽여달라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들 모두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외면하시지 않으시고 모두 치료해 주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우울증의 빠지게 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자칫 믿음에 근간을 흔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나무가 듣든히 서 있으면 그 믿음으로 하나님을 좋으신 분으로 신뢰하고 그분께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지금은 말씀의 씨앗을 뿌릴 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나무를 든든하게 세울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더욱 가까이 나올 때입니다. 주께서 여러분의 손을 잡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붙잡아 주신다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이 소생됨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마음에 심겨진 말씀의 씨앗 때문입니다. 말씀의 씨앗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변함이 없으신 분이심을 믿는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우리 마음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을 잘 감당하셔서 악하고 험난한 세상에서 이기고 승리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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