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을 가져오라 | 열왕기상 17장 8~11
작성일
2025-07-13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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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을 가져오라
열왕기상 17장 8~11
2023년 5월 21일 일요일 2025.07.06. 맥추감사주일
오늘은 우리 교회를 비롯한 한국교회가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성경의 절기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성경의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절기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절기란! 하나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고 그가 부르실 때 모여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1년에 두 차례 감사절의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첫 열매를 감사하여 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11월 3째 주일에 지키는 추수감사절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는 걸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그런 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전무후무한 흉년이 왔습니다. 3년에 넘도록 비 한 방울 이슬 한 점 없습니다. 땅에서 푸른 식물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생물이라곤 개미 한 마리도 보기 어렵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과 짐승이 죽어 나갔습니다. 온 땅에 먼지만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야가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이지요.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르밧에 갔을 때 한 여인이 들에서 슬픈 기색을 하고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황스런 일을 만나게 됩니다.
10절입니다. “….청하건데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마시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 지금 왜 이러는 것입니까? 지금 당신이 마실 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보다 더 황당한 일은 다음 구절입니다. 11절입니다. (왕상 17:11, 개정) “그가 가지러 갈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 지금 왜 이러는 것입니까?엘리야는 지금 시대적 상황을 알고나 있는 것입니까? 이 여인의 형편이 어떤지 알고 그런 요구를 하는 것입니까?
우리 알고 있는 대로 지금은 3년에 넘어간 대 흉년의 기간입니다. 게다가 여인은 남편을 잃었습니다.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이 흉년 때문에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아들 하나와 아주 함께 힘겹게 사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물을 달라니요. 떡을 가져오라니요. 속된 말로 벼루기 간을 빼 먹지요.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여인의 생각입니다. 여인이 당황하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물을 요구했을 때는 가지러 갔습니다. 11절 하반절입니다. “그가 가지러 갈 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를 불러서 간김에 떡도 한 조각 가지고 오라는 것 아닙니까?
여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여인의 심정이 잘 표현된 구절은 12절입니다. 12절입니다. (왕상 17:12, 개정)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떡이 없었습니다. 다만 가루 한 움큼은 있었습니다. 물론 물은 조금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기 물을 요구했을 때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러나 떡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여인에게 떡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엘리야는 그는 이런 여인의 사정을 몰랐습니까?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면 알고 있었으면서 여인에게 없는 떡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선지자가 홀로된 여인의 집에가서 물과 떡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선지자가 여인의 이런 사정을 알면서 그랬다면 아마도 어떤 의도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다면.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만났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음성이 있을까요? 어떤 은혜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은혜가 있을 것 같습니까?
한 끼만 먹으면, 먹을 것이 없는 가정에 주의 종을 보내서 먹을 것을 요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 그림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을 풀 수 있는 말씀은 8~9절에 있었습니다. (왕상 17:8-9, 개정)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여인의 집에 엘리야를 보내셨다는 것이고 다음은 음식을 주라는 것입니다.
긴 흉년 속에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 땅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정확하게는 사르밧에 있는 과부를 기억했고, 엘리야를 기억했고, 아합의 박해를 굴속에 피해 숨어 있는 선지자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하나님은 어려운 세상 속에서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한시도 잊으신적이 없습니다. 비록 세상에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주의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리신다고 하시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시거나 외면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 당신의 자녀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3년 6개월 흉년을 재앙이라고 말합니다. 재앙은 불과 물 같은 것을 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재앙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저들에게 우박을 내리거나 유황불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벌이라고 하기엔 애매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벌인 것은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느 곳이나 골구로 내려져야 할 비를 어느 땅에는 내리든지 말든지 하나님이 신경도 안 쓰셨습니다. 땅에 먼지가 내리든지 바람이 불든지 말든지 상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에게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벌은 하나님의 무관심입니다. 세상에서 죄를 짓든지 말든지 그렇게 살다가 지옥에 가든지 말든지 버려두는 이것이 저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이 아들을 보내신 것이 은혜요 사랑입니다.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께 사르밧에 있는 한 과부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당신에 최고의 능력의 종인 엘리야에게 말씀하여 사르밧에 가게 하셨고 그에게 음식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고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고 있을 때, 저들에게 얼굴을 돌려 무관심하실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잊지 않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반년동안도 우리와 함께하셨고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평안을 주셨고 승리를 주셨고 좌로 우로 흔들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변함없이 절기를 지킬 수 있게 해 주셨고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이 사르밧에 여인을 기억하신 일과 같이 하나님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오늘을 기억하게 하셨고 시간과 여건에서 여기에 운선 순위를 두게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이후 후반부에도 계속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여인의 사정은 너무도 딱했고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는 찰라에 엘리야를 만난 것입니다.
