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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주님이 일하시는 때

Author
gfgc
Date
2025-06-0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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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주님이 일하시는 때

요한복음 2:1~11
2021.01.10. 강북꽃동산교회 주일오전

몸이 아픈 사람에게 때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작년에 우리도 집사람이 아뻐서 검사도 하고 수술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검사를 하고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힘들더라구요.

농부에게도 때는 매우 중요하지요. 농부는 봄에 씨를 뿌려야 하고, 여름에는 가꿔야하고 가을에 거둬야 합니다. 그런데 농부가 이런 계절을 놓치게 된다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또 이 계절에 태풍이라도 온다면 일 년 동안의 수고가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이죠. 그러면 태풍이 오기 전에 비리 거두어들였으면 어떨까요? 그것이 안 되는 이유는 추수의 계절이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전 3:2)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라고 말입니다. 성경은 에 대해서 매우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지은 인생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시고 그 구원의 때를 위해서 수천 년 동안 일하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을 세우셨습니다. 믿음의 계보를 만드셨습니다. 믿음의 역사를 만드셨습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데 구원 받는 예시를 사건과 사고를 통해서 만들어 주시고 메시아를 보내시기 전 먼저 예언자와 선지자를 통해서 메시아를 영접하도록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적절한 시기에 메시아를 보내주셨습니다.

구원자로 세상에 오신 주님도 이때를 중요시하셨습니다. 주님은 당신이 하고 싶으신 대로 하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때를 따라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아들로 공적인 사역을 하신 때는 30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그 전까지 주님은 아버지인 요셉과 어머니인 마리아의 돌보심 속에서 자라고 배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예수님의 아버지는 목수이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0세가 될 때까지 목수인 아버지의 일을 도와서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마 예수님은 나무를 잘 다루셨을 것이고, 집을 짓는 일에 탁월한 기술이 있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주님은 요단강에 나오시게 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요단강에 오셨을 때는 요한이 그 강에서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고 지금도 받으려고 줄을 선 상태입니다.

그때 주님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 위해서 줄을 서셨습니다. 그리고 순서가 되시자 요한 앞에 서고 요한이 예수님 머리를 물속에 넣으실 때 죽음의 상징인 물속에 잠기셨습니다. 그렇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 상황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게십니까? 예수님의 겸손, 저는 때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왜 30세에 세례를 받으셨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을 통해서 그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그날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 과정을 모두 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늘이 열리고 하늘에서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님이 머리 위에 임했습니다.

여기서 성경이 우리에게 주시는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는 때는 하나님이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때 예수님이 마침 그때에 요단강에 나가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때에 맞춰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 수 있도록 마음을 감동하게 하셨다는 해석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때는 예수님께 맞춰져 있습니다. 그 증거가 마태복음 4장 1절입니다.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나시자 놀라운 변화가 생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고 집으로 가시지 않으시고 광야로 나가시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주님은 가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마 4:1)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사”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에게 세례는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사람이며 죄인이셨는데, 세례를 통해서 다시 사셔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음을 증명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공적인 삶이 시작되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그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았고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부터 예수님은 당신의 개인의 뜻대로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아주 철저하게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살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삶을 “성령에게 이끌리사”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은 성령에 이끌리셔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셨고 금식이 끝날 때는 세상에 가장 강력한 흙암의 영인 사단의 시험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성령충만 하셨고 천사들의 도움을 받으며 사람들이 사는 공간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주님이 광야에서 돌아오는 날 가나에는 잔치가 열렸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님과 가족이 모두 초청이 된 상태입니다. 40일 동안 광야에서 주리셨는데 주님은 얼마나 음식이 먹고 싶으실까요?

