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강단

진리의 말씀이 성령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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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입으로 시인하여

Author
gfgc
Date
2025-06-07 11:15
Views
46
입으로 시인하여

롬 10:8-15

2025.04.27. 강북꽃동산교회

기독교 핵심 진리는 구원입니다. 구원의 진리 가운데는 예수가 있습니다. 예수가 세상에 오셨고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고, 살아나셨습니다. 그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찌보면 이 진리는 간단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진리로 구원을 받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노아 때 물로 세상을 심판할 때는 노아의 여덟 가족만 구원을 받았고, 주께서 소돔과 고모라는 심판하실 때에는 롯과 세 딸만 구원받았습니다.

앞으로 있는 심판에서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심판에 관한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면 걱정이 됩니다. 두 사람이 맷돌을 갈다가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한다고 했고, 열 명의 처녀들이 신랑을 맞이하여 갔다가 다섯은 신랑을 맞이했는데 다섯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 진치집에 못 들어갔다는 비유의 말씀을 들어보면 역시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많지 않은 수에 우리 교회 교인들을 다 들어갈 것입니다.

구원이 거져 받는 선물이라면서 구원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을 받아야 하는데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믿음을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은 내가 공부해서 알고 만든고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와 너]라는 책을 써서 유명해진 유대교 철학자 마틴 부버의 일화 입니다. 참고로 마틴 부버는 하나님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에 대한 많은 책을 섰고, 하나님에 대한 강의를 하는 당시 유명한 학자입니다.

하루는 한 랍비가 부버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은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은 부버가 머뭇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랍비가 다그치듯 또 물었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처음 받아본 질문에 부버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랍비가 또 같은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선생님! 하나님을 믿으십니까?”

부버가 당황했습니다. 평생 하나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온 사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없고, 믿는다고 대답할 수도 없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부버는 집에 돌아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됐었고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왜 랍비의 대답에 즉시 대답하지 못했을까?” 부버는 이런 답을 찾았습니다. “그동안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는 했지만, 하나님을 믿지 못했다.”라고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사람들과 교제를 해보면 내가 믿는 하나님이 저들이 믿는 하나님과 다르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늘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은 참 인격적이십니다. 변함이 없으시며 늘 존중해 주십니다.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 주신 이유는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은혜를 주어 깨닫게 하여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하나님을 무서운 분, 벌주는 분이라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아들 예수를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을 감시하고 나중에 큰 벌을 주시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도 교회에는 이런 성도들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체험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고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 하느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 중에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말입니다. (마 16:15~17)

그의 고백을 들으신 주님께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다. 네가 그것을 네게 알도록 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내가 네게 축복한다. 이제 너의 이름이 시몬이 아니라 베드로다(반석) 네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내가 네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대단한 일입니다.
그날 베드로가 주님 질문에 대답을 잘했다고, 그래서 인생에 엄청난 복을 보장 받았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 질문에 담을 잘한 것, 즉 예수께서 누구신지 안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알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알거나 누구에게서 배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왜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까?
오늘 성경이 그런 것을 잘 설명해 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을 다 같이 한번 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롬 10:8-10, 개역)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정리해 보면 여기에 조직적으로 구성된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내에 가까이 온 것이 있는데, 그것을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관찰해 보면 우리 몸에는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8절을 잘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마음에 믿음을 주는 것이 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내가 노력하고 공부해서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어오는 때에 생기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기본 진리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것은 베드로가 알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 주셔서 알게 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큰 복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구원도 그렇게 받았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그날, 베드로가 있는 그곳에 여러 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었는데, 베드로가 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만 복을 받고 그만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잠시 혼돈스럽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모두를 다 동일 하게 사랑하시고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기를 바라시는 것이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주님은 베드로에게만 복을 주셨습니다. 어떻게 받아드리면 좋을까요?

