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 사는 사람들 | 창세기 6장 5 ~ 8절
작성일
2026-07-24 11:46
조회
40
은혜로 사는 사람들
창세기 6장 5 ~ 8절
2024.04.21. 강북꽃동산교회
5년전 우리노회 게시판에 슬픈 소식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경기도 평택에서 목회를 하시는 후배 목사님이신데,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참 마음이 아픈 기도제목 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중간 중간에 아이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난주 게시판에 다시 글이 올라왔습니다. 목사님들 기도 덕분에 완쾌판정을 받았다는 감사의 글입니다.
며칠 전 지방에 장례식이 있어 다녀오는 중에 그 목사님과 동승 하게 되어 치료받는 과정을 다 듣게 되었는데 오진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백혈병으로 알고 치료를 받고 달이 넘어가는 어느 날 의사 선생님께서 심각하게 보호자를 부르더니 심각하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백혈병이 아니라 림프종 암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너무 죄종하구요. 빨리 항암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목사님 심정이 어떠했냐고 물었더니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의사가 하나님 이시냐 그럴 수 있지요”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러는 과정에서 암은 뇌를 제외한 온몸에 퍼졌고 항암을 하는 과정에서 두번에나 실신했고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무거운 아이를 안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생명에 주인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인생이 무엇을 한들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5년이 지난 지난달 완쾌판정을 받고 지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고 주의 일에 더욱 충성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전 그분에게 함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입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조건 없이 라는 것은 아무런 단서를 달지 않고 그냥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값없이 라는 것은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공기와 햇볕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매일 그냥 마십니다. 조건 없이 그냥 공짜로 얻는 것이지만, 생명처럼 귀하고 값진 것들입니다. 없고 못 마시면 죽는 게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습니다. 조건 없이 그냥 주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영혼에 생명처럼 귀하고 없으면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 은혜로 살고 이 은혜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정 은혜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나타나셔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면서 방주의 설계도를 상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길이는 300규빗(135M), 너비 50규빗(22.5M), 높이 삼십규빗(13.5M) 재료는 고르페 나무로 만들고, 3층으로 하고, 칸들을 막고, 역청을 칠하고, 창은 위에 하나 내고, 옆에 문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미 하셨습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당에 가득함으로 그 끝날이 내게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5~6을 보면 매우 심각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에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에 와서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 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좋다고 하시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다고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인하여 한탄하시고 근심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큰결심하셨습니다.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을 다 없애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다 없애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땅에 역사상 전무후무한 홍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홍수로 다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점을 심각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 시대 이후 이 세상에는 죄악이 점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노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죄악이 가득하다는 사실과 사람들의 생각에는 온통 악한 것들로 가득하게 되었다는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의 죄악과 사람들 생각의 악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근심하신다는 사실과 그 근심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근심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기 마냥 좋으시고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관한 절대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마치 농부가 당신이 운영하는 농장을 아름답게 가꾸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눅 13: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에 농장에 풀처럼 죄가 자라서 판을 치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면 세상에는 심판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면 노아는 심판을 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구절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 가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가지는 노아가 만든 방주가 구원의 방주라고 할 때, 오늘의 교회가 구원의 방주로 비유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 노아를 지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하실 때,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노아에게 오셨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을 위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지으라 하신 방주는 당시 모든 사람이 누구나 다 들어오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선 누구나 다 들어오는 방주라면 만들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방법으로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의 방주를 중심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곳에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으면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이고 그 심판에서 먼저 우리와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심판은 교회를 중심으로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이 복이고 그래서 준비한다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꽃동산교회는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우리와 우리 가족의 영혼 구원을 위해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의 방주를 허락하신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아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아는 어떤 사람이기에 땅이 모든 사람이 다 타락하고 하나님이 세상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실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맑히고 있습니다.
