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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어머니의 하나님

Author
gfgc
Date
2025-06-01 21:00
Views
50
어머니의 하나님

룻기 1 : 15-18

2025.05.11. 어버이주일

몇 년 전 한 시골 마을에 걸려 있는 현수막 내용이 생각이 납니다. “코로나 핑계대지 말라.” 동네 어르신들이 자녀들에게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여 걸어 놓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교회는 이 날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교회가 이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세상에 표현하실 때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으로 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가정과 가족 간에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창도하실 때 교회보다 먼지 가정을 만드시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가정을 중심으로 하시려는 의도가 있고 그 사랑을 표현할 때 우리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이 최고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부모의 사랑을 대신 표현할 그 어떤 것도 없습니다.

1988년 유럽의 알베이니에 엄청난 지진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이 지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어린 아기가 엄마와 함께 무너진 건물 속에 갇혀 있다가 6일만에 구조된 감동의 일화가 있습니다. 모녀는 무너진 건물더미 속에서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를 두고 묻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를 도울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간신히 손을 펴면 아이의 얼굴에 닫기는 하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 엄마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작아진다는 것을 느끼고 아이를 살릴 방안으로 자기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나오게 하여 아기에게 피를 빨아먹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면서 아아는 점점 기운이 살아났지만, 엄마는 기력을 잃고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영국의 [런던 타임지]는 이 어머니에 대해서 “현대판 예수”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의 부모는 자녀를 위해서라면 온몸에 피가 다 빠져나가도 할 수 있습니다.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부모님의 자식 사랑일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에 나오는 한 가정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고향을 떠나고 있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가족은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입니다. 그에게 부인과 두 아들이 있는데, 그도 가족을 데리고 고향을 떠난다는 이야기입니다.

엘리멜렉이 가족을 데리고 찾아간 곳은 모압이라는 곳입니다. 그런데 모압으로 가는 것은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모압은 우상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들이 지금 있는 곳은 유대땅 베들레헴은 이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믿음의 사람이 아무리 어렵고 큰 결심을 했다하더라도 우상을 섬기는 나라로 가는 것은 왠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거기서 믿음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부부는 그 역경 속에서도 자리를 잡았고 두 아들을 결혼시켰습니다. 이방 며느리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 집에 가장인 엘리멜렉이 돌연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충격에 빠지게 하는 것은 아버지를 대신해서 가정을 지켜야 할 두 명의 아들이 순차적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 집에는 졸지에 여인들만 세 명 남았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런데 성경에는 그 이유가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이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는 무슨 은혜가 되며 어떤 교훈이 될 수 있을까? 도대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런 일을 허락하셨으며 성경에 기록하셨을까요?

그래서 오늘 우리는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이방 땅에서 기막힌 인생을 살아가는 나오미와 두 며느리의 삶을 분석해 보고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발견하고자 합니다.

이방 땅에서 남편을 잃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나오미에게 한 소문이 들렸습니다.

그 소문은 6절에 기록되었습니다. (룻 1:6, 개정)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라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수 년 전, 먹을 것이 없어 고향을 떠나 모압 지방에 와 살고 있는데, 고향 땅에 양식이 있다는 소문입니다.

나오미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다시 고향으로 가려는 것은 아닐까요? 물론 사람이 먹을 것을 찾아 이동하며 살기는 하지만, 고향으로 다시 가려는 것이 가능할까요?

타국에 와서 남편을 잃었습니다. 두 명의 자식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다시 고향으로 갈 수 있을까요? 사람들의 입방아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혹 가능하다면 무엇이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명분이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자세히 관찰 해 보니까 아주 중요한 구절이 보였습니다.

6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라는 부분입니다. 이것이 나오미 마음을 흔들었고 고향으로 향하게 했습니다. 저가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들은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자기를 부른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왜 여기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가서 살기로 작정을 하는 것입니다.