이제 이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는 여인이 제공하는 물과 떡을 먹었을까요? 아니면 한 줌 가루로 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은 후 죽었을까요? 놀랍게도 여인은 한 줌 가루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먼저 대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정식 속답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밥은 죽어서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상에 밥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배고푼 어머니들이 자녀를 어떻게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포위된 사마리아 성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사르밧 가정에 한 끼밖에 먹을 것이 없는 음식을 엘리야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한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엘리야의 메시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13~14절입니다. (왕상 17:13, 개정)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중요한 단어가 눈에 보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가져오고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하나님의 의도가 다 들어 있고, 여기에 환란날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의도는 지금 이스라엘 땅에 진행되고 있는 3년 6개월 죽음의 흉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저들을 먹이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상식적인 방법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식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까마귀 입을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한다든가 기름병에 기름이 고이게 하고 가루통에 가루가 고이게 하는 방법입니다. 출애굽 시대에 하늘에서 만나도 내렸는데 불가능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세상에 환란의 날은 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에 주시는 벌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환란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 환란을 막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계속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실 수가 없습니다. 그때 세상은 환란을 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방식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식으로 돌보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 여파는 우리에게도 온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음란과 죄악에 흑암의 세력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도 영향이 온다는 것입니다. 엘이야가 바알을 섬기는 사람은 모두 제거하고 두려워서 도망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요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성공에 대한 두려움 등. 우리 인생을 두렵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어제 한 ‘시사직격’이라는 프로에서 고독사 중에 청년 고독사 30%된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저들에게 마음과 생각을 내어주지 마시기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은 성령이 거하는 전입니다. 성령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방식은 다음입니다. ‘가서 네 말대로 하거니와……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라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란에 날에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마지막 한 끼를 위한 것이지만 나무를 줍고 불을 피우라는 것입니다.
단 우선순위를 “나를 위해서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위하여….
여기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자칫 엘리야를 단순히 평범한 사람 정도로 본다면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종이였고, 한 끼 먹으면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하는 한 가족에게 갔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것으로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하나님이 엘리야를 사르밧에 보냈고 한 여인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날 하나님께 엘리야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그렇게 하라. 나를 위해 먼저 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시려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삶에 순위를 하나님께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난날에도 건지시고 돌보시겠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세상은 하루하루 바쁘게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옛날 다니엘이 예언한대로 (단 12:4)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시간을 금이라고 생각하고 성공을 위해서 먼저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럴 때일수록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먼저 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지금까지도 그런 신앙으로 잘 사셨지만, 앞으로도 더 큰 환란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한 조각의 떡밖에 없는데 그것을 먼저 엘리야에게 주기로 결심한 사르밧 과부의 마음에 무엇이 영향을 주었습니까?
14절의 말씀입니다. (왕상 17:14, 개정)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16절의 말씀처럼 (왕상 17:16, 개정)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사르밧 과부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가 믿음의 사람인 증거는 엘리야가 하는 말들을 모두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음의 사람인 증거는 그는 목숨과도 같은 한 끼 식사를 엘리야에게 양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믿음이 자신과 자녀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말씀입니다.그러면 그는 언제부터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까?오늘 본문을 잘 묵상해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에 와서 여인에게 물과 떡을 달라는 말과 그러면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씀이 있었던 때부터였습니다. 그 말씀은 환란날에 하나님이 사르밧 과부에게 보낸 은혜였습니다. 믿음은 은혜속에 있었습다.