주님이 잔치집에 가셨을 때 예수님의 부모님은 벌써 잔치집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식사를 하려고 하시는데,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오시더니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와서 한말이 무슨 말입니까? 지금 주님께서 안자계시는 그 잔치집에 포도주가 다 떨어져서 없다는 말이 아닙니까? 상황은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님이 계시는 이 잔치집은 앞으로도 더 많은 손님들이 와야 하는데 이미 잔치의 주 메뉴인 포도주가 덜어졌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집은 경사스런 혼인잔치는 무르익어가고 신랑과 신부는 하객들의 예쁨을 한 몸에 받으며 인사를 하고 있고, 그의 부모들은 내빈들에게 자식을 어떻게 그렇게 잘 키웠느냐고 인사를 받고 있을 때,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잔치는 주관하는 집으로썬 너무도 큰 실수를 하는 일입니다. 신랑과 양가 부모는 아직 이런 상황을 잘 모를 수 있지만, 잔치를 주관하는 연회장은 보통일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저는 이런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이 집에 포도주가 다 덜어진 것은 돈이 모자라서 포도주를 적게 준비했다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혹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손님이 예상보다 많이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무엇일까요? 예상을 잘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더 좋은 잔치를 못 만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한계를 말해주는 장면입니다. 물론 이 잔치에서 모도주가 모자란다고 이집이 망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예상됩니다. 잔치에 손님들은 하나 둘 일어서게 될 것이고 새로 오는 손님들은 오다가 돌아가야 되고 돌아가던 손님들은 이 집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이야기 들을 하고 갈 것입니다. 이것은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망신입니다. 죄송한 일입니다.

그럴 때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걸까요? 이 잔지집은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저는 2021년 한해를 우리성도들의 집을 잔치집으로 적용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님의 집은 일년 내내 좋은 일이 있고 손님들이 끊이지 않고 그 손님들이 왔다가 모두 만족해서 돌아가고 거래처가 늘어나고 곡간에 곡식이 마르지 않고, 통장이 돈이 끊이지 않는 한해가 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아멘

이나 저나 오늘 가나에 잔치집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대로 잔치가 종료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제일 문제를 해결하려는 계속 주목할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어머니이시지요. 그가 예수님께 와서 “포도주가 다 떨어지고 없다.”고 말하는 것은 그의 마음에 무슨 감동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갑작이 왜 그러는 것입니까? 그가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보았기에 그러는 것입니까? 그동안 예수님은 마리아의 아들도로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빨아주는 옷을 입고 사는 평범한 한 청년에 물과 했습니다. 그런데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예수님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예수님께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의 어머니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과 좀 다르게 보이지 않습니까? 전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표현대로라면 하나님의 때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이 때를 보았습니다. 이제 예수께서 공적인 사역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고,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에 나가서 40일 동안 마귀에게 훈련을 받으셨다는 사실도 아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오늘 예수님을 아들로서가 아닌 메시아로 본 것입니다. 그리고 더나가 예수님 특별한 사역을 하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잔치집은 좋은 집입니다. 행복한 집입니다. 축복을 마음 것 받아야 하는 집입니다. 음식이 넘쳐야 하는 집입니다. 즐거워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분위기가 깨질 위기에 있는 것은 물을 보듯 뻔합니다.

그럴 때 이 즐겁고 축복이 넘치는 잔치집에 축복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하는 책임감을 가진 사람은 마리아 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사람입니다. 어린 예수를 키운 사람입니다. 지금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2021년 잔치집과 같은 우리의 가정에 마리아 와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습니까? 5절입니다. (요 2:5, 개정)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 것인데 그대로 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리아기 하인들에게 무슨 근거로 저런 말을 했을까요? 그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할 때 예수님께서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했습니까? 마리아가 이런 이야기를 예수님께 미리 들었습니까? 그래서 마이라는 종들에게 가서 혹 종들이 불평하고 순종하지 아니 할 까봐 미리 이야기를 해 놓은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말할 때, 예수님이 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4절입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했습니다. 즉, 포도주가 떨어진 것이 주님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반응은 너무도 냉담하셨습니다. 그러면 마리아가 하인들에게 말한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마리아는 무슨 확신을 가지고 하인들에게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던지 그대로 하라고 했을까요?”

문론 성경에는 그 근거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알고 있는 확실한 것은 하나 있습니다. 것은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임하셨고 그 성령에 이끌리셔서 광야로 나가서 기도하셨고 마귀를 이기시고 돌아온 주님의 모습에서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이 집에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2021년 여러분들에게 이런 믿음이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으나 해결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반응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과연 여기서 무슨 일을 하실까요? 위에서 예수님은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 2:4, 개정)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좀 냉정하게 말씀하셨지요. 이 말씀에는 주님이 무엇을 하실 희망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 주님의 말씀에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어느 구절입니까? “내 대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라는 구절입니다. 이 말씀을 부정적으로 보면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보면 희망이 있습니다. 즉, 지금은 때가 아닌데 때가 되면 역사가 일어난 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주님은 때가 되면 이집에 기쁨이 넘치게 할 것입니다.