6:9을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고 6:22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상을 보면 노아는 분명 세상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세상의 죄인들과 구분되는 의인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불완전한 자와 달리 완전한 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세상 그 누구와도 달리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만 노아를 평가한다면 노아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노아의 아름다운 행위를 좋아하셨고 노아의 아름다운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좀 더 자세히 빠짐없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6절 8절을 그냥 지나가면 오늘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6장 8절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7:23입니다.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일하게 노아와 그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노아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굼궁한 일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받은 은혜를 찾아보았더니 9절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계속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실 만큼 세상이 타락했는데 어떻게 그만 의인이고 완전 한자가 될 수 있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에서도 한번 오해를 했었는데 또 만났습니다. 의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말에 또 신경이 쓰입니다.
세상에 하나님 외에 완전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노아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았더니 그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노아가 남달리 의인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가 120년동안 배를 짖는 일에 가족이 협력한 것 그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구원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 지는 것은 노아는 어떻게 이런 은혜를 입었느냐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다시 말해서 노아가 의인으로 살 수 있게 되고 12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산 위에서 배를 지으면서 변함이 없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니 의인이 될 수 있고 믿음의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세상에서 의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침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은혜로 허락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로 허락하셨습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노아에게 그 무엇보다 큰 은혜가 저 방주였던 것처럼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큰 은혜는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 2:8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습니다. 은혜 중의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것이 다 은혜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은혜, 최고의 은혜, 반드시 있어야 할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이 이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모세는 홍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6:8에서 본격적으로 노아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노아를 소개하면서 처음 운을 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노아가 은혜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심판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히 9: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노아 시대의 홍수 대신 이제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홍수와 같은 형태의 벌은 없을 것이고 대신 죽은 이후에 심판이 준비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가 준비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 홍수를 대비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7:23입니다.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유일하게 노아와 그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출 2장을 보면 모세가 태어날 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아기가 태어나면 남자 아이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석 달 동안 모세를 죽이지 않고 숨겼습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담아 강에 띠워 보냈습니다.
바로 그 때 하필 바로의 딸 그러니까 공주가 목욕하러 그곳에 나왔습니다. 공주의 눈에 발견되어 공주가 양자로 삼아 키우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하필 요게벳이 모세의 유모로 채택이 됩니다. 모세를 품에 안아 키우게 됩니다. 이렇게 모세가 태어나 자라나는 동안 이 ‘하필’의 기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이런 하필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하필의 기적,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후 12장을 보면 바울은 남다른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남들에게 없는 육체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데 큰 장애였습니다. 마치 가시가 박혀있는 것처럼 자기를 괴롭혔습니다. 이것 좀 고쳐달라고 간절하게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냉정하십니다. 응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가시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질병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질병 때문에 늘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늘 하나님 의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신 남다른 은사들 하나하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준비하시고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질병까지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준비하시고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이 모두가 은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돌아보면 그 어느 하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하게 됩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여기 이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장차 하나님 부르시는 날까지 이 땅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뿐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내가 믿음이 커서 봉사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능력이 많아서 봉사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결심이 굳건해서 봉사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구원 받고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합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서는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일찍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단적으로 답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삽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고, 나를 구원하고, 나를 헌신케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루터는 1546년 2월 18일 새벽 3시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걸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늘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6장 5 ~ 8절
2024.04.21. 강북꽃동산교회
5년전 우리노회 게시판에 슬픈 소식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경기도 평택에서 목회를 하시는 후배 목사님이신데,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데, 참 마음이 아픈 기도제목 이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중간 중간에 아이가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지난주 게시판에 다시 글이 올라왔습니다. 목사님들 기도 덕분에 완쾌판정을 받았다는 감사의 글입니다.
며칠 전 지방에 장례식이 있어 다녀오는 중에 그 목사님과 동승 하게 되어 치료받는 과정을 다 듣게 되었는데 오진 때문에 고생한 이야기를 꺼내셨습니다.
백혈병으로 알고 치료를 받고 달이 넘어가는 어느 날 의사 선생님께서 심각하게 보호자를 부르더니 심각하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백혈병이 아니라 림프종 암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 너무 죄종하구요. 빨리 항암을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때 목사님 심정이 어떠했냐고 물었더니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의사가 하나님 이시냐 그럴 수 있지요”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러는 과정에서 암은 뇌를 제외한 온몸에 퍼졌고 항암을 하는 과정에서 두번에나 실신했고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 아버지는 무거운 아이를 안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생명에 주인인 것을 알게 되었고 인생이 무엇을 한들 의미가 있겠느냐는 말을 했습니다.