사르밧 과부는 그 은혜가 오기 전까지 한 끼 음식을 해 먹고 자식과 함께 죽을 생각을 했고, 그 생각에 잠겨 두려워했고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자식을 보며 함께 죽어야 하는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로부터 전해오는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씀은 그에게 믿음을 주었고 그 믿음은 순종하게 했으면 자기도 살고 자식도 살게 했습니다.
적용~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우상이 창궐하는 시대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입니다. 마약이 우리의 가정 우리의 자녀를 위협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우리를 향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요? 혹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 하시면 어떻게 할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단 한시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깨우침의 은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의 은혜가 있어 그곳에서 믿음을 얻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기 함으로 많은 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성도 여러분!
환란 중에라도, 어떤 어려움이 있는 때에도 하나님은 그 자녀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산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앞으로 반년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실 하나님께 감사하시 바랍니다.
열왕기상 17장 8~11
2023년 5월 21일 일요일 2025.07.06. 맥추감사주일
오늘은 우리 교회를 비롯한 한국교회가 맥추 감사주일로 지키는 주일입니다. 맥추감사절은 성경의 절기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성경의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절기란!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절기란! 하나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고 그가 부르실 때 모여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1년에 두 차례 감사절의 절기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지키는 '맥추감사절'은 첫 열매를 감사하여 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11월 3째 주일에 지키는 추수감사절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절기를 지키라고 하는 걸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그런 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전무후무한 흉년이 왔습니다. 3년에 넘도록 비 한 방울 이슬 한 점 없습니다. 땅에서 푸른 식물이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생물이라곤 개미 한 마리도 보기 어렵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과 짐승이 죽어 나갔습니다. 온 땅에 먼지만 풍성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엘리야가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이지요.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사르밧에 갔을 때 한 여인이 들에서 슬픈 기색을 하고 나뭇가지를 줍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황스런 일을 만나게 됩니다.
10절입니다. “….청하건데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마시게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엘리야 지금 왜 이러는 것입니까? 지금 당신이 마실 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이것보다 더 황당한 일은 다음 구절입니다. 11절입니다. (왕상 17:11, 개정) “그가 가지러 갈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라는 것입니다.
엘리야 지금 왜 이러는 것입니까?엘리야는 지금 시대적 상황을 알고나 있는 것입니까? 이 여인의 형편이 어떤지 알고 그런 요구를 하는 것입니까?
우리 알고 있는 대로 지금은 3년에 넘어간 대 흉년의 기간입니다. 게다가 여인은 남편을 잃었습니다.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이 흉년 때문에 남편이 먼저 하늘나라로 갔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아들 하나와 아주 함께 힘겹게 사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물을 달라니요. 떡을 가져오라니요. 속된 말로 벼루기 간을 빼 먹지요.
여러분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요한 것은 여인의 생각입니다. 여인이 당황하긴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물을 요구했을 때는 가지러 갔습니다. 11절 하반절입니다. “그가 가지러 갈 때”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그를 불러서 간김에 떡도 한 조각 가지고 오라는 것 아닙니까?
여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여인의 심정이 잘 표현된 구절은 12절입니다. 12절입니다. (왕상 17:12, 개정)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했습니다.
여인은 떡이 없었습니다. 다만 가루 한 움큼은 있었습니다. 물론 물은 조금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기 물을 요구했을 때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러나 떡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는 여인에게 떡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엘리야는 그는 이런 여인의 사정을 몰랐습니까? 알고 있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러면 알고 있었으면서 여인에게 없는 떡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선지자가 홀로된 여인의 집에가서 물과 떡을 요구하는 것입니까?
선지자가 여인의 이런 사정을 알면서 그랬다면 아마도 어떤 의도가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 의도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셨다면.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것일까요?