주님의 때가 되셨는지 주님은 하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7절~9절입니다. (요 2:7-9, 개정)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이 집에는 포도주가 없어서 곤란하게 되었는데 맛있는 포도주가 넘쳐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잔치집에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속 즐겁고 행복한 잔치가 이어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저는 올해 이것을 아주 중요하고 생각하고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은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늘 잔치집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잔치에 주인공인 예수님이 우리 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이십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니 주님이 계시면 늘 잔치집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을 모면 주님이 잔치집에 계시는 데도 불안해 하고 두려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 입니까? 주님이 일하시는 때는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현재 부족한 것, 어려운 상황만 보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가 지금과 같은 때가 아닐 까요? 코로나19로 세상에 두려움이 가득 차 있는데 주님이 우리 와 함께 계신다면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시지 않으시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주님이 일하시는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주님은 반드시 일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때를 중요시 하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때를 주목하려고 합니다.

주님의 때란! 어떤 때를 말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여러 가지 정황상 포도주가 없어 잔치가 종료되고 신랑과 신부가 더 이상 얼굴을 들고 하객들에게 인사를 할 수 없고, 그의 부모들을 망신을 당할 수 없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의 때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따라는 사실입니다. 주님의 때는 늘 아슬아슬 합니다. 고난과 긴장이 늘 있습니다. 어떤 때는 두려움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이 나오기 진전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이런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까?
저는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는 준비가 필요했고, 또 하나는 그 준비된 것을 통해 선물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왜 그때에 일을 하시고 선물을 주시려는 것입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성 불신, 세상에 대한 희망 그런 것들을 다버릴 때가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 그때까지 기다리십니까? 그래야 주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기적을 통해서 무엇을 전하시려는 것입니까?

그러면 오늘 주님이 때를 기다려 그때에 기적을 주시는 의도는 무엇일까요?
성경은 이 표적은 주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행한 첫 표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7대 표적을 중심으로 기록된 성경입니다. 그런데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은 왠지 바람을 잔잔하게 하시고 바다위를 걸으시는 표적과 귀신을 물리치는 표적에 비하면 왠지 시시해 보이지 않습니까?

혼인집에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물리 포도주가 되었다는 표적을 통해 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겠습니까? 전혀 작아 보이는 이 표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이는 표적이라면, 그리고 처음 보이시는 표적이라면 적어도 태양의 빛을 어둡게 하고 예수님 말 한마디에 땅이 흔들리고 그래 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 주님의 어떤 의도가 계시는 것입니까?

물은 성경에서 말씀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 한 물은 영적으로 죄를 씻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세례요한은 물세례를 회개와 연관시켰습니다.

그렇게 볼 때, 주님이 하인들에게 빈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은 영적으로 빈 항아리와 같은 우리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라는 뜻입니다.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그래야 주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을 때 결코 일 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빈 항아리를 채우는 것은 우리들의 몫입니다. 7절에서 하인들은 빈 하아리에 아구까지 채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항아리는 어느 정도의 물이 찼습니까? 어직 덜 차셨습니까? 아구까지 채워야 합니다. 아구까지는 “기꺼이”를 의미합니다. 순종을 의미합니다. 그래야 주님이 일하십니다.

주님은 하인들이 채운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의 의도에 오늘 포도주는 단순히 잔치집에 모자라는 술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사람들은 이 일은 단순히 신기한 일, 내지는 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주님은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면서, 당신의 죽음을 생각하셨고 이 사역이 끝날 때 당신의 몸에서 흘러나올 피를 생각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몇 사람이 먹고 즐기는 그런 포도주에 불과 하지만, 주님의 이 사역에 마지막엔 죄지은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은 언약의 피가 될 것을 염두해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표적이 중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잔을 돌리시면서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날 우리들은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적용=>

우리 기독교는 섬리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섬리하시고 창조하셨습니다. 죄지은 인생을 구원하실 때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먼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들이 준비한 길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시고, 때가 되자 성령을 보내 주셔서 본격적으로 구원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도 하나님의 섬리를 따라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사람들이 준비되고 빈 항아리에 물을 채웠을 때,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는 당장 흥을 돗구는 음식일지는 모르지만, 주님에게 포도주는 저들의 죄를 씻는 구원의 피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사역에 내면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훗날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은 제자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경은 지금이 은혜의 때, 구원의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결단 성도 여러분! 성령님이 답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성령이 도우셨습니다. 성령에 의해서 사역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 시대보다 더 악하고 음란한 시대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성령으로 뜨겁게 충한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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