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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원고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Author
gfgc
Date
2025-06-01 21:07
Views
58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요한복음 2:1~5
2025.05.04. 강북꽃동산산교회 주일오전

얼마 전 고향 사람과 통화를 했는데, 시골에서 잔치를 했다네요. 마을회관에서 식을 하고 식사는 출장부페를 부른다네요.

요즘 결혼식 음식이 일 인분에 10~15만원 한답니다. 부부가 부조금 10만원 들고 가면 눈치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20만원 하기에는 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20만원 들고 가서 부조했는데 식권이 떨어졌답니다. 물론 먹으러 간 것은 아니지만, 좀 그냥 오기에는 서운한 게 사실이지요? 음식 맛있다고 해서 아침부터 굶고 멋처럼 맛있는 음식 좀 먹으려고 했는데, 식권이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가나에 잔치가 열렸습니다.
가나는 나사렛에서 동북쪽으로 약 6키로 지점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예수님의 고향이 나사렛입니다. 갈리리 가나는 예수님의 동네입니다. 잔치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함께 즐기는 날입니다.

이 혼인집에는 예수님의 가족들이 다 동원됐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12명의 제자들도 다 초청됐습니다.
이 잔치집에 문제가 생긴 날은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왔고 사람들은 즐거워 한창 흥에 겨워 가는데 음식이 떨어진 것입니다. 문제를 가장 먼저 인식한 것은 예수님의 어머니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아주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예수님께 와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요 2:3, 개역)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왜 이러시는 것입니까?
혹 이 잔치집과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까?

어머니는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왜 예수님께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이 포도주를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참고로 예수님은 포도주를 만든 경험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목수인 아버지를 도와 일을 했을 뿐입니다.여러분은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공생에 동안 수많은 이적과 표적을 행하셨고 병을 고치시기도 했고 귀신을 쫓아내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선 아직 아무런 이적과 표적을 나타내신 적이 없고 병을 고치신 일도 없으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포도주가 떨어진 것은 왜 예수님께 말하는 것입니까?

그래서 성경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그런 부탁을 하는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요 1:29, 개역)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 1:33, 개역)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라고 했습니다.

요즘 갈릴리 나사렛에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크게 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이런 분위기를 왜 모르시겠습니까? 요한에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보는 것처럼 예수님의 어머니 눈에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데로 예수님께서는 목수인 아버지의 일을 도와서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께서 요단강에 가서 세례를 받고 오시더니 달라지셨습니다. 아버지 일을 못 도와드려서 죄송하다고 하더니 광야로 나가셨습니다. 40일 후에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은 몰골이 반이셨습니다. 40일동안 주리시면서 금식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마리아는 그 얼굴에서 하나님의 더 큰 형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복음성가 “내 눈 주에 영광을 보네”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께 와서 (요 2:3, 개역)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내 눈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폭풍 가운데 서신 주님, 환란 가운데 계신 주님, 특히 정치적으로 혼란한 우리나라 가운데도 주님은 계신다는 것입니다. 내 인생 한 가운데 계신 주님의 영광을 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반응입니다.

어머니의 말에 주님은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요 2:4, 개역)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당황스럽습니다. 좀 민망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 메시아로 하시는 말씀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말씀 하시는 것을 주목하려고 합니다. 특히 때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집에 문제가 있는데 해결될 때가 있다는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 우리는 그때가 언제인지 모릅니다. 다시 공이 예수님의 어머니에게로 넘어갔습니다.

이제 예수님 어머니의 반응이 중요합니다.
예수님 어머니의 반응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 하인들게 이런 말을 합니다. 5절이죠. (요 2:5, 개역)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상식적인 말씀은 아닙니다. 예수가 누구인데 무슨말을 하던지 그대로 할 수 있냐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주인도, 지배인도, 연회장도 아닌데, 하인들은 왜 예수의 말을 들어야 하나요?

하지만 여기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쩌면 상식적이지는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는 무엇인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인생과 타협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용서의 일이며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렇게 하셨습니다.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먼저 세상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면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이고 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상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을 이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의 나라에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타협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그 일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잘 아시는 전능자가 인간에게 가장 행복하고 가장 복이 될 일을 정하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타협할 수 없는 일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 아들을 세상에 죄를 대신해서 죽게 하는 일입니다. 그 피를 통해 인생의 죄를 용서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싫어도 해야 하고 그 피를 마셔야 하고 씻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는 하나님과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은혜로 지금까지 살았고 앞으로도 그 은혜로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어떻게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관찰해 보겠습니다. (요 2:7, 개역)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라고 했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들은 잔치집에 하인이었습니다.
잔치집에는 손님들이 오면 발을 씻길 때 사용하는 물 항아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거의 비어 있었습니다. 잔치가 사흘이 되었기 때문에 올 사람이 거의 왔다는 말씀이지요. 주님은 저들에게 그 비어 있는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도 상식은 아닙니다. 잔치에 올 사람이 다 왔고 잔치가 막바지에 이으렀는데 빈항아리에 물은 왜 채워야 할까요? 하인들은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웠습니다.

놀라운 일은 여기서 일어났습니다. 주님께서는 돌항아리에 가득차 있는 물을 떠서 여회장에서 갖다주라 하여서 갖다주었더니 연회장이 그 포도주를 맛보더니 이런 말을 하는 것입니다. (요 2:10, 개역)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라고 말입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성경은 이 기적에 대해서 다음가 같이 말했습니다. (요 2:11, 개역)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라고 말입니다.