나오미가 고향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꼭 먹을 것 때문이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아주 중요하고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또한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나오미가 고향에서 들려오는 한 소문 때문에 그의 심경에 큰 변화가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소문은 바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소문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복음의 능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기쁜 소식입니다. 복음은 살 소망이 없는 사람에게 살 소망을 줍니다. 복음은 지옥에 갈 수 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소망을 줍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으로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소식입니다.
지금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복음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았고, 지금은 비록 험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능력으로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먼저 주시려는 메시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참으로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참 기쁜 소식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 소식을 통해 힘을 얻으시고, 힘차게 세상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제 우리는 나오미가 어떤 결정을 하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고향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기쁜 소식은 이미 나오미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게 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를 불러 놓고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룻 1:8, 개정)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각기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러자 두 며느리가 모두 어머니를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가 두 며느리를 설득하자 큰 며느리 오르바가 나오미에게 입 맞추고 자기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사람은 작은 며느리 룻입니다. 룻은 나오미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흔들리지 않고 확고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따라 어머니 고향으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 왜 이러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주목할 사람은 롯입니다.
나오미가 저에게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충분한 설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가 굳이 어머니를 따라가겠다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이 일은 누가 보아도 상식적이지 않고 그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도대체 룻은 왜 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가려는 것일까요?
혹 그에게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뭐 그런 거 말이죠. 자기 남편에게나 시아버지에게 자기가 알지 못하는 재산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게 아니 고서 남편도 없고, 시아버지도 안 계시는데, 시어머니를 따라서 고향으로 가겠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것은 비정상적이지 않습니까? 아마도 룻이 무슨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한 말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룻 1:11~13)“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내 딸들아 되돌아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리기를 기다리겠으며”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당시 사회적인 제도는 시동생 형수와 결혼하는 것이 사별한 여인이 다시 결혼할 수 있는 합리적인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이미 그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시동생도 없었고, 시어머니가 다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룻은 이런 조건 때문에 나오미를 따라가려는 것은 아닌 것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룻이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가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경 16절입니다. (룻 1:16)“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룻 1:17)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좀 더 완강하지요?

여러분은 이 룻의 말을 들으면서 그것이 무엇이라고 느끼셨습니까?
어머니의 하나님아닙니까? 그러니까 룻은 시머니에게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따라가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우상을 버리고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믿겠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롯이 어떻게 이런 결심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룻의 이런 결심을 한 것은 어머니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룻의 이런 결심과 고백은 자신의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룻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결심 감정에서 나오는 말이 아닙니다.

그의 고백을 보면 그는 꼭 믿음의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모압은 이방 땅으로 우상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룻은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을 자연스럽데 부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어머니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이는 잠자고 있는 우리를 깨우기에 충분한 단어입니다. 이유는 이것이 성령의 내적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하나님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이는 어머니에게는 하나님 계신다는 뜻입니다. 어머니를 보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알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어머니가 믿으시는 하나님을 믿겠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가 가정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이런 고백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거 엄청나게 부담스런 설교가 아니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신앙인 담게 살아야된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런 고백은 성공한 사람들이나 들을 수 있는 고백이 아닌가요?

그래서 여러분!
지금 나오미는 성공했습니까? 객지에서 남편을 잃고 두 아들을 잃고 이제는 거지같이 되어 고향으로 가겠다고 하는데, 성공입니까? 실패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어쩌면 세상적으로 볼 때 나오미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인간적으로만 본다면 룻도 시어머니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요?

그런데 롯은 시어머니에게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실패한 것처럼 보여도 룻이 볼 때는 나오미는 최고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최고의 여인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에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시려는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여기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섬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베들레험은 떡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훗날 이곳은 예수님의 고향입니다. 그런데 나오미와 그의 남편 엘리멜렉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먹고 살기 이해서 떠나 모압, 우상의 땅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망한 것 아닙니까?

많은 설교자들이 그렇게 설교를 하더군요.
떡집이라 불리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서 벌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거기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장이라 믿고 어려워도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하는데 그곳을 떠나 이방 땅으로 간 것은 복이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깨닫고 돌아왔기 때문에 복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깨닫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결심하자 하나님이 천사같은 룻을 붙여 주신 거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여기에 동의하십니까?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의 설교의 초점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베들레헴이 약속의 땅이고 저들은 택한 백성 맞지만, 저들이 죄 가운데 살자 하나님이 저들에게 무관심하였고 그래서 그 땅에 자연은 황폐해졌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멜렉이 먹고 살기 위해서 모압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결코 저들을 버리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저들에게 모압 사람들을 붙여 주셨고 모압 사람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압 사람을 감동하게 하셨습니다. 룻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룻 말고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룻은 엘리멜렉의 가족과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감동을 받아 하나님을 믿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오늘 성경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여기에 있습니다.

엘리멜렉이 모압으로 간 일은 인간의 편에서 보면 단순히 먹고사는 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 일에 있어서 저들은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크게 실패했고 다시 양식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오는 모습은 그 무엇으로도 은혜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롯이 따라온 사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보여주시는 일이었습니다.

나오미를 따라, 정확하게는 어머니의 하나님을 믿기 위해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재산이 많은 신앙과 인격이 훌륭한 보아스를 만나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행복의 극치 세상에서 천국을 말해도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롯이 이스라엘이 가장 자랑하는 최고의 성군 다윗 왕의 증조할머니가 되었다는 것이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여기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마 1:1, 개정)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 1:5-6, 개정)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 1:16, 개정)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적용~

나오미의 삶은 결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나오미는 하나님의 모압에서 선교사로서 사명을 다했고 이방 땅에도 구원이 있음을 우리에게 전하는 메신저가 되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들 영향력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어머니에게 룻을 선물로 주셨고 효도하는 룻에게 큰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3)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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