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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금송아지 | 출 32:1-6

작성자
gfgc
작성일
2025-07-26 12:05
조회
559
금송아지

출 32:1-6

2025.07.13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요즘 우리교회는 주일 오후에 출애굽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애굽에 보내셔서 고통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끌어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그런 사명을 주실 때 모세의 손에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려주셨습니다. 저들은 그 지팡이를 들고 바로에게 가서 여러 가지 이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결과 그 악한 바로가 결국 손을 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 주었습니다.

본문은 그렇게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가 지금은 시내산 아래 진을 치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당황스런 사건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론에게 몰려와 보이는 신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론은 조금도 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모세가 바로앞에 설때 그도 늘 지팡이를 들고 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지팡이도 유명하지만 아론의 지팡이도 유명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처럼 모셔왔던 법궤속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보관될 정도였습니다.

그날 아론은 백성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2절입니다.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손에 손에 금덩어리를 들고 왔습니다. 그날 모여진 금덩어리의 양을 짐작 할 수 있는 것은 저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그들이 원하는 만큼 애굽 사람에게서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아론은 망설임 없이 송아지 본을 만들라고 했고 불을 피우라고 그 불속에 백성들이 자기고 온 금을 녹여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을 시켜서 정교하게 조작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은 백성들을 모아놓고 완성된 송아지 형상을 가르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다”라고 했습니다.(4절)

여러분! 좀 이상하다는 생각에 없으신지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낸 신이라니요? 그것도 아론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 아닙니까?

무슨 일입니까?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광야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지 40일이 되도록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에게 몰려가서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론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서, 백성들이 모아온 금붙이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우상 제사처럼 큰 축제를 벌였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저들이 금으로 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그것은 우상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인 아론이 주도해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물론 백성들이 신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아론은 저들의 요구에 따라 신을 만들었을 뿐입니다. 아론의 생각에 금으로 만든 송아지가 우상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다음 성경에 있습니다.
(출 32:7, 개정)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출 32:10, 개정) “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저들의 모습을 보시고 대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시겠고, 대신 모세의 자손들로 다시 하나님의 백성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급히 하나님께 중보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일단 진멸하시겠다는 뜻은 돌이키셨습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이 광경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게 됐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십계명 두 돌 판을 내던져서 깨뜨려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금송아지를 불살라 부수고, 가루로 부셔서 물에 뿌리고는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날 이 금송아지 숭배에 가담자를 처단하라고 명하자, 3,000명가량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출애굽 이후 어마한 죽음이죠? 하나님께서 대노하셔서 자칫 출애굽 자체가 무산될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근본적인 질문을 갖게 됩니다.
도대체 이스라엘은 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됐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들은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내리신 10가지 재앙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 홍해가 갈라지고, 자기들은 걸어서 그 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지금 매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먹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하지 않을까요? 저들이 애굽에서 나온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기위해서 아니였습니까? 모세와 아론은 바로에 설 때마다 워라고 했습니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과야에서 날흘 섬길 것이니라” 그런데 우상을 만들다니 무슨 일입니까? 그것도 아론이 주도하에 말입니다.

이 일은 모세가 없을 때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에 진을 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셨습니다. 십계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 오른 지 40일이 되도록 내려오지 않자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론에게 몰려가서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아론이 그들의 요구를 들어서, 백성들이 모아온 금붙이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치 우상제사처럼 큰 축제를 벌였습니다.

이상하고 신기해도 이렇게 이상하고 신기할 수 있습니까?
모세가 자리를 비우자 사람들은 불안했고, 심지어 모세가 자기들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말까지 했습니다. 어디서 많이 보던 형태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마귀가 잘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마귀는 모세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백성들에게 접근해서 불안감을 조성했고 지도자를 불신하게 만들었습니다. 금송아지의 탄생은 그런 결과 물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귀의 이런 전략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광야 가장 좋은 곳으로 인도하여 쉬게 하고 모세를 산 위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오늘 하나님께서 돌에 십계명을 새겨주시는 날입니다. 십계명에는 우상을 말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문구를 보기도 전에 이미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론도 거기에 해당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합리화 할 수 있는 것은 십계명을 받기 전에 우상을 나들었기 때문에 죄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단도 그것을 이용한 것입니다.

지금도 사단은 그런 상황을 찾아다니고 그런 것을 이용해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모세를 비롯한 영적 지도하는 시대에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제자학교에서 배우는 성경 공부의 목적은 우리의 신앙을 든든하고 좋은 지도자를 만드는 것이지만 긍극적은 목적은 사단에 유혹에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성경을 중심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어떤 상황이 와도 사단에게 유혹되지 않은 주의 성도가 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객관적으로 이스라엘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배반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처럼 섬기려고 했을까요?

그것이 바로 유혹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믿으려는 유혹입니다.

사실 이런 유혹은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미명하에 사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의지합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것들을 하나님처럼 의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일종의 금송아지의 유혹입니다.