그것은 환경에 따라 말씀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것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처음 주님께 부름을 받았던 때를 기억하십니까? 그가 어부였을 때 밤새 고기를 잡았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고 빈손으로 집에 가려고 했는데, 주님께서 오시더니 그의 배에 타셔서 무리들을 향해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날 베드로는 예수님 바로 옆에서 배 키를 잡고 있다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의도가 계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이다”하고 나가서 그물을 내렸는데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런 경험에 의해 다른 여러 제자보다 주님의 말씀에 늘 집중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질문에 그가 먼저 답을 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이렇게 하는 모든 이가 복을 받는다는 샘플이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있는 것’입니다. 즉, 마음에 있는 것은 믿음의 말씀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에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믿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알고 공부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내게 오셔야 합니다. 오셔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받아드려야 합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입니다.
즉, 믿음은 그분이 주시는 말씀안에 있습니다. 그것을 마음에 받아들이면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즉, 내가 믿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믿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안에 믿음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8절에 있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면 네 마음에 있다하였으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오는 것인데, 우리의 귀나 손을 통해서 눈을 통해서 우리의 몸 환경을 통해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면 믿음을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말씀에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 말씀을 통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지 늘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마음에 들어오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면 두 곳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마음입니다. 다음은 입술입니다. 다시 8절입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에 있으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 역사하는 곳은 입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들어온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에 믿음을 주실 뿐아니라 입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 영향은 9절이지요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로 시인하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게 되고, 10절에는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시인으로 인해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최종적으로 13절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입으로 시인하고 부르짓으면 구원을 얻느다는 것입니다. 다시 10절을 주목해 보면 입으로 시인해야 완벽한 구원이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오늘 성경과 그리고 하나님의 의도는 마음으로 믿는 것도 중요하고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꼭 입으로 시인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면 왜 하나님은 우리의 입에 시인을 그렇게 원하시는 걸까요?

가끔 그런 분들 만나봅니다. “난 마음으로 믿어. 하나님도 잘아고 계실 거야” 그것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10절에 보면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이 입으로 시인하기를 바라십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를 구주라고 고백하기를 바라고 계실까요? 다시 8절입니다.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는 곳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마음에 말씀을 주셨을 때 두 곳에서 역사하는데 하나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입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전파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구제적으로 말씀하신 곳은 14절입니다. (롬 10:14, 개정)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해석을 해보면 이렇습니다. 믿지 않은 이들을 어찌 구원해 주시겠느냐는 것이고 저들이 믿지 않은 이유는 들은 것이 없기 때문인데, 들은 것이 없는 이유는 믿는 우리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믿은 것을 시인하시기를 원하는 것은 그 시인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뿐아니라 그 시인을 통해 다른 사람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구원받은 받을 사람들은 늘 예수를 입으로 시안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 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마 8:2)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마 15: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마 15: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눅 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가 마음으로 믿는 것을 꼭 입으로 시인하시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이런 하나님의 의도를 잘 알고 그것을 신앙고백서로 만들어 그것을 실천하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사도신경 신앙고백입니다.

사도신경의 핵심 내용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입니다. 그러니까 지난 이천년동안 우리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해 왔다는 것입니다.

‘주’라는 호칭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통용되던 호칭이었습니다. 가장 보편적으로 노예가 자기 주인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제자가 스승을 부를 때, 존경하는 웃어른을 부를 때 ‘주’라고 불렀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을 이런 뜻에서 ‘주’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유대가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때, 주는 모든 백성이 로마의 황제에게 부르는 최고의 존칭이었습니다. 따라서 지배를 당하는 소수의 민족이 주라는 말을 함부로 쓰기에 부담스러운 호칭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초대교회가 예수를 ‘주’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 ‘주’라는 말의 의미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상전, 존경하는 분이라는 뜻이었지만, 이제는 그 호칭 안에 ‘구원’이라는 개념이 담기기 시작했습니다. 왕이라는 의미가 담기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어떻게 예수님께 이런 호칭을 주게 되었습니까?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그 아들 예수를 높여 주셨습니다.

고전 13: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의 역사가 아니고는 누구도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를 주라고 고백한 것은 바로 성령의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나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깨닫게 해주시고 고백하게 해 주시는 사람들만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백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오늘도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예수를 주라고 고백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런 방법으로 우리의 고백을 받기를 원시는 것은 우리의 고백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고백을 원하십니다. 신앙생활에 핵심은 구원입니다. 구원을 이루는 핵심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고백으로 완성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고백의 중요성을 알고 사도들의 신악고백서인 사도신경을 가르쳤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믿음으로 세울 때 만듯이 고백을 요구합니다. 학습, 세례식, 장로 권사임직식에 성도 앞에 서서 손을 들고 신앙을 고백하도록 합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고백의 표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여러형태의 신앙고백을 받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 때문에 행복합니다. 나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전에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나의 주인이 되시며 내 일생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의 다양한 신앙곡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에서는 동의 되는 부분에 아멘으로 화답하도록 합니다. 기도후에도 누가 기도를 하든지 아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신앙고백이 확실한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신앙을 고백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을 통해 또 다른 사람들을 구원받게 하게하기 위해서 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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