5년이 지난 지난달 완쾌판정을 받고 지금은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고 주의 일에 더욱 충성을 다한다고 했습니다. 전 그분에게 함께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한 시간도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입니까? 아무런 조건 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말합니다. 조건 없이 라는 것은 아무런 단서를 달지 않고 그냥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값없이 라는 것은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거저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공기와 햇볕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매일 그냥 마십니다. 조건 없이 그냥 공짜로 얻는 것이지만, 생명처럼 귀하고 값진 것들입니다. 없고 못 마시면 죽는 게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습니다. 조건 없이 그냥 주십니다. 그러나 그 은혜는 영혼에 생명처럼 귀하고 없으면 영혼이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이 은혜로 살고 이 은혜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진정 은혜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만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나타나셔서 방주를 만들라고 하시면서 방주의 설계도를 상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길이는 300규빗(135M), 너비 50규빗(22.5M), 높이 삼십규빗(13.5M) 재료는 고르페 나무로 만들고, 3층으로 하고, 칸들을 막고, 역청을 칠하고, 창은 위에 하나 내고, 옆에 문을 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이미 하셨습니다.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당에 가득함으로 그 끝날이 내게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창 6:5~6을 보면 매우 심각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에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가 살던 시대에 와서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다 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전에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좋다고 하시던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좋다고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인하여 한탄하시고 근심하시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을 보면 큰결심하셨습니다.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사람을 다 없애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다 없애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땅에 역사상 전무후무한 홍수가 있었습니다. 모두가 홍수로 다 죽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점을 심각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노아 시대 이후 이 세상에는 죄악이 점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노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죄악이 가득하다는 사실과 사람들의 생각에는 온통 악한 것들로 가득하게 되었다는 이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 세상의 죄악과 사람들 생각의 악함 때문에 하나님께서 근심하신다는 사실과 그 근심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근심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기 마냥 좋으시고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전능하신 창조주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에 관한 절대 권한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세상을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 하실 것입니다. 마치 농부가 당신이 운영하는 농장을 아름답게 가꾸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비유 중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눅 13: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름다운 세상에 농장에 풀처럼 죄가 자라서 판을 치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면 세상에는 심판이 예정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다면 노아는 심판을 면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구절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 가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가지는 노아가 만든 방주가 구원의 방주라고 할 때, 오늘의 교회가 구원의 방주로 비유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 세상을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 노아를 지목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하실 때, 심판하시기 전에 먼저 노아에게 오셨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지으라고 하셨다면 노아와 그의 가족을 위해서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지으라 하신 방주는 당시 모든 사람이 누구나 다 들어오게 설계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선 누구나 다 들어오는 방주라면 만들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의 심판은 다른 방법으로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하나님의 심판은 노아의 방주를 중심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곳에 교회를 세우라고 하셨으면 세상에 심판이 있을 것이고 그 심판에서 먼저 우리와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 심판은 교회를 중심으로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는 것이 복이고 그래서 준비한다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꽃동산교회는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우리와 우리 가족의 영혼 구원을 위해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의 방주를 허락하신 이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노아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노아는 어떤 사람이기에 땅이 모든 사람이 다 타락하고 하나님이 세상에 사람 지으심을 한탄하실 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찾아오셨다는 말입니다.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맑히고 있습니다.
6:9을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했고 6:22을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이상을 보면 노아는 분명 세상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세상의 죄인들과 구분되는 의인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불완전한 자와 달리 완전한 자였기 때문에 당연히 구원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가 세상 그 누구와도 달리 하나님의 약속을 순종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로만 노아를 평가한다면 노아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노아의 아름다운 행위를 좋아하셨고 노아의 아름다운 행위로 구원받았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좀 더 자세히 빠짐없이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6절 8절을 그냥 지나가면 오늘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고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6장 8절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7:23입니다.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일하게 노아와 그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노아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굼궁한 일입니다.