그렇습니다. 출애굽 초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빠져들었던 금송아지 유혹은 오랜 세월 동안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뜨려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강력하게 손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유혹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넘어지게 됐는지를 살펴보면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성전이 없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하는 법도 모른 채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아직 율법도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오래 전 아브라함 때부터 자기 조상들이 하나님을 섬겨왔다는 이야기를 입에서 입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신앙은 아직 전해오는 이야기를 믿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모세가 나타났습니다. 모세가 하는 말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하시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기들이 듣도 보도 못했던 놀라운 이적들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었고, 구름기둥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이 모세가 찾아온 뒤에 생긴 일입니다. 물론 모세가 하나님 이야기를 하지만 자기들은 그 하나님을 눈으로 본 일이 없고, 그분의 소리를 들은 일이 없습니다. 다 모세를 통해서 체험하고 들을 뿐입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의 대리자입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기 보다는 모세를 의지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사라졌습니다.
더 이상 의지할 대상이 없어진 것입니다. 불안해졌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해 지면서 두려움이 밀려들었습니다. 모세를 의지하고 여기까지 따라왔지만 모세가 없어진 뒤 영적인 틈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금송아지 유혹은 바로 이런 영적인 틈을 타고 밀려들어 왔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사람을 의지하는 이런 영적인 틈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게 됩니다. 내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이 생각이 나야 합니다.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이 아니고, 누군가가 생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이때 영적인 틈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사람을 의지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기보다 사람의 도움을 바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서 부르셔서 말씀을 받으러 산에 올라갔는데, 언제 내려올 것이라는 말이 없었습니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40일이 넘었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하루면 올라갔다 내려올 수 있는 산에 올라가 이렇게 오래 돌아오지 않으니, 무슨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모세가 자기들을 버렸거나, 아니면 무슨 변을 당한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유고를 단정하고, 다음 행동을 논의하게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자기들이 보고 체험해 온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우상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자기들의 신이라고 섬기고 있는 것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자기들도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을 찾아가서 애굽 사람들처럼 눈에 보이는 신을 만들어 달라고 청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 믿음의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입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그 무엇인가를 믿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자 한 것입니다.

이탈리아의 튜린 의과대학교 파브리치오 베네데티 박사는 기발한 실험을 했습니다. 통증으로 힘들어 하는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진통제 주사를 놓았습니다. 첫 번째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진통제를 주사하는 것을 보게 했습니다. 이에 비해 두 번째 집단의 환자들에게는 환자 모르게 진통제를 투여했습니다. 그리고 진통효과를 비교해 보았습니다.

놀랍게도 진통효과는 크게 차이가 났습니다. 진통제 투여를 눈으로 본 환자들이 보지 못한 환자들에 비해 진통효과가 훨씬 크게 나타났습니다. 베네데티 박사는 이 차이를 믿음의 차이라고 설명합니다. 진통제 투여를 본 사람들은 진통효과가 있을 것을 믿었고, 진통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그 믿음이 신체에 영향을 미쳐서, 실제로 진통효과의 차이를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서양속담에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본 것을 믿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믿음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종교가 눈에 보이는 우상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은 이런 일반적인 믿음의 속성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요 20:29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예수의 사람들은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기독교의 믿음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 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 우리 기독교 신앙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 안에 보이는 무엇인가를 믿고자 하는 유혹이 있습니다. 이것이 금송아지의 유혹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아론이 백성들의 요구를 선선히 들어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왔던 사람입니다. 모세와 함께 바로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그 놀라운 재앙의 이적을 눈으로 보았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모세와 함께 듣고 따랐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이 인도할 신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했을 때, 그것이 잘못된 요구라는 점을 말했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적어도 자기는 만들 수 없다고 거절해야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요구를 받자마자 바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기 위한 물품을 가져오라 명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가져온 금붙이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금송아지 우상을 지금까지 자기들을 애굽에서 인도해온 신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축제를 열어서 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는 것을 공식화하고 합법화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아론은 금송아지 우상 제작과 숭배의 선봉에 서게 된 것입니다.

신 9:20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진노하사 그를 멸하려 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이런 짓을 저지른 아론을 보시고 분노하셨고 죽이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아론은 왜 이렇게 한 것일까요? 출 32:21-24를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 백성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당신이 그들을 큰 죄에 빠지게 하였느냐? 아론이 이르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그들이 내게 말하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 수 없노라 하기에”

아론이 모세의 추궁에 따라 한 변명입니다. 한 마디로 악한 백성들의 강압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문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백성들이 아론에게 요구한 것은 자기들을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자기들이 보던 그런 신을 만들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론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한 말을 살펴보면, 이 금송아지를 애굽에서 인도하여낸 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금송아지가 자기들이 믿고 따라왔던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론은 일종의 타협을 한 셈입니다. 지금까지 자기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지키면서 백성들의 요구도 들어주려는 타협안을 낸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신앙적 타협을 제안합니다. 그런데 하나 타협하면 둘을, 둘을 타협하면 셋을 제안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신앙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자리까지 끌고 갑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타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코로나 사태를 주목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이러스 전염을 핑계로 주일 지키는 일, 교회 봉사하는 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일 하나 둘씩 양보하고, 타협하고 물러서는 일이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금송아지의 유혹은 오늘도 강력합니다. 하나님 대신 사람을 의지하게 유혹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대신 눈에 보이는 손에 잡히는 무엇인가를 붙잡게 유혹합니다. 그리고 세상과 타협하도록 유혹합니다. 이 유혹을 잘 이겨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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