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설교

진리의 말씀이 성령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line.png

주일오전

하나님이 하실 일 | 창세기 41:25-28

gfgc gfgc
작성일 2025-08-20 13:59
조회 482
하나님이 하실 일
창세기 41:25-28
2025.08.17.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요즘 우리나라가 정부는 새로운 일군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꾼을 세우는데 근거는 부르심에 있습니다. 세우는 자는 국무총리나 장관이나 기관장을 세울 때 대상을 모집하여 어떤 시험을 보고 그 시험을 통해서 일꾼을 세우지 않습니다. 부르는 자가 한 명 한 명 지명하여 불러서 세웁니다. 지원은 받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르심이 없는 직분은 없습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원리는 부르심입니다.
성도는 부르심으로 교회를 나왔고, 나와서 집사가 되었고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구원도 천국도 부르심으로 가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가끔 그런 분들을 만납니다. 자기는 스스로 교회를 나왔다고 합니다. 착각입니다. 교회에서 처음부터 스스로는 없습니다. 부르심이 없이 성도가 없고 직분자도 없습니다. 세상에 누가 부르는 자가 부른 적도 없는데 장로라고 말합니까? 부르심이 없이 구원과 천국도 없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성도가 되고 직분자가 된 것은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순종해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심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값없이 받는 선물입니다.

요셉이 고향에서 형들에 의해서 장사꾼에게 팔려 타국에 온 것이 벌써 수년입니다. 종살이는 하다가 억울한 누명이 쓰고 감옥살이를 한 것이 벌써 2년입니다. 열 일 곱살에 형들에게 비움을 받고 애굽으로 가는 장사꾼에게 팔려 어느 집에서 종으로 살고 있는데, 그 집 주인의 부인이 불편한 것을 요구하는 바람에 그것을 거절하는 과정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지요. 지금 그는 감옥에 있습니다.
그런데 감옥살이가 은혜라면 은혜인 것은 그 감옥은 왕에게 잘못을 범하는 죄수들을 수용하는 감옥이라는 것입니다. 청송교도소 같은 곳이 아닌 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에 이곳에서 억울한 옥살이는 하시는 것을 알고 계실까요?

간수장은 요셉을 아주 특별하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수장은 그를 감옥에 관리자로 세웠습니다. 은혜 아닙니까? 사람들에게 관심자가 되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날도 요셉은 성실하게 죄수들을 돌보고 있는데, 간수장이 그를 급히 부르더니 수염을 깍고 목욕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옷을 건네더니 입으니까 가자는 것입니다. 왕이 요셉을 부른다는 것입니다.
순간 요셉에 당황스러웠전 것은 요셉은 그 감옥에서 왕의 죄수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과장을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옥에 갖혀 있다가 갑자가 나가서 사형을 당하기도 해직되기도 하는 것을 보아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복직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바로 2년 요셉이 꿈을 해몽을 해 주었던 사람의 예입니다. 그런데 지금 요셉의 마음은 편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죄목은 강간 미수, 대상은 애굽의 시위대장의 부인입니다. 얼마나 두렵고 떨릴까요?