우리는 오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만났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어떤 음성이 있을까요? 어떤 은혜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은혜가 있을 것 같습니까?
한 끼만 먹으면, 먹을 것이 없는 가정에 주의 종을 보내서 먹을 것을 요구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이 그림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성경을 풀 수 있는 말씀은 8~9절에 있었습니다. (왕상 17:8-9, 개정)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여인의 집에 엘리야를 보내셨다는 것이고 다음은 음식을 주라는 것입니다.
긴 흉년 속에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 땅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자녀들을 기억하고 계셨습니다. 정확하게는 사르밧에 있는 과부를 기억했고, 엘리야를 기억했고, 아합의 박해를 굴속에 피해 숨어 있는 선지자들을 기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하나님은 어려운 세상 속에서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한시도 잊으신적이 없습니다. 비록 세상에 우상을 섬기기 때문에 주의 얼굴을 다른 곳으로 돌리신다고 하시더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결코 버리시거나 외면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 당신의 자녀를 기억하고 계십니다.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3년 6개월 흉년을 재앙이라고 말합니다. 재앙은 불과 물 같은 것을 사람에게 내리는 것이 재앙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이 저들에게 우박을 내리거나 유황불을 내린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근이 벌이라고 하기엔 애매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벌인 것은 하나님이 저들과 함께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어느 곳이나 골구로 내려져야 할 비를 어느 땅에는 내리든지 말든지 하나님이 신경도 안 쓰셨습니다. 땅에 먼지가 내리든지 바람이 불든지 말든지 상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에게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벌은 하나님의 무관심입니다. 세상에서 죄를 짓든지 말든지 그렇게 살다가 지옥에 가든지 말든지 버려두는 이것이 저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그이 아들을 보내신 것이 은혜요 사랑입니다.오늘 본문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하나님께 사르밧에 있는 한 과부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당신에 최고의 능력의 종인 엘리야에게 말씀하여 사르밧에 가게 하셨고 그에게 음식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고 우상을 섬기고 죄를 짓고 있을 때, 저들에게 얼굴을 돌려 무관심하실 수 있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고통당하는 당신의 백성들을 잊지 않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반년동안도 우리와 함께하셨고 우리의 마음을 지켜주셔서 평안을 주셨고 승리를 주셨고 좌로 우로 흔들리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변함없이 절기를 지킬 수 있게 해 주셨고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먼저 하나님이 사르밧에 여인을 기억하신 일과 같이 하나님이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오늘을 기억하게 하셨고 시간과 여건에서 여기에 운선 순위를 두게 하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이 은혜가 오늘 이후 후반부에도 계속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여인의 사정은 너무도 딱했고 그야말로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는 찰라에 엘리야를 만난 것입니다.
이제 이일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는 여인이 제공하는 물과 떡을 먹었을까요? 아니면 한 줌 가루로 아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은 후 죽었을까요? 놀랍게도 여인은 한 줌 가루로 떡을 만들어 엘리야를 먼저 대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정식 속답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정서에 “밥은 죽어서라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사상에 밥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배고푼 어머니들이 자녀를 어떻게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포위된 사마리아 성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사르밧 가정에 한 끼밖에 먹을 것이 없는 음식을 엘리야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에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 통제할 수 없는 한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엘리야의 메시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13~14절입니다. (왕상 17:13, 개정)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중요한 단어가 눈에 보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가져오고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 하나님의 의도가 다 들어 있고, 여기에 환란날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의도는 지금 이스라엘 땅에 진행되고 있는 3년 6개월 죽음의 흉년에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보시고 저들을 먹이시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상식적인 방법이 아닌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식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까마귀 입을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한다든가 기름병에 기름이 고이게 하고 가루통에 가루가 고이게 하는 방법입니다. 출애굽 시대에 하늘에서 만나도 내렸는데 불가능하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세상에 환란의 날은 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세상에 주시는 벌이 아니라 원래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환란을 모르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 환란을 막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계속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실 수가 없습니다. 그때 세상은 환란을 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환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백성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때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돌보시는 방식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방식으로 돌보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방식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믿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닐지라도 그 여파는 우리에게도 온다는 것입니다. 철저하게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 음란과 죄악에 흑암의 세력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에게도 영향이 온다는 것입니다. 엘이야가 바알을 섬기는 사람은 모두 제거하고 두려워서 도망간 적이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를 두렵게 하는 요소들이 너무도 많이 있습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 경제적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성공에 대한 두려움 등. 우리 인생을 두렵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어제 한 ‘시사직격’이라는 프로에서 고독사 중에 청년 고독사 30%된다는 보도를 보았습니다.