물이 포도주가 된 기적은 예수님 공생에 중에 처음 있는 기적입니다. 주님은 이 기적을 갈리리 가나 혼인잔치에서 행하셨고 그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렸고 그 일로 제자들에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이 기적은 시키는 대로 한 하인들의 손에서 일어났습니다.

오늘 잔치집에 포도주가 떨어질 것을 예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축복받아야 할 잔치가 챙피와 망신을 당하는 잔치가 될뻔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축복의 잔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내 눈 주의 영광을 보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보는 마리아가 있었기 때문이고,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하인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합리적이지 못한 일에 순종하는 사람들 일어납니다. 아니 더 정확한 것은 믿음의 사람들을 동해서 일어납니다.

하인들은 어떻게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까? 예수님께 저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예수가 계시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이 있고 기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가 계십니까? 우리 집에 예수가 계십니까? 그 영광을 보고 사십니까?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잔치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습니다. 잔치 말미에 포도주가 떨어져 곤란하게 되었는데, 맛있는 포도주가 넘쳐나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계속 즐겁고 행복한 잔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잔치집과 같습니다. 이유는 위기 때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이십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주님이 계시면 늘 잔치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도 있습니다. 오늘 잔치집에 주님이 계셨는데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주님이 일하시는 때는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재 부족한 것, 어려운 상황만 보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일하시는 때가 있으십니다. 주님은 왜 때를 중요시 하시는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때를 주목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의 때란!
포도주가 떨어진채 잔치가 종료되고 그래서 신랑과 신부가 즐겁게 하객들에게 인사를 할 수 없고, 그의 부모역시 하객들에게 미얀해서 쩔쩔 매야하는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주님의 때는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주님의 때, 아슬아슬하고 고난과 긴장이 있는 때, 어떤 때는 두려움까지 있습니다. 그래서 원망이 나오기 직전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왜 이런 때를 기다리시는 것입니까?
하나는 준비가 필요했고, 또 하나는 그 준비된 것을 통해 선물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왜 그 때에 일을 하시고 선물을 주시려는 것입니까?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성, 불신, 세상에 대한 희망 그런 것들을 다버릴 때가 그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 그때까지 기다리십니까? 그래야 주님이 베푸시는 기적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 기적을 통해서 무엇을 전하시려는 것입니까?
성경은 이 표적은 주님이 갈릴리 가나에서 행한 첫 표적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7대 표적을 중심으로 기록된 성경입니다. 물위를 걸으신 기적, 소경을 고치신 기적, 죽은 나라로를 살리신 기적 등 그런데 물이 포도주가 된 표적은 왠지 바람을 잔잔하게 하시고 바다 위를 걸으시는 표적과 귀신을 물리치는 표적에 비하면 왠지 시시해 보이지 않습니까?

술에 취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는 표적을 통해 누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겠습니까? 전혀 작아 보이는 이 표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보이는 표적이라면, 그리고 처음 보이시는 표적이라면 적어도 태양의 빛을 어둡게 하고 예수님 말 한마디에 땅이 흔들리고 그래야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물을 포도주가 되게 하신 것 주님의 어떤 의도가 계시는 것입니까?

물은 성경에서 말씀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또 한 물은 영적으로 죄를 씻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세례요한은 물세례를 회개와 연관시켰습니다.

그렇게 볼 때, 오늘 포도주는 단순히 잔치집에 모자라는 술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혹시 사람들은 이 일은 단순히 신기한 일, 내지는 표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주님은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시면서, 당신의 죽음을 생각하셨고 이 사역이 끝날 때 당신의 몸에서 흘러나올 피를 생각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몇 사람이 먹고 즐기는 그런 포도주에 불과 하지만, 주님의 이 사역에 마지막엔 죄지은 모든 사람이 먹고 마시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은 언약의 피가 될 것을 염두해 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표적이 중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주님은 마지막 만찬의 자리에서 제자들에게 포도주잔을 돌리시면서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날 우리들은 성찬식에서 포도주를 나누면서 이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고전 11:25)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적용=>

우리 기독교는 섬리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섬리하시고 창조하셨습니다. 죄지은 인생을 구원하실 때 구원의 계획을 세우시고, 먼저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선지자들을 보내시고, 그들이 준비한 길을 통해 메시아를 보내시고, 때가 되자 성령을 보내 주셔서 본격적으로 구원의 사역을 하셨습니다.

주님도 하나님의 섬리를 따라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리고 순종의 사람들이 준비되고 빈 항아리에 물을 채웠을 때, 당신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는 당장 흥을 돗구는 음식일지는 모르지만, 주님에게 포도주는 저들의 죄를 씻는 구원의 피라는 사실입니다.

이 모든 사역에 내면에는 성령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훗날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늘로 올라가시는 주님은 제자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경은 지금이 은혜의 때, 구원의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후 6:2)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결단 성도 여러분! 성령님이 답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성령이 도우셨습니다. 성령에 의해서 사역하셨습니다. 지금은 예수님 시대보다 더 악하고 음란한 시대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하나님을 믿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더욱 성령으로 뜨겁게 충한한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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