왕이 요셉을 부른다니,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간수장의 도움으로 몸을 단장하고 왕 앞에 섰는데, 왕이 그에게 대뜸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네가 꿈 해석을 잘 한다며, 너는 꿈을 들으면 능히 다 푼다며”라고 하는 것입니다.
가슴이 철렁했는데, 안심이 되는 것은 꿈이라면 요셉은 할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왕이 요셉을 부른 것은 왕이 꾼 꿈 해석을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꿈을 해석이라면 애굽에 술사들이 있지 않겠습니까? 요셉이 잘하긴 하지만, 애굽의 술사들은 뭐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꿈을 해석하는 자가 없어서 간음죄로 수용 중인 그것도 히브리 종을 왕궁으로 불러들이느냐는 말입니다. 왜요. 있습니다. 그런데 해석을 못 하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바로가 꾼 꿈이 도대체 무슨 꿈인지, 애굽의 술사들이 풀지 못하는 꿈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바로의 꿈 이야기는 17~2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로가 나일강에 서 있었는데,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에서 올라와 풀을 뜯어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뒤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강에서 올라와 살진 소를 잡아먹었다는 것입니다. 참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다시 잠이 들었는데, 또 꿈을 꾸었습니다. 한 줄기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후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이삭이 나오더니 그 무성한 이삭을 다 삼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애굽의 술사들이 이 꿈을 해석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보실 때 어떻습니까? 해석하기 어려운 꿈 같습니까?
그런데 바로 왕은 그 꿈을 꾸고서 아침에 일어나 마음이 번민하여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다 불러서 꿈을 말하고 해석을 요구했지만, 해석하는 자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은 꿈을 꾸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늘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속된 말로 때로는 사나운 꿈을 꾸기도 합니다. 꿈자리가 사나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로가 그런 꿈을 꾸었습니다. 다른 때도 꿈을 꾸었지만, 오늘 바로의 꿈은 사나웠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불안해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때 바로의 심정에 대해서 이렇게 기술 해 놓았습니다. (창 41:8, 개역) “아침에 그 마음이 번민하여 보내어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라고 말입니다. “그 마음이 번빈하여”러고 했습니다. 여기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상황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생각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셨고, 바로가 이 꿈에 대해서 특별히 마음을 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번빈하게 한 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또한 애굽에 술사들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지 못한 것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능력이 없고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날에 그들의 지혜를 하나님이 막으셨고 그들에게 해석의 영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성경의 표현을 빌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창 41:16, 개역)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입니다.

놀라운 것은 애굽에 술사들보다 꿈을 더 잘 해석하는 자가 애굽에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요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꿈을 잘 해석한다는 사실을 애굽의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왕실에서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한 안다 하더라 누가 감옥에 있는 간간 미수범, 히브리 종의 말을 들으려 하겠습니까? 그것은 어찌보면 위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경계를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왕은 그를 간간 미수법을, 히브리 종을 궁으로 불러드렸습니다.