성도 여러분!두려움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저들에게 마음과 생각을 내어주지 마시기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은 성령이 거하는 전입니다. 성령님과 동행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방식은 다음입니다. ‘가서 네 말대로 하거니와……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라는 말씀입니다.
중요한 것은 환란에 날에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마지막 한 끼를 위한 것이지만 나무를 줍고 불을 피우라는 것입니다.
단 우선순위를 “나를 위해서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야를 위하여….
여기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자칫 엘리야를 단순히 평범한 사람 정도로 본다면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종이였고, 한 끼 먹으면 죽을 날을 기다려야 하는 한 가족에게 갔다면 하나님이 보내신 것으로 믿는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날 하나님이 엘리야를 사르밧에 보냈고 한 여인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날 하나님께 엘리야에게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가서 그렇게 하라. 나를 위해 먼저 하라” 그러면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주시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해 주시려는 것입니까?
그것은 우선순위입니다. 삶에 순위를 하나님께 맞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난날에도 건지시고 돌보시겠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세상은 하루하루 바쁘게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 옛날 다니엘이 예언한대로 (단 12:4)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은 시간을 금이라고 생각하고 성공을 위해서 먼저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은 그럴 때일수록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먼저 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지금까지도 그런 신앙으로 잘 사셨지만, 앞으로도 더 큰 환란이 오더라도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경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면 한 조각의 떡밖에 없는데 그것을 먼저 엘리야에게 주기로 결심한 사르밧 과부의 마음에 무엇이 영향을 주었습니까?
14절의 말씀입니다. (왕상 17:14, 개정)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16절의 말씀처럼 (왕상 17:16, 개정)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사르밧 과부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가 믿음의 사람인 증거는 엘리야가 하는 말들을 모두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믿음의 사람인 증거는 그는 목숨과도 같은 한 끼 식사를 엘리야에게 양보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믿음이 자신과 자녀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했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말씀입니다.그러면 그는 언제부터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까?오늘 본문을 잘 묵상해 보면 엘리야가 사르밧에 와서 여인에게 물과 떡을 달라는 말과 그러면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한다는 말씀이 있었던 때부터였습니다. 그 말씀은 환란날에 하나님이 사르밧 과부에게 보낸 은혜였습니다. 믿음은 은혜속에 있었습다.
사르밧 과부는 그 은혜가 오기 전까지 한 끼 음식을 해 먹고 자식과 함께 죽을 생각을 했고, 그 생각에 잠겨 두려워했고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자식을 보며 함께 죽어야 하는 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로부터 전해오는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이 말씀은 그에게 믿음을 주었고 그 믿음은 순종하게 했으면 자기도 살고 자식도 살게 했습니다.
적용~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우상이 창궐하는 시대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입니다. 마약이 우리의 가정 우리의 자녀를 위협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요? 우리를 향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실까요? 혹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외면 하시면 어떻게 할까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지금은 은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우리는 단 한시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깨우침의 은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의 은혜가 있어 그곳에서 믿음을 얻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을 기쁘시기 함으로 많은 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성도 여러분!
환란 중에라도, 어떤 어려움이 있는 때에도 하나님은 그 자녀를 결코 외면하시지 않으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산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앞으로 반년도 우리와 함께하시고 인도하실 하나님께 감사하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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