그래서 노아가 받은 은혜를 찾아보았더니 9절입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라고 했는데 이 부분은 계속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한탄하실 만큼 세상이 타락했는데 어떻게 그만 의인이고 완전 한자가 될 수 있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위에서도 한번 오해를 했었는데 또 만났습니다. 의인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당대에 완전한 자라는 말에 또 신경이 쓰입니다.
세상에 하나님 외에 완전한 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노아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해 보았더니 그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노아가 남달리 의인으로 살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하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가 120년동안 배를 짖는 일에 가족이 협력한 것 그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노아가 구원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 지는 것은 노아는 어떻게 이런 은혜를 입었느냐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입니다.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오늘 말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다시 말해서 노아가 의인으로 살 수 있게 되고 120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산 위에서 배를 지으면서 변함이 없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니 의인이 될 수 있고 믿음의 흔들리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만, 세상에서 의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마침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은혜로 허락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은혜로 허락하셨습니다. 노아가 믿음으로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노아에게 그 무엇보다 큰 은혜가 저 방주였던 것처럼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 큰 은혜는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엡 2:8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렇습니다. 은혜 중의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든 것이 다 은혜지만 그 중에 가장 큰 은혜, 최고의 은혜, 반드시 있어야 할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은혜를 깨닫고 감격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찬송이 이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내가 믿고 또 의지함은 내 모든 형편 잘 아는 주님 늘 돌보아 주실 것을 나는 확실히 아네”
모세는 홍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6:8에서 본격적으로 노아를 소개합니다. 그런데 노아를 소개하면서 처음 운을 뗀 말이 바로 이것입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노아가 은혜의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노아는 심판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세상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히 9:2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노아 시대의 홍수 대신 이제 하나님께서 심판을 준비하고 계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홍수와 같은 형태의 벌은 없을 것이고 대신 죽은 이후에 심판이 준비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가 준비되어 있지만 사람들은 다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 홍수를 대비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심판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대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7:23입니다.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고 했습니다. 유일하게 노아와 그 가족들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난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출 2장을 보면 모세가 태어날 때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 왕이 이스라엘 아기가 태어나면 남자 아이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했습니다. 모세의 어머니 요게벳은 석 달 동안 모세를 죽이지 않고 숨겼습니다. 더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담아 강에 띠워 보냈습니다.
바로 그 때 하필 바로의 딸 그러니까 공주가 목욕하러 그곳에 나왔습니다. 공주의 눈에 발견되어 공주가 양자로 삼아 키우게 됩니다. 그런데 또 하필 요게벳이 모세의 유모로 채택이 됩니다. 모세를 품에 안아 키우게 됩니다. 이렇게 모세가 태어나 자라나는 동안 이 ‘하필’의 기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자라는 동안 이런 하필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 하필의 기적,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후 12장을 보면 바울은 남다른 깨달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남들에게 없는 육체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복음 전하는 데 큰 장애였습니다. 마치 가시가 박혀있는 것처럼 자기를 괴롭혔습니다. 이것 좀 고쳐달라고 간절하게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냉정하십니다. 응답이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자고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가시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질병도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질병 때문에 늘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늘 하나님 의지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신 남다른 은사들 하나하나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준비하시고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질병까지도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해 준비하시고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이 모두가 은혜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돌아보면 그 어느 하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찬송하게 됩니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여기 이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장차 하나님 부르시는 날까지 이 땅에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적용~
그렇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구원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뿐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내가 믿음이 커서 봉사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능력이 많아서 봉사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결심이 굳건해서 봉사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구원 받고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믿음을 지키지 못합니다. 주님을 위해 헌신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서는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헌신할 수 있게 됩니다.
일찍이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사람이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서 단적으로 답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삽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우리에게 풍성하게 부어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살게 하고, 나를 구원하고, 나를 헌신케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새삼 발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루터는 1546년 2월 18일 새벽 3시 세상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걸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한시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늘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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