여러분 여기에 많은 하나님의 의도와 뜻 오늘을 향한 메시지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살펴보겠는데, 우선 요셉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진리가 선명하게 보이고 있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우리 기독교는 부르심의 종교입니다. 신앙생활의 기본은 부르십니다.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성도가 되고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심 없는 구원은 없습니다. 부르심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이 구원은 아닙니다. 부르심은 구원을 향한 은혜입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는 차고 넘쳤습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그는 그 은혜 속에서 믿음을 얻었습니다. 그가 꿈을 꾸면 큰 사람이 된다는 꿈을 꾸는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믿었고 그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은혜 속에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들에게 비움을 받고 이방 나라로 팔려 갔지만 형들을 미워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본문에서는 왕의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메시지 인것은 이는 장자 우리들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우리의 되를 위해서 제물로 드렸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은혜로 그것을 믿게 되었고믿어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요셉 그는 누구보다도 진실하고 성결하고 총명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래서 그것으로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인생 가장 어두운 감옥에서 죄수복을 입고 죄인의 심정으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마음을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는 일은 죄와 관계가 있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죄인임을 인식하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오셔서 불러 주십니다.
베드로 어느 날 자기를 찾아오신 주님의 말씀을 듣더니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눅 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말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는 이미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하늘의 영들과 자연과 여러 가지 현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려는 신호였습니다.
우리는 그 신호 앞에 엎드려 부복하고 연약하고 아무거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하나님앞에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부르셨을까요? 그것은 바로가 꿈을 꾼 것과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요셉이 한 말속에 그 이유가 들어 있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그것을 알게 하는 구절들이 들어 있습니다.(창 41:25, 개역)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문구입니다.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감옥에서 왕에게 부름받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요셉을 크게 쓰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말입니다. 왕이 요셉을 불렀기 때문에, 이제 요셉은 왕에게 무엇인가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어떻게 된다는 것은 요셉은 너무도 잘알고 있습니다. 요셉을 왕에게 소개한 떡 맡은 관원장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 하면 감옥갑니다. 요셉 같은 경우는 이미 가목에서 왔기 때문에 사형당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리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은 요셉에게 보여서 왕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왕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느끼시건 없으십니까?
왕은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래서 그가 금식 기도를 했습니까? 철야기도를 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보여 주셨습니까? 환상을 보고 꿈을 꾸는 것, 이거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나 보이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하실 일은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이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또 다른 말입니다. (창 41:28, 개역) “내가 바로에게 고하기를 하나님이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일하 일을 때가 되어서 바로에게 꿈으로 보여 여셨다는 것입니다. 그 꿈은 위에서 말씀드린 그 암소의 꿈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그 꿈해석자로 준비해 놓은 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둘을 서로 만나게 하셨습니다.2년 전에 왕궁에세 일하던 술맡을 관원장이 요셉에 있는 감옥에 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도 꿈을 꾸게 하셨고 그 꿈으로 그를 번민하게 하셨는데 요셉이 그를 해석했습니다. 하나님은 술맡은 관원장에게 요셉을 기억시켜 놓았습니다. 요셉을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오늘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바로에게는 있는 술사들이 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지혜를 막으셨고 해석하지 못하도록 불안한 마음을 주셨다. 요셉을 위해서입니다.
요셉이 전에 번민하고 있는 왕의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었는데, 그것 때문에 오늘 그는 바로에게 부름을 받았습니다. 오늘 그 자리에는 그 관원장도 있습니다. 그는 바로가 꿈을 꾸고 번민하고 있고 애굽의 술사들이 꿈 해석을 못하고 있을 때 요셉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을 바로에게 이야기했고 그래서 바로가 요셉을 부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바로가 꿈을 꾸고 그것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술맡았던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는 타이밍에 때문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하시는 때가 계시다는 것입니다.즉,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일하실 때를 정하시고 그때를 위하여 사람을 선택하여 성숙하게 하신 후에 때가 되면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2년전 요셉은 감옥을 나가는 술맡은 관원장에게 “당신이 잘되거든 나를 기억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술맡은 관원장은 잘됐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술맡은 관원장의 기억을 닫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일하시는 때가 되어서 바로에게 꿈을 주셨고 그의 마음을 번민하게 하셨고 애굽의 술사들은 그것을 해석하지 못하게 하셨고 그것을 요셉이 해석하도록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때를 정하시고 그때를 중심으로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때와 타이밍, 그리고 일하시는 방식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의 일을 위해서 사람들을 선택해 놓으시고 일하실 타이밍에 그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본문에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요셉에게 보이시지 아니하시고 바로에게 보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이스라엘에게 보이시지 않으시고 바로에게 여가지 재앙으로 보이셨다는 사실입니다.
초대교회 때에도 하나님은 이방인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탈리야 군대 장관 고넬료라는 사람에게 보이셨습니다. 베드로는 청하라는 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실 일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기보다도 내가 갈 곳 일할 곳에 주인이나 지도자에게 보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합리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내가 갈 곳에 사람에게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사장에게 이사에게 대장에게 왕에게 보여 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해서 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요셉에 바로의 꿈을 해석하자 바로는 신하들이 다 보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인장 반지를 빼서 요셉에 손에 끼워주고 세마포 옷을 입혀주고 목에 금 사슬을 걸어 주었다. 그리고 자기 수레에 태우고 거리 행진하며 큰 소리로 엎드라고 했다. 요셉은 그날 애굽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었다.
놀라운 일이다. 몇 년전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이방 땅에 종으로 팔려와 누명을 쓰고 감옥에 옥살이는 하던 죄인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어떻게 가능한가? 바로는 무얼 믿고 저에게 인장 반지를 기워주는 것인가?

오늘 성경은 바로의 입을 통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바로의 말이다.(창 41:38-39, 개역) “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바로는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한 사람,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 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니까 요셉이 고난을 받았지만 넉넉히 감당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어디를 가든지 성실하고 사람들엑데 인정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꿈을 잘 해석하는데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들이다.
(삼상 16:13)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사무엘이 떠나서 라마로 가니라”
놀랍게도 다윗을 10년동안 죽이려 했던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도 하나님의 신에 감동되었던 사람입니다. (삼상 10: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신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신은 오늘의 성령님 이시다. 지금을 성령시대이다. 오늘도 성령님의 충만을 위해서 기도하고 한 주간